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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대한민국은 <도가니>로 들끓고 있다. 베스트셀러라고 나온 뜨끈뜨끈한 책을 한참을 두고 보다가 식은 열기에도 계속 책이 나올 때 그 책을 사서 보듯이 나는 이럴 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본다.

 

또 책이 먼저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면 일단 원작소설을 읽어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막상 책을 읽고 보니 아직까진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의 생생함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의 글이 너무도 생생해서… 영화를 보고 오히려 희석 될까 봐. 오히려 원작소설의 의도와 달리 작위적으로 만들었을까 봐.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소설 <도가니>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신문기사 몇 줄이 작가의 마음에 담겼고 그것이 발아해서 소설이 되었다. 광주의 모 장애인 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썼던 그녀는 말한다.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 이후 평화의 한 끝자락을 붙잡은 듯했노라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주 아팠고 신열에 들떠 있기도 했지만 행복했다고,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이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온전히 작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만큼 그렇게 고통스럽고 그렇게 황홀했다고.

 

작가 김훈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뻥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역시 글은 힘이 세다. 영향력 있는 작가의 한 마디는 큰 파장을 몰고 온다. 덧붙이자면 영화 또한 힘이 세다. 소설로 나왔을 때만해도 이렇게 열광의 도가니 분노의 도가니로 들끓게 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되고 나서 책 역시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니 영화는 힘이 세다.

 

소설, <도가니>

 

소설은 주인공 강인호가 서울에서 무진시 자애학원으로 기간제 임시교사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해무가 짙게 깔린 무진시에 도착해서 마을에서 뚝 떨어져 있는 안갯속에 가려진 자애학원을 찾아간다. 첫날부터 그는 화장실에서 공포에 어린 비명소리를 듣는다. 차츰 밝혀지는 사건들…. 말 못하는 아이들을 둘러싼 자애학원 이사장과 행정실장 교사 등의 수년간 되풀이해 온 성폭행과 폭력행사와 은폐. 아무것도 모른 채 이 학교에 부임한 강인호는 점점 그 사건에 자기도 모르게 깊이 개입하게 된다. 사건의 진상들을 깊이 알게 되고 대학선배 서유진은 무진시에서 인권운동 사무실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을 개입하면서 두 사람은 더 깊이 사건에 연루된다. 강인호는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하고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되지만 반대편 쪽에서 그도 잊고 있던 과거를 들춰내 비방거리가 되며 괴로워한다. 여차여차해서 자애학원 이사장과 행정실장 등 관련 인물들이 재판을 받게 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고 버젓이 학교운영을 여전히 하고 있다. 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강인호는 아름을 안고 아내의 만류로 떠나버린다. 시간이 지나고 서유진으로부터 편지가 강인호에게 온다. 피해자 어린 유리와 연두 민수 등 자애학교에 있던 아이들은 최목사 등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거둬들이고 아이들을 그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마음이 훌쩍 자라고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다

 

이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무진, 무진의 안개는 한마디로 은폐, 거짓, 위선, 위악, 이 땅을 뒤덮고 있는 연결 짓고 고리지어 어디서부터 그것을 차단하고 끊어내야 할지 모르는 구조적인 악과 거짓의 세계를 말한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거짓의 세계는 톱니바퀴처럼 위에서 아래로 맞물려 돌아간다. 이 거대한 거짓의 세계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입으로는 거짓은 결국 패하고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말한다. 또 위선과 거짓 앞에 분노하고 눈물 흘릴 수도 있지만 그것과 정면으로 싸우기란 힘든 법이다. 내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려 몸을 사릴 뿐이다. 거짓의 세계는 더욱 교묘하고 정교하게 촘촘히 짜여서 그 힘을 늘려간다.

 

과연 작가의 힘 글의 힘 펜의 힘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시퍼렇게 진실의 편 약자의 편에 서서 거짓의 미궁을 파헤치고 약자들의 슬픔과 고통 비극적이 삶에 한줄기 희망의 빛 실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그 광란의 도가니를 폭로하고 눈멀고 귀멀어 몰랐던 국민들을 깨우고 있다. 비록 작고 약하지만 끝까지 진실을 캐내겠다고 진실 편에 서겠다고 정의의 편에 서 있겠다고 결심하고 행한다면 이룬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었다.

 

소설의 전개 가운데 문제의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란 점이 가슴 답답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뒤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 한가운데 답답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사람들, 약자들과 진실의 편에 서서 싸운 사람들 역시 기독교인이란 점이다. 그동안 기독교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반성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진군해 오는 '안개', 그 안개를 뚫을 수 있는 것 그 유일한 것은 '소리'였지만 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들. 하지만 그 아이들 편에 서서 소리를 대신 내고 진실을 밝히려 한 소수의 사람들. 이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개를 통과하는 유일한 것, 소리… 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최목사가 아이들에게 말했듯이, 귀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소설은 소리친다.

 

소설 속의 시처럼 어둡게만 보였던 암울한 세상에 작은 자들이 성냥개비를 하나, 둘, 셋 밝힘으로써 온 땅의 어둠을 빛으로 감싸 안는 역할을 해냈다. 어둡기만 해보였던 암울하고 거짓과 악이 팽배한 곳에… 희망의 불 사랑의 불을 지폈다.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 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 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밤의 파리> 자끄 프레베르-

 

그동안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더러 읽었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작가를 좋아하진 못했다. 질투와 부러움 등이 교차했으니까.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작가를 정말 좋아할 것 같다. 공지영작가의 마음과 작가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을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디에 이 작가의 마음이, 눈이 닿아 있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 성냥개비 불을 붙이듯 깜깜한 어둠 속을 밝히는 작은 불빛. 어둠 속 그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자들과 약자들이 서 있는 그곳에 함께 서려는 마음으로 가 있어서.

 

느른느른한 장 형사의 말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에게 과연 이사장 가족의 인권과 귀머거리 애들의 인권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한 것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사장의 권리와 귀머거리 아이의 인권은 같다'고 단 일 밀리, 단 일 그램의 차별도 안 된다고, 그걸 위해 싸울 거라고.

 

"나는 이 싸움을 해야겠어.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두 유리 그리고 민수 때문이야. 바다하고 하늘이 그리고 세미 때문이야. 아까 무진대병원에 갔을 때 본 이제 막 세상에 나와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 갓난아기들 때문에 말이야."(p266) 그 마음이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 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p246)

 

그리하여 지금… 이 대한민국은 아직도 영화 <도가니>로 들끓고 있다. 슬픔과 분노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직 소설 <도가니>를 읽고 이 도가니에 잠겨 있다. 작가는 힘이 세다. 글은 칼보다 강하다. 위대하다.

덧붙이는 글 | 책: <도가니> / 저자: 공지영 / 출판: 창비 / 값: 10,000원


도가니 (100쇄 기념 특별개정판)

공지영 지음, 창비(2017)


태그:#도가니,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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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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