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운현은 고 임종국 선생의 뒤를 잇는 친일파 연구가다. 임종국 선생이 친일파 연구를 개척했다면, 정운현은 친일파 연구에 폭과 깊이를 더한 인물이다.

정운현은 1980년대 말부터 친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추적해 <친일파> <창씨개명>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증언 반민특위> <반민특위 재판기록> 등 10여 권의 관련 저서를 냈고, 그 인연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3년 가량 사무처장을 지내기도 했다.

20여 년간 친일 문제에 매달린 그가 또 한 권의 친일 문제 관련 서적을 냈다. <친일파는 살아 있다>(책보세 펴냄)가 그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친일파의 실체를 집요하게 드러내며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70년대 말까지 친일파에게 장악당한 권력 상층부

<친일파는 살아 있다> 책표지.
 <친일파는 살아 있다> 책표지.
ⓒ 책보세

관련사진보기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도와 우리 민족에 해를 끼친 친일파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드높았지만, 미 군정이 친일파를 대거 기용하면서 친일 청산은 물 건너갔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는 다시 살아남아 권력을 잡았다.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의 조사에 따르면, 제1공화국은 각료의 34.5퍼센트, 제2공화국은 각료의 60퍼센트가 친일 전력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박정희가 집권한 제3공화국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친일 전력자로는 박정희·최규하, 총리 가운데는 장면을 비롯해 백두진·정일권·진의종·김정렬 등이며, 각료급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입법부나 사법부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적어도 해방 이후부터 70년대 말까지 대한민국 권력의 상층부는 친일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 <친일파는 살아 있다> 5~6p

권력을 장악한 친일파는 친일 청산 등의 역사 청산을 막은 것은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해악을 끼쳤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군사독재 정권까지 이어진 고문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통치의 유지를 위해 독립운동을 탄압했고,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다. 유관순 열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고, 심산 김창숙은 모진 고문 끝에 두 다리가 마비돼 평생 앉은뱅이로 살았다. 일경의 고문은 그야말로 가혹했다.

두 엄지손가락을 앞뒤로 묶어 천장에 달아맨 다음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을 뉘어놓고 콧구멍에 양잿물을 쏟는 것이었으며, 혹은 두 손가락 사이에 막대기를 끼운 다음 손가락 끝을 비끌어 매어 좌우로 훑어 내려가 피부가 멍들고 근육이 떨어져나가게 했다.…때때로 의복을 벗겨놓고 철판 마루에 알몸뚱이로 굴리면서 구두 신은 흙발로 사람을 축구공 차듯 하기도 했다. 석탄불에 달군 철봉으로 뼈가 울리게 난타하는 고문은 사람을 생죽음으로 모는 매질이었다. - <야만시대의 기록> 2, 1911년 소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은 곽임대의 증언

일제치하에서 독립투사를 고문했던 이들이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는 민주투사들을 고문했다. 4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김형욱은 중앙정보부 직업수사관들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들 직업수사관들의 전직은 사찰계 형사, 방첩부대 문관, 헌병 하사관, 심지어 일제치하에서 설치던 조선인 헌병과 밀정 등 형형색색이었다. 그중 어떤 사람은 일제치하에서는 일본 순사로서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다가 자유당치하에서는 야당으로 때려잡다가 한때 공산당이 서울을 점령했던 시절에는 우익 민주인사를 때려잡다가 나중에는 공산당 간첩을 때려잡은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도 있었다. - <혁명과 우상> 1,  235p

김형욱은 이들을 '사회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번성하는 독버섯'에 비유한다. 이런 독버섯을 키운 그늘은 아마도 독재와 친일의 그늘이리라. 권력의 상층부를 장악한 친일파와 그 그늘에서 자라나 민주투사를 고문하고 마침내 박종철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하층부의 친일파를 보며 친일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친일잔재가 얼마나 한국현대사를 왜곡한 건지 새삼 느낀다.

민주투사 고문하며 독재 정권 유지한, 제2친일파

친일청산에 반대하는 몇 가지 논리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망각론'이다. 이미 지난 일이고, 당사자들도 다 죽고 없으니 묻어버리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친일파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다. 생물학적 의미의 친일파는 대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들을 옹호하는 친일파의 후예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나 "(일제) 통치 조직에 조선인들이 충원되었다는 것이 조선인들에게 해로웠다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치와 독립을 위한 첫걸음이었다"라는 소설가 복거일,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안병직·이영훈 등의 뉴라이트 진영의 학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친일파를 두둔하는 것은 일부 지식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뉴라이트 진영은 이명박 정권 이후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했으며, 위험한 징후들이 감지된다.

정운현이 이 책을 쓴 직접적 계기는 KBS가 6월에 방영한 '백선엽 특집 방송'이었다. 간도특설대로 독립군을 진압했던 백선엽의 친일 경력에 대한 설명은 "이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일본군 장교가 된다. 이 전력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10초도 안 되는 언급이 전부였고, '백선엽 특집 방송'은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데 힘썼다. 공영방송의 이러한 작태를 보면 친일파를 두둔하는 세력, 제2의 친일파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친일파 찬양 방송은 이것으로 끝이 아닐 것 같다. <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50부작 드라마 '인간 박정희'를 계획하고 있는데,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박정희의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어떻게 다룰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그래서 친일 문제는 이대로 묻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권력을 잡은 친일파는 일제강점기부터 고문기술을 연마한 '고문기술자'를 활용해 민주투사를 고문하며 독재 정권을 유지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친일파를 옹호하는 제2의 친일파들이 활개치고 다닌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인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뉴라이트 진영의 인사들까지 친일파의 후예들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정운현의 말처럼 '친일파는 살아 있다'.


친일파는 살아있다 - 자유.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정운현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1)


태그:#친일파, #뉴라이트, #정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