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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 박사가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20세기 정치철학자들은 대부분 스피노자를 읽습니다. 권위를 붕괴 시킬것을 도모하는 정치철학자들에게 스피노자 철학은 매우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강력한 이유는 인간 이외의 모든 권위를 최초로 붕괴시켰던 철학책이기 때문이에요. 철학은 어떤 면에서는 <에티카>를 통해서 이미 끝났는지도 모릅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철학박사 강신주가 첫 손가락에 꼽은 서양 철학의 고전은 바뤼흐 스피노자의 <에티카>였다. 강 박사는 지난 1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 수업에서 <에티카>를 교재로 오후 7시 반부터 2시간 반 동안 강의했다.

강 박사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모든 철학자는 두 가지의 철학, 자신의 철학과 스피노자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며 "'철학 고전읽기' 수업에서 스피노자를 가장 처음 다루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 무언가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서양 최초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강의에는 10회 동안 이어질 '철학 고전읽기' 수업을 신청한 수강생 90여 명이 참석했다. 

스피노자, '신 = 인간'임을 기하학적으로 논증하다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17세기 철학의 대표적인 합리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바뤼흐 스피노자는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피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던 유태인 양친 밑에서 태어났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그는 신에 대한 비판적인 사상 때문에 24살에 유태인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스피노자의 대표작인 <에티카>는 그의 사후에 지지자들에 의해서 간행된 것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신과 자연이 같다는 범신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유럽에서는 쉽게 입밖에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은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랐으며 스피노자는 167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교수 제의를 받지만 암스테르담을 떠나지 못하고 일평생 렌즈를 갈면서 살았다.

강 박사는 "스피노자가 살던 시기의 암스테르담은 그 당시의 자유정신이 깃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며 "암스테르담에서도 익명의 저자로 남아있을 정도인데, 하이델베르크는 그의 삶과 철학을 견지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에티카>에 무슨 내용이 있었길래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을 떠나지 못했을까? <에티카>는 '신에 대하여',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의 5부로 구성되어 있다.

강 박사는 "스피노자는 인간이 무언가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서양 최초의 철학자"라며 "만약 초월적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가진 1부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2부를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에티카의 원제는 '기하학적 질서로 논증된 에티카'입니다. 명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제시하는 식의 증명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스피노자 시대의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는 인간을 원죄를 가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스피노자는 인간이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신적인 창조력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에티카>의 1부와 2부에서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기하학적인 논증을 시도합니다."

강 박사는 칠판에 '신'이라는 글자와 '인간'이라는 글자를 쓰고 그 사이에 금을 그어 구분했다. 기독교의 논리에 따르면 세상은 신 또는 피조물로 나눠진다. 신과 피조물은 섞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 전능한 무한자이다. 강 박사는 "스피노자는 기독교 논리의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인간이 감히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지요. 우리는 피조물이고 신은 우리와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논리에 따르면 신은 무한자니까 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이 유한자라고 가정하면 신과 우리 사이에는 엄격한 경계가 있으므로 신과 우리는 별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무한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셈이지요. 내가 신을 믿을 때 나는 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범신론입니다."

강 박사는 "스피노자는 신을 능산적 자연(실체), 피조물을 소산적 자연(양태)이라고 말했다"며 "여기서 실체와 양태는 같은 것이고, 이 논리대로라면 신과 인간이 같아짐은 물론 천국과 지옥도 모두 붕괴된다"고 말했다.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노예'가 되지 않는 철학을 배워봅시다"

기독교 같은 초월신앙에서 창조주인 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창조력과 생산력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주체적인 입장을 가진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강 박사는 "스피노자의 범신론 즉, 내가 곧 신이 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인의 위치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인문학에서는 인간이 주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철학 고전읽기' 수업에서 스피노자를 가장 처음 다루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 무언가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서양 최초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앞으로 10주 동안 '철학 고전읽기'를 진행하면서 배울 것은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는 철학입니다. 노예가 다른 게 노예가 아닙니다. 내가 내 뜻대로 못 살면 그게 바로 노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본이나 종교의 노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노예가 노예라는 것을 알면 벗어날 궁리를 하거든요. 노예로 사는 것은 편합니다.

사업해 보신 분들은 알지요. 월급받는 게 제일 편합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가장 편했던 시기는 고등학교랑 군대였어요. 제일 힘들었던 때가 대학교였는데 그때는 모든 것을 제가 다 선택해야 했지요. 초·중·고등학교를 노예로 살아왔는데 대학 다니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나니까요. 이것이 인문정신입니다."

강 박사는 "내가 나로 살수 없게 만드는 권위들이 있다"며 현대의 종교로 자본주의를 꼽았다. 그는 "우리가 종이로 만들어진 돈을 돈 이상으로 볼 때, '자본은 어찌할 수 없는 우리가 따라야 할 흐름이다'이라고 말할 때 자본과 자본주의는 우리의 신과 종교가 된다"며 "스피노자의 철학을 따르는 사람은 자본을 공격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티카>가 강력한 이유는 인간 이외의 모든 권위를 최초로 붕괴시켰던 철학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에티카>의 3, 4, 5부를 읽게 되면 철학적으로 삶의 주인이 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강신주#철학 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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