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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내면에 남모를 고민이나 슬픔 등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한 누구도 모른다. 혼자만 앓다가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걸리고 심하면 자해나 자살까지 한다. 그래서 이런 이들을 위해 근래 들어 다양한 심리치료 방법이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미술치료, 원예치료, 음악치료 등 다양하다. 독서치료 또한 그 한 방법이다.

난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늘 웃고 떠들며 발랄한 모습으로 생활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밝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자해를 했거나 가출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기껏해야 상담이다. 헌데 상담이라고 해봐야 '왜 했니?' '고민이 뭐냐?' 뭐 이 수준이다. 이런 질문에 아이들은 몇 마디 뻥긋 하곤  입을 닫아버린다. 내면의 상처를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상담에서 몇 마디 나누고 상처를 드러낸다 해서 그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이었다. 상담과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조금 더 현실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이다. 이 책은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제자 아이가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 도움이 될 거에요." 하면서 준 책이다.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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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독서를 통해 내면의 아픔들을 치유했던 여러 사례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 겪었던 자신의 아픔들도 타인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몇 사례를 보자.

소금인형(닉네임)은 엄마 아빠가 너무 바빴다. 부모는 새벽부터 시장에 일하러 나가면서 세 살배기 동생을 다섯 살인 그녀에게 맡기고 일을 나갔다. 일터에 나갈 때마다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갔다. 둘 다 어리기 때문이다. 부모한테 보호받아야 할 다섯 살짜리 아이는 세 살짜리 동생을 책임져야 했고, 엄마 아빠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좁은 방에서 먹고 싸면서 하루를 보낸다. 동생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울기라도 하면 겁에 질려 잠긴 문고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어둠이 깔리면 무서움에 온 몸을 떨었고, 나중엔 동생 숨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은 소금인형을 어떤 트라우마에 갇히게 한다. 그녀는 저녁만 되면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남자친구들을 불러놓고 계속 잡아놓기 위해 술을 마시고 부분별한 섹스를 한다. 그리고 아침이면 자신의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란다. 결혼을 하지만 늘 불안하다.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암울한 기억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해서도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픔을 아무도 몰래 혼자만 앓고 있다는 것이다.

소금인형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시가 있다, 기형도의 <엄마걱정>이라는 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는 어린 시절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켰지만 소금인형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부부관계나 가정생활은 늘 겉돈다. 그러다 독서치료 모임에서 책을 읽고 은밀하게 감춰진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냄으로서 스스로 아픔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렇다고 모두가 치유를 한 건 아니다. 중도에 탈락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달팽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그렇다.

"달팽이의 어머니는 굉장히 드센 분이었고 아버지는 너무나 유약한 분이다.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해서 집안의 생계는 전적으로 어머니 혼자 감당했다. 당연히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의 기질이 워낙 강한 탓에 아버지가 수시로 맞고 살았던 것이다. 단순히 무능력한 가장이 아니라 매 맞는 남편이었다."

어머니에게 무시당하고 매맞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달팽이. 남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어머니는 아들 달팽이에게 기대를 가졌고 모든 것을 그에게서 채우려 한다. 친구도 대학도 결혼도 모두 어머니가 원하는 데로 해야 했다.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강제된 마마보이가 된 것이다. 한 번도 저항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자신에 대해 그는 질려 있었고 체념해 있었다. 그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하는 용기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올 의지가 부족하여 포기하고 만다.

종종 매 맞는 아내, 매 맞는 남편 소식이 지면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사라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의 무능력한 모습과 매 맞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자신도 모르게 큰 상처를 마음속에 쌓아두게 된다. 문제는 그 상처가 어른이 돼서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달팽이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게 어디 달팽이뿐이겠는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끌려가는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들 또한 피해자인데 우리들은 오히려 그 피해자들을 비난하곤 한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는 독서를 통해 치료하는 과정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책을 읽고 책속의 내용에 공감되어 아픔을 털어놓게 함으로써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서 치유 어떻게 할까 하는 궁금증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은 해결됐지만 그렇다고 방법까지 터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사례를 보면서 치료에 참가하지 않더라고 어떤 아픔을 남몰래 지니고 있으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결책은 제시해줄 수 있다.

상처를 그대로 놔두면 더 큰 상처가 된다. 상처를 도려내야 새 살이 나온다. 세 살이 나오게 하기 위해선 숨어있는 상처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드러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덧붙이는 글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삼인 / 값11,000원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김영아, 삼인(2009)


#독서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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