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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대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군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첫 아이를 낳은 뒤에는 교사일까지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하지만 1990년 11월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면서 평범했던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간통죄 고소를 시작으로 돈거래와 관련된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변호사법 위반, 강제진행 면탈죄, 소유권 이전 등기,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 위증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사문서 위조죄, 사기·무고 혐의, 부당이득금 반환, 손해배상…'.

고소와 맞고소, 항소 등을 거쳐 어렵게 재심 결정까지 얻어내며 '19년간' 싸웠지만 그는 결국 이기지 못했다. 스스로는 "완전무죄"를 확신했지만 법원은 한가지 사건만 무죄로 판결했다.

소송이 삶이 되어 버린 20여 년, 왜?  

 르포작가 서형씨의 <법과 싸우는 사람들>
르포작가 서형씨의 <법과 싸우는 사람들> ⓒ 후마니타스 제공
이는 '르포작가' 서형씨가 최근 펴낸 <법과 싸우는 사람들>(서형 저, 후마니타스 펴냄)에 나온 '주인공' 임아무개(69)씨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임씨는 40대 중반에 첫 소송을 시작해 60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소송에 휘말려 있다. 19년간 아는 사람들과의 돈거래 때문에 여러 건의 소송을 되풀이했던 그는 지금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한 폭행사건의 목격자로 법정에서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기소됐고, 급기야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 때문에 지난 4월 법정에서 구속된 것이다.

소송이 삶이 되어 버린 임씨의 후반부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고 불운하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이 이렇게 불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이나 자라온 가정환경에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일까, "속된 말로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쏟아지는 추측들을 향해 저자는 "임씨의 불운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녀는 억울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소송이라는 방법으로 법에 호소했지만, 법은 '그러니까 누가 부동산에 관심 가지래', '누가 남자 차에 타래' 하는 식으로 그녀를 대했고, 자꾸 소송을 제기하는 그녀를 가뜩이나 바쁜 법원의 업무에 부담을 가중하며 자기의 사익이나 챙기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그녀의 불행이 시작된 곳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자는 "돈도 빽도 없이 오직 체력 하나만으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법이 정의의 구현자이기는 고사하고, 자신의 생계와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권력기관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겉으로 보면 <법과 싸우는 사람들>은 임씨의 '소송투쟁기록'이자 '소송기술'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실제 저자는 3년간 들여다본 그의 소송과정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동원된 그의 소송기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가 '법정'이라는 권력공간에서 변호사도 없이 판·검사 등과 맞서는 장면들은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특히 핵심증거 감추기, 재판끌기, 판사와 감정대립하지 않기, 발언권 얻기, 함께 시위하기, 재판기록하기, 자유심증주의 무력화시키기, 재판의 주인공되기, 판사에게 신뢰얻기, 판사에게 충격주기, 상대편 위증판결 받아내기, 법관기피제도 활용하기 등 '소송기술들'도 꽤 흥미롭다.  

"법이 '좋은 중재자'였으면 책 쓸 일도 없었을 것"

하지만 <법과 싸우는 사람들>은 시중에 출간된 '소송에게 이기는 법'류의 법률 실용서와는 다르다. 이 책이 임씨의 소송투쟁과 소송기술을 통해 법과 싸우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한국사회 사법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도 "독자들에게 소송기술을 권하려고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적 현실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거창한 사법개혁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법정이라는 공간이 선의와 정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또한 저자는 "법이 갈등해결의 좋은 중재자로 기능했더라면 아마 이런 책을 써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 전에 법 앞에서 이들이 평범한 시민이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법환경이 갖춰져 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나는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도대체 법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의 증언"이라고 자평했다.

저자는 지난 2009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시위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을 출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법과 싸우는 사람들>이 한 60대 아주머니를 통해 사법부의 현실을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부러진 화살>의 후속작인 셈이다.  

특히 <부러진 화살>은 조만간 정지영 감독의 '영화'로 다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 감독은 영화배우 안성기씨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최근 동명의 영화 촬영을 마쳤다. 영화는 10월 열리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처음으로 상영된다. 


법과 싸우는 사람들

서형 지음, 후마니타스(2011)


#법과 싸우는 사람들#서형#부러진 화살#사법부#소송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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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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