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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작가의 작품은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철수 작가의 작품은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 이철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마음이 쓸쓸했다. 힘든 일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로 들어섰다.

'겨우 요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 가난한 머루송이에게(2000)
저물도록 일했습니다. 이제 들어가자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 부릅니다. 밥은 달고 잠은 깊을 겁니다. - 하늘이고 저물도록(2011)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 길(2000)

나뭇결을 드러낸 흑색 작품들 속에서 마음에 위로가 쌓였다. 판화가 이철수(57)의 30주년 기념 판화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에 전시된 작품들이었다. 혹시 인터뷰 섭외가 불발에 그치더라도 전시장에서 얻은 풍요로운 기운만으로도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한 명, 두 명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1층에선 수녀님들을, 3층에선 스님을 만났다. 이 모습이 바로 이철수 작가의 힘인가 보다, 헤아려 보는데 전시장 뒤편에서 그가 선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인터뷰 요청과 간곡한 거절, 다음을 기약. 한 달 뒤 기자는 그가 25년 전부터 터 잡고 살고 있는 충북 제천 '울고 넘는 박달재' 아래 마을로 향하는 차속에 있었다. 8월 11일, 막바지 피서를 떠나는 피서객들 때문인지 고속도로가 붐볐다. 도시 사람의 조바심으로 엉클어졌던 마음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곳곳에 펼쳐진 초록빛 벼들의 물결을 보자 평안을 찾아갔다.

땅이 주는 선물이다. 이 작가는 농사를 '마음공부'라 칭했던가. 농사짓는 틈틈이 판화를 새기고, 그 속에서 얻는 '마음공부'를 '나뭇잎 엽서'에 띄워 세상과 이야기하는 그를 만났다. 농약 치지 않는 집 앞 그의 논에선 개구리가 뛰놀고, 그의 집 너른 마당엔 연꽃 핀 연못과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었다. 멋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려는 찰나, 어디선가 '도시 촌놈, 눈요기 말고 풍경 뒤에 감춰진 땀과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참새처럼 볼품없는 우리의 온몸을 표현하고 싶어"

 이철수 작가는 흔해 빠진,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온몸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이철수 작가는 흔해 빠진,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온몸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 노동세상

"이번 전시회는 작품 보면서 눈물 흘리는 분들이 유난히 많았어요. 위안, 위로 받았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많았고. 그 모습 보면서 자기 슬픔이 많아진 시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판화가 이철수는 지난 7월 12일까지 열린 30주년 기념 서울 전시회에 대한 소회를 묻자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풀어냈다. 작은 머루송이도 쉬이 지나치지 않듯 평범한 이들의 눈물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그다.

잘 살겠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데도 인정받기 힘든 시대다. 인정은 커녕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에게 그는 목판화를 통해 다독인다. '괜찮다, 괜찮아', '너 하나를 위해 오늘은 온 우주가 있는 듯'이라고.

그는 독수리가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는 작품, '새는 온몸으로 난다'도 사실은 참새로 표현하고 싶었단다.

"말하자면 독수리는 챔피언이잖아요. 반면 참새는 흔해 터진 새, 멀리 못 가고 높이도 못 나는, 먹이만 탐하는 새로 인식돼 있죠. 흔해 빠진,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온몸을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의 바람은 참새의 날갯짓을 제대로 잡은 사진을 구하지 못해 실행되지는 못했다. 앞으로라도 꼭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그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뜻을 내비쳤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는 글을 작품에 새기자 어떤 이는 그가 신념을 버렸다고 손가락질하고, 또 다른 이는 '그래, 이제 좌-우 싸움으로는 안 된다'며 칭송했다. 그런 선긋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그가 '온몸'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온몸이라고 하는 게 과녁이나 표적을 향해서 거침없이 날아가는 에너지 충만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아프면 울고 힘겨우면 지쳐 쓰러지고 사랑 없이는 외로움을 타는, 그런 존재들이잖아요. '온몸' 속엔 그런 다채로운 인간적인 약점들이 다 깃들 자리가 있어요. 팔 하나가 없어도 온몸은 있어요. 걷지를 못해도 온몸은 있고…. 그죠? 혼신을 다해 그 온몸으로 살아가는 것. 그러면 되는 거죠."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사람을 끈다. 그의 작업실 곳곳에 걸려있는 판화들이 함께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사람의 지문처럼 나무의 결은 다 제각각이고 결들이 숨을 쉬어 목판을 쓴다고 그가 말했다. 전시회 때 본 밭이랑을 지문처럼 표현한 작품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갖고 있지만 그 모양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지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노동의 이야기가 그런 작품으로 되살아났을까. 그의 말과 작품 속엔 사람을 사색하게 하는 힘이 숨어있다.

세상으로 향했던 민중판화가의 칼날, 자신의 심장으로 돌려

 데뷔 30주년을 맞은 판화가 이철수.
데뷔 30주년을 맞은 판화가 이철수. ⓒ 노동세상

그는 1980년대 민중판화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세상을 이야기하는 문학은 있는데 왜 세상을 이야기하는 음악, 미술은 없을까. 남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하자. 그게 제가 그림으로 세상과 이야기하게 된 이유예요."

불타는 한반도(1984), 성난 얼굴로 뒤돌아 보라(1984), 분노(1985), 사슬(1987), 깃발(1987), 새벽이 온다 북을 쳐라(1988) 등 작품명만으로도 초창기 작품들이 어떤 그림들이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 "거칠고 감정이 격해 보이는 그림들을 그땐 많이 그렸죠." 그의 그림은 당시 집회현장의 걸개그림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그랬던 그가 변했다. 계기로 1989년 독일전시회 때문에 3개월 가량 유럽에 머물렀던 때가 거론되곤 한다.

"사실은 그 전부터 바뀌고 있었어요. 독일전시회에 가서 거기에 가속이 붙었다는 표현이 아마 적당할 거예요. 흔히 하는 말로 선진화됐다는 자본주의 선진국에 가서 '자본이 이렇게 사람들 내면으로 들어가 사회를 관리하는구나'를 눈앞에서 보게 된 거죠. 기존의 그림으로는 어렵겠다는 고민을 하던 차였는데 그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게 불가능해진 거죠."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판화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그는 "대중에게 분노하는 제스처만 열심히 그려서 보여주는 걸로는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충분치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폭력, 힘 등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론 그것들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평화를 만날 수 없는 상태를 엿보았던 게다. 세상으로 향했던 칼날을 되돌려 자신의 심장을 겨누기 시작한 셈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자꾸 팔을 긁는다. 전날 비닐하우스 근처에서 풀을 뽑다가 말벌들의 공격을 받았단다. 벌에 많이 쏘여봤다고 그가 대수롭잖게 말한다. 막 부풀어 올랐던 전날보다 많이 좋아졌다는데 아직도 팔이 붉다. 말벌은 물론 작은 벌을 봐도 도망 다니기 바쁜 기자에게 농촌생활은 범접하기 힘든 세계처럼 다가온다. 우문을 던진다. "농사, 힘들지 않으세요? 서울에서 자라서 농사짓는 거 쉽지 않을 텐데…." 이어지는 그의 현답. "맞아요. 농사는 힘들어요. 힘들어서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고, 힘들어서 권하기도 하죠."

도시에서는 얻기 힘든, 농사가 주는 선물들이 있다.

"우선 농사는 내가 노력한 것을 내가 직접 거두는 경험을 할 수 있죠. 사실 직장생활하면서 하는 일은 보통 내가 땀 흘린 결과물을 내 손으로, 내 눈으로, 내 몸으로 거두거나 확인하기 힘들잖아요. 물론 고된 일이긴 하지만 그 결실은 훨씬 우회하는 통로를 통해, 추상화돼서 내게 다시 돌아오잖아요. 또, 노동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서도 실감있게 배우는 기회를 현대인들은 대개 못 가지잖아요.

근데 농사를 지어보면 땀 흘린 것 이상의 것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걸 통해서 하늘, 땅, 모든 자연이란 것이 있어서 비로소 내가 있을 수 있고, 농사라는 사람의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배우죠. 그런 관계 속에서 돌아보는 나라는 존재는 오만하기가 어려워 보여요. 신랄하게 얘기하면, 별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하는 일이 대단한 것인 양 어깨에 힘주기 힘들어요."

텃밭농사든, 주말농장이든, 하다못해 발코니에서 하는 화분농사라도 해보라고 그가 권했다. 독일전시회 후 판화작업을 거의 못하는 동안 그는 경작지도 넓히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단다.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가고 열매 맺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떨구고 다시 겨울을 맞고…. 이런 자연의 생명 순환도 마음에 새기고 생명이 건네는 말들과 내면의 목소리도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 목소리들이 고민 속에 빠졌던 그에게 마음공부라는 새길을 열어줬다.

단골 주례, 이철수 부부가 사는 법

 이철수 작가의 작품 속엔 부인 이여경씨가 종종 등장한다. 늘 함께 하는 이철수 작가 부부의 삶이 작품속에 스며든다.
이철수 작가의 작품 속엔 부인 이여경씨가 종종 등장한다. 늘 함께 하는 이철수 작가 부부의 삶이 작품속에 스며든다. ⓒ 이철수

귀농이란 말이 낯설었던 1986년, 그는 제천으로 내려왔다. 이유를 물으니 그가 "이젠 기억에도 잘 없는 거지만"이라면서도 "아마 사람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욕심 사납고 자기 이해나 계산들이 따로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순진한 청년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단다. "요즘 같으면 아주 능구렁이처럼 대응할 텐데…"라고 그가 웃는데 모습은 여전히 '순진한 청년'에서 그다지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잠시 후, "여보, 나 왔어요" 하면서 부인 이여경씨가 작업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선다. 단발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모습이 꼭 소녀 같다. 옆집 베트남에서 온 새댁이 아이를 낳아 산모와 아이를 보고 오는 길이란다. 요즘 농촌에서 보기 힘든 경사다. "애가 얼마나 작은지 몰라. 태어날 때 2.5kg이었대요." 바로 앞에 갓난아이가 있는 듯 부인이 생생하게 소식을 전하고 그가 "건강하대요?"라고 묻는 부부의 대화모습이 정겹다.

그의 작품 '등 뒤에서'(1996)가 떠오른다. 부인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엔 '앓고 난 아내가 머리 묶고 일어나 앉았다. 조용하다. 무얼 보시는가? 묻지 못했다'란 글귀가 쓰여 있다. 아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이 묻어난다. 이뿐 아니라 그의 작품 여럿에 그의 부인이 등장한다. 작품의 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 부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별로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 평소에 잘 못하니까….(웃음) 일종의 이벤트라는 걸 아니까 별로 감동을 안 하죠. 감동은 바깥사람들이 더 하고…." 들켜버렸다. 무뚝뚝한 남편과 사는 기자와 같은 아줌마들이 많은가 보다. 그가 덧붙인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산다는 걸 전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가정은 이런 무서운 세상을 사는데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해요.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누구에게나 절실한 필요충분조건일 거라고 보고. 지쳐서 돌아왔는데 가정에서도 위안을 못 받고 평화를 찾을 수 없으면 참 불행할 거란 생각도 들고요. 나는 그래서 바깥일보다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가정의 평화도 없이 흰소리하는 분들, 별로 믿을 게 못 된다고 봐요."

짓궂게 물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따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질문이 무섭다며 그가 답했다. "몇 년 전부터 쉬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쉬러도 못 갔네요. 내가 그런 노력을 잘 못해요.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한국 남자들 일부를 대변하는 셈이에요. '마음은 있는데 늘 표현은 서투르고 모자라서 미안하다'고."

작업실 인터폰이 울린다. 점심 준비가 다 됐다는 부인 이씨의 연락이다. 작업실에서 본채로 가는 내내 받은 인상은 '정갈하다' '꾸밈없다'. 그 느낌 그대로 담고 있는 아담한 주방 안 식탁 위에 도자기 그릇 몇 개가 놓여있다. 널찍한 그릇 안에는 메밀국수가 담겨있고 반찬은 매실장아찌, 부추무침, 김치 등이다. 식탁 한편에는 옥수수도 있다. 동네 어느 집에서 줬다는 매실장아찌 빼곤 모두 이철수 부부의 밭에서 난 것들이다. 이런 식탁을 받는다는 게 행운이다. '감사하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부부의 대화가 다시 이어진다. "여보, 그 집 고부 간에 어려움 좀 있겠어." "왜요?" "말이 잘 안통해서 그런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더라고." "이 장아찌무침 먹어봐요." "장아찌를 이렇게 무쳐서도 먹네." 일상적인 대화들인데도 계속 듣고 싶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시나 봐요?"라고 물으니 "우리는 밥 먹는 시간보다 얘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요. 평소에도 서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죠"라고 부인이 답한다. 처음에 제천에 내려왔을 때 부인은 안 힘들었을까. "충분히 서로 상의해서 내려왔는데 힘들기는요. 그리고 힘이 들면 서로 힘이 되어주면 되지."

어디를 가든 가능한 한 함께하려고 한다는 이철수 부부다. 낮엔 농사일을 같이 하고, 저녁에 그가 작업실에서 판화를 새기면 부인은 마늘 다듬거리 등을 갖고 와서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의 일을 하기도 한단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이다. 이철수 부부처럼 살고 싶다고 주례를 부탁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뭇잎편지'로 전하는 이야기, 6만여 명이 공유

 8년 넘도록 보내고 있는 '이철수의 나뭇잎편지'를 보내고 있는 이철수 작가는 그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교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8년 넘도록 보내고 있는 '이철수의 나뭇잎편지'를 보내고 있는 이철수 작가는 그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교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 노동세상

그가 말벌에 쏘였다는 걸 다음날 6만여 명이 알았다. '이철수의 나뭇잎편지'를 통해 그의 일상과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02년 10월부터 꼬박 8년 넘게 이메일 엽서를 보내고 있다.

"그 즈음에 홈페이지를 열었어요. 근데 화가들 사이트 중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이트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내 거라고 열어놨는데 판화는 생산량이 빤해 새그림을 매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 관심을 끌기가 어렵잖아요. 홈페이지를 만든 친구가 '선생님이 직접 할 수 있는 걸 해봤으면 좋겠다'고 자꾸 권해서 직접 쓰고 그리는 건 가능하니까 그런 틀을 만들어달라고 했죠."

처음엔 띄엄띄엄 보냈다. 자꾸 회원들이 늘어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책임감이 생겼다. "약속 잘 지키고 꾸준히 하는 버릇이 있다"는 그는 부지런히 엽서를 그렸고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보내고 있다. 멀리 나갔다가 와서 늦은 밤이라도 나뭇잎엽서는 보내고 잔단다. 닦달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는 스스로 정한 마감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마감 놓치기 일쑤인 기자는 안다.

그가 실제 작업하는 종이를 보여준다. 정말 조금 큰 크기의 엽서다. 매일 얼굴 보면서도 엽서를 주고받던 중학교 때 친구가 떠오른다. 한 때 편지 좀 썼었는데 마지막으로 손으로 편지를 썼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통신 기계에 밀려 점점 잊혀 가는 엽서(편지)를 환갑을 바라보는 그는 매일 직접 쓰고 그려서 보내고 있다. '엽서'라는 형식뿐 아니라 '사색'을 이끌어내는 내용 역시 탁월하다. 계속 비가 내리던 얼마 전엔 '꽃도 울겠다. 사람들 우는 건 많이 보았다. 피다 지고, 피자 지고, 꽃이 꽃으로 있을 겨를 없이 비에 젖어지는 한여름. 사람도 비에 젖어 지고'라고 엽서를 보냈다. 한 편의 시 같은 그런 문학적 표현은 어디서 나올까.

"그렇게 느껴질 때 없어요?(웃음). 눈  앞에서 자연을 늘 보니까 그렇게 감정이입이라는 게 되는 것 같아요. 지혜로운 사람들이 해놓은 말들이 많잖아요. '한 티끌 속에 온 세계가 들어 있다(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는 불교의 표현도 있고, '밥 한 그릇을 잘 먹으면 세상을 아는 것'이라는 동학의 지혜로운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그런 언어들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나한테 조금 더 깊이 스며서 육화하면 내 눈에도 조금씩 내 안의 세상이 보이고, 또 세상에서 내가 보이고. 그러려고 애쓰면서 사는 일이 공부잖아요. 그런 눈으로 볼 수 있으면 꽃이 눈물만 흘리겠어요?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다 하겠지."

농사지으면서 접하는 자연이야기도 하지만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나 평택 대추리 싸움 등 세상이야기를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오랫동안 농성중인 김진숙씨의 이야기를 여러 번 전했다. 간혹 그에게 "선생님에게선 정치적인 이야기를 덜 듣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참 따뜻한 분들이구나" 생각한단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상처가 될까봐 남들 안 보는 메일로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안타깝단다. "꽃이 울면 시라고 이야기하고 김진숙씨가 운다고 하면 시라고 아무도 안 보는 게 세상의 편협함 같은 것이죠. 꽃의 눈물이 보이는 눈으로 해고노동자의 눈물은 안 보인다? 있어서는 안되잖아요. 그런 의미로 제가 마음공부를 하자는 거죠. 내가 꽃 얘기를 할 때도 사람으로 읽고, 사람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시심으로 읽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 늘 있어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대의 고민과 함께 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이야기하는 사람'

 25년 전, 충북 제천에 터를 잡은 이철수 작가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공부를 한다고 했다.
25년 전, 충북 제천에 터를 잡은 이철수 작가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공부를 한다고 했다. ⓒ 노동세상

앞으로 꼭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나 작업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단번에 "없어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사는 데 큰 관심 없어요. 그냥 살다보니까 세상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쓰고 있는 사람이 되기는 했지만 나를 스스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규정해놓는 일이 별로 달갑지 않아요. 그냥 세상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 수단도 여전히 가동중이긴 하지만 그 수단을 앞세워서 그림으로 욕심을 크게 내고 싶거나 하지는 않아요."

지금, 그리고 앞으로 그가 주로 하려는 이야기는 생명과 평화다. 환경문제는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특히 반전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보려고 한단다. 우리 마음속부터 시작해 '군수산업'이란 말로 이미 체제화하고 구조화한 폭력까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없는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안 그러면 어디 외계인들이 와서 우리한테 전쟁과 폭력을 강요한 것처럼 되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저 폭력에 가담해서는 안 되는 일이구나' 하는 걸 좀 실감있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중이에요." 그래서 말벌떼가 왔을 때 뿌려 죽이겠다고 에프킬라부터 찾는 마음자리부터 살피고 있단다.

그가 온몸으로 사람들과 나누고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애로운 삶을 살려는 것을 방해하려 하고, 서로 깊이 하나가 되려고 하는 태도를 금기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우리가 살게 된 것 같아요. 함께 나누는 데서 얻는 기쁨보다는 물건 하나 사는 것에서 훨씬 짜릿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류의 오독이죠. 세상을 잘못 읽게 하려고 하는 세력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술수들이 세상에 아주 만연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둠을 걷고 세상을 볼 수 없으면 그냥 속수무책으로 표피적인,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유혹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냥 인생 끝난다, 그 얘기를 그림으로 하려고 아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예요."

작업실 그의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왼쪽 시선이 머무는 곳엔 갈라지고 터진 노동자의 손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다. 돌지붕을 얹는 스위스 노동자의 손이란다. 그렇게 곳곳에 자기를 돌아보는 장치가 있다. 세상에 이야기하는 만큼 세상도 자신에게 "그래서 너는 잘 사냐?"고 되물을 권리는 있다고 그가 말했다. 그런 물음을 입으로 안 하고 몸으로 하는 참 좋은 사람들이 옆에 많이 있었다며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좋은 사람들 곁에서 살라는 거죠. 뭐, 특별히 잘 살고 하는 거 결심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늘 흔들리기 마련이잖아요.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어요. 사람들이 내 '머루송이에게'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들 애쓴다고 하고 살아도 결과가 늘 좋을 수가 없고…. 그런 것에 관해 이해하는 눈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잖아요.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관훈갤러리 전시장에서 봤던 방명록 속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허기 채우고 갑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돌아가는 길, 도시에서의 삶이 조금 만만해보였다.

덧붙이는 글 | * 이철수 30주년 기념 판화전 이후 일정 : 전주 9월7~18일. 전주한옥마을 / 제주 10월1~25 제주저지현대미술관 / 부산 10.28~11.10(변동 가능) 민주화공원전시관 / 청주: 11월14일~23일 예술의 전당 / 고양: 12.2~15. 어울림누리

월간 <노동세상>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철수#판화가#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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