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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만인보> 표지
<트위터 만인보> 표지 ⓒ 알렙
지난해 6월 그동안 쓰던 스카이 2G 핸드폰을 정리하고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던 때였는데, 내가 도대체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주 투박하고 무거운 모토로라의 모토로이를 구입했다.

안드로이드 1세대 핸드폰이라는, 마치 '구시대의 유물'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녀석을 손에 쥐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설치한 프로그램은 트위터 어플이었다. 맨 처음 남긴 맨션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거 어떻게 하는거지? 아 트위터 어렵다. 그냥 안할래."(아마 다른 사람들도 처음엔 다 그렇지 않았을까?)

엄마는 그해 여름 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상을 치르고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엄마랑 같이 자던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밤을 견디는 것은 유난히 힘든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군대에 간 막내동생의 방으로 가 <백석 전집>을 읽곤 했다.

의식적으로 활자들을 읽었는데 처음엔 위로가 되던 것들이 어느새 면역이 되어버렸는지 나중엔 지겹기도 하고,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았다. 다른 읽을거리들을 대체하기 위해 헤매다 발견한 것이 트위터였다. 나만 이 세상에서 혼자 외롭고, 고독하고, 불쌍해죽겠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게 트위터는 '이상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한나라당의 소통이란?

트위터를 시작하고 나서부턴 자기연민에 빠져드는 시간이 적어졌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일일이 접하면서 '알티'하고 '멘션'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 내게 트위터는 기사 아이템이 되기도 하고 때론 취재원이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현장'의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가 벌금형을 받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후원 콘서트에 가수들과 개그맨들이 섭외돼 있었는데, 공연 직전 출연진들이 공연을 취소한 일이 있었다. 당시 트위터에서는 해당 연예인들에게 멘션을 보내거나 '무한 RT'를 통해 공연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했고 출연을 철회하라고 이야기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연예인들이 모두 돌아가 조전혁 의원 후원공연은 나름 '4집가수'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단독 리사이틀이 돼버렸다는 후문이다.

<트위터 만인보>의 저자 박형기 기자가 분석했듯 이처럼 트위터에서는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하다. 그가 언급했듯 이른바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인 이외수 작가를 공격했다 트위터에서 쫓겨난(트위터 이용자 다수가 특정 계정에 대해 차단(블록)할 때 그 계정은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나름 전직 국어교사였던 이재오 특임장관은 항상 트위터로 아들 '민호'에게 편지를 쓰는데 띄어쓰기는 아예 무시하고 쓰는 것은 물론이고 3·1절에 '태극기'를 '태국기'라고 써서 조롱거리가 된 적 있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 개인의 '개성'이라 치고, '태국기'라 쓴 것이 단지 실수에 불과한 일이라 치자. 사실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임에도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나 당직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제 말만 하기' 때문이다. 박형기 기자의 말마따나 "한나라당이 트위터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말이나 뱉지 마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얼마나 '독고다이'로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지 그들을 팔로(follow)하고 있는 내 복장이 터져버릴 지경이다. 집단 블락으로 퇴출됐던 진성호 의원이나 조전혁 의원은 다른 계정을 만들어 트위터로 돌아와 다시 '망발'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재오 의원은 아무리 사람들이 굳이 지적을 해 줘도 여전히 맞춤법을 틀리고 띄어쓰기를 무시한다.

한나라당 전여옥(@okstepup) 의원이나 나경원(@Nakw) 의원의 경우는 더 가관이다. 나경원 의원은 최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투표가 무산되면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민주당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다'라는 멘션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번하게 올려댔다.

게다가 그는 "계백장군이 황산벌에서 죽고나서 백제가 망했듯이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지고나면 한나라당이 망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 의원은 백제가 망한 것은 황산벌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황산벌 싸움 당시에 이미 망조가 들어 국세가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한다"는 말이 그에게 아주 절실해 보인다. 아니면 이미 한나라당의 세가 기울었음을 미리 짐작했거나.

전여옥 의원의 '망트(망언 트윗, 망한 트윗)'는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최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의 토론프로를 보며 "좌파 교육감이 왜 저렇게 말을 더듬냐"는 식으로 비꼬았다. 며칠 전에는 "투표가 나쁘다는 사람들, 정당들 모든 선거나 투표에 나서지 말아야"라는 맨션을 올렸다. 트위터리안들은 2007년 전여옥 의원과 한나라당이 2007년 김황식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투표를 반대했던 기사를 증거로 제시했다. 전여옥 의원은 그에 대해 어떤 '멘션'도 하지 않고 있다. '쪽' 팔리는 줄은 아는 모양이다.

세계관의 저변을 넓히며 타인의 세계와 평화롭게 연결되는 곳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지난 오월 시내를 가득 메웠던 학생들은 대부분 <세계사편력>을 읽었을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일 때 우리는 그런 책들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세계는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있었다.

과거 사람들이 서로의 세계관을 확인하고 의식을 성장시키는 기제가 '책'이었다면 지금은 트위터같은 SNS로 '팔로'하며 개인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다. 이를테면 홍대 변두리에 위치한 칼국수 가게 '두리반'에서 일어난 일들, 노른자 땅이라 일컬어지는 명동 한복판에서 일어난 철거의 폭력적인 면모들, 부자동네라고 불리는 강남, 그곳의 가난한 마을 포이동 판자촌에서 생긴 연대의 현장들을 트위터가 없었더라면 확인할 길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국내 메이저 일간지들은 '철거민 폭동'이라 보도할 것이고, '빨갱이'들이 남한 사회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북의 지령'을 받고 내려와 '간첩질'을 하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를 테면 '무상급식' 같은 슬로건도 과거 소통의 수단이 제한적이던 시절에는 '세금폭탄' 담론이 우위를 점했을 테지만 지금은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차별 없이 밥 먹이자'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트위터는 일상의 영역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트위터를 하게 된 이유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변을 확대해나갔다. 다들 그렇게 친해지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트위터를 통한 '혁명'은 가능하지만 트위터를 단지 '혁명'의 도구로만 봐선 안 된다. 우리가 서로의 일상에 공감하고 연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세계와 남의 세계가 이어진다.

긴 말 필요 없이, 선배들의 일장연설 없이 140자만으로 타인의 마음을 울리는 이 세계. 몰상식하고 무식한, 약육강식의 지배가 팽배한 이 정글만도 못한 세상에서 상식이 통하는 이 트위터라는 공간은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이다. 전우용 역사학자(@histopian)의 멘션이 사뭇 인상 깊다.

주자학이 지배했다는 조선 시대에도 주자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이념이 지배하는 영역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좌우의 방향보다도, 인간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인격의 높낮이가 훨씬 중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트위터 만인보>(박형기 씀, 알렙 펴냄, 2011년, 263쪽, 13000원)



트위터 만인보 - 140자 세상의 사회학

박형기 지음, 알렙(2011)


#트위터 만인보#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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