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 집권 10년과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의 이념지형이 변하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에 대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보수-중도-진보'에서 '중도-진보-보수'로 변하고 있다. 또한 성장우선론이 분배우선론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과 사회양극화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국민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산업화의 부작용을 경계하고 있으며, 성장제일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긍정하고 있다. 이는 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소선거구제와 보잘 것 없는 정당명부 의석 비율에도 불구하고 최근 선거를 보면 유권자의 13%는 절대적인 진보정당 지지세력이다.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필요하다는 국민의식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지형의 가장 큰 변화이다.

 

민주당 정권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민주당 혼자 힘으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으니 진보정당과 힘을 합치라는 국민여론이 비등해졌다. 이 기회에 민주당은 야권 대통합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야권통합과 선거연합이 득표력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선거연합의 시너지 효과를 막고 있는 제도를 개선하면 없어진다.

 

연합공천제도를 개선하고,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일치하도록 정당명부제를 운영한다면, 선거연합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 특히 일본과 프랑스의 예를 보더라도 소선거구제에서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 사례는 많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의 일방적인 통합론을 거대야당이 선거제도의 불평등에 신음하고 있는 진보정당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공세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낙제는 민주당이 했는데, 불똥은 진보정당에 떨어진 셈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다수 중심의 선거제도에서도 국민여론에 부응하여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단일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 결과 내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으로 인한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국민의 희망이 커져가고 있다.

 

수차례 집단 입당한 재야, 독자세력으로 성장 못해

 

진보정치가 유럽처럼 독자적인 정당으로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나 영국처럼 민주당과 같은 배를 탈 것인지는 유권자의 선택과 함께 정치제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국민여론은 양당제를 강제하는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도 진보정당, 중도정당, 보수정당의 3자 구도를 선호하고 있다. 최근의 거대정당들이 민주노동당의 복지정책을 베끼는 것에서 보듯이, 3자 구도에서는 중도정당을 보다 진보 쪽으로 견인할 수 있다.

 

반면 중도와 보수의 2자구도에서는 진보는 어차피 중도에 흡입될 수밖에 없으므로 중도가 진보를 유인하기 위한 노력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중도는 보수와 유동층을 놓고 경쟁하므로 보수화되는 것이 득표 전략상 유리하다. 실제로 영국의 노동당, 미국의 민주당은 중도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를 보더라도 재야세력은 중도정당에 수차례에 걸쳐 집단적으로 입당했지만 당 내 진보세력으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유지하기보다는 중도계파정치에 녹아내렸을 뿐이다. 그들은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에 몸담았지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고,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법을 막지 못했으며, 한미FTA에 찬성했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진보세력을 품고 싶다면, 먼저 과거의 잘못을 교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령과 정책을 수정하고, 진성당원 민주주의를 당헌에 도입해야 한다. 민주당은 당 내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를 통해 정파등록제를 하겠다면서 정작 선거제도를 그와 같이 바꾸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은 곤란하나 진보가 입당하면 당 내에서 그런 제도를 만들겠다는 식의 주장은 진정성이 없다.

 

이탈리아의 정당연합이 좋은 제도라면 그것을 도입하면 될 일이다. 사실 선거연합도 정당명부식 정파등록제를 하듯이 하면 된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정당득표율을 합치면 13% 정도이고,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25% 정도이니,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1 : 2의 비율로 연합공천을 하면 된다. 그 비율 내에서 현역의원이라든가, 전략지역을 우선 고려하면 당내 반발도 줄어든다.

 

진보대통합 찔러보기 아니면 선거연합 기선제압용

 

민주당의 야권대통합론은 진보대통합 정국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향후 국민의 지지를 확대한 진보대통합당이 선거연합에 나설 것을 염려하는 정략적인 전술로 비친다. 또한 총선 선거연합이 당내 기득권층의 반발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자기 링 안으로 진보정당을 끌어 들여 당내 반발과 양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민주당이 진보정당에 양보할 의사가 있다면 선거연합을 통해서도 정권교체가 가능한데, 더 어렵고 복잡한 정당통합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통합론을 제기하다가 통합론이 무산되면, 여론을 동원한 책임공방을 피할 수 없고 당면한 선거연합은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결국 야권통합론은 명분싸움을 통한 선거연합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당대회를 통해 통합을 준비해왔다. 국민참여당조차도 수차례 당내 논의를 거치고 중앙위원회에서 통합을 결의했다. 선거연합에 주력하다가 갑자기 정당통합을 하자고 하는 민주당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존 야권연대연합특별위원회를 야권통합특위로 전환하고 올해 말까지 통합을 완료하겠다고 한다.

 

복지와 통일이 비슷하다지만 동상이몽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간격은 생각보다 크다. 그나마 복지에서 접근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 내용을 보면 통합정당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많은 차이가 있다. 무상급식은 복지문제를 드러내게 하는 계기일 뿐이지, 진보와 중도의 복지가 일치한다는 증표로 보는 것은 너무 협소한 관점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같이 복지문제는 복지정책, 그것도 각종 수당과 서비스, 현물 지원과 같은 급부정책 중심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급부정책으로 복지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복지전문가는 없다. 무엇보다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

 

진정한 복지는 복지사회,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소득정책, 고용정책, 재정정책, 사회안전망, 복지동맹이다. 직접적인 급부지원은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동원하는 보조적인 수단이다. 복지수당에 한정된 복지 관점은 복지사회를 가로막고 있는 복병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에 최대한 접근하는 소득정책, 노동기본권과 근로조건 그리고 취업과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고용정책, 소득과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한 사회안전망, 시혜가 아닌 기본권을 정당하게 얻을 수 있도록 정치권을 포함한 전체 사회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는 복지동맹이 필요하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진보정당의 복지관이 중도정당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없다.

 

보수정당들은 복지정책을 선심 쓰는 복지수당 정도로 취급하면서 선거 때 복지수당 몇 개를 내놓다가 선거 후에는 그것도 재정이 어렵다고 축소하는 식이다. 민주당은 과거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여 오히려 복지사회의 토대를 갉아 먹었다. 주택정책을 손쉬운 경기조절정책으로 활용하면서 집값을 천정부지로 오르게 만들었으며, 대학등록금도 대학의 자율에 맡겨 오늘날의 비극에 일조했고, 심지어 의료의 민영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민주당은 대통합만 하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 식 주장을 할 것이 아니다.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왜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는지 곰곰이 성찰해야 한다. 선거의 승패는 정치를 잘 하냐, 못 하냐의 문제이다, 선거연합은 그러한 결실을 공정하게 얻을 수 있는 제도에 불과하다.

 

야권통합 정치공세 속에 선거연합 시기 놓치면 총선 필패

 

한나라당에 쏠렸던 민심이 이제는 야권으로 옮겨오고 있다. 중도와 온건보수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린 결과이다. 많은 국민들이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힘을 합해 보수의 재집권을 막으라고 말하고 있다. 얼핏 보면 기회이지만,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그것은 위기로 바뀐다.

 

다 인정하다시피, 총선은 대선 승리의 가늠자이다. 일단 총선에서 양 세력이 선거연합을 성사시켜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대선과 같이 더 높은 수준의 연대연합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 연립정부를 언급하나 총선 후 대선 전에 선거제도와 대통령이 독주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진보세력이 정부여당에 들러리서는 연립정부는 의미 없다.

 

국민이 원하는 모습은 진보와 중도가 제 역할을 하면서 보수정권을 교체하는 것이지, 상대를 흡수하려는 치킨게임이나 제로섬 게임이 아닐 것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통합론과 관련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다툰다면 국민이 떡을 주고 싶다가 오히려 뺨을 칠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통합하는 것을 거절한 마당에, 민주당이 계속 통합론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이 아집을 버렸다면 지금쯤 벌써 내년 총선의 선거연합이 논의되고 있을 것이다.

 

야권통합론은 역설적이게도 야권 선거연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고 정권교체의 먹구름이 되고 있다. 이후 민주당이 통합론을 포기할 때는 야당의 후보들이 이미 우후죽순으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어 선거연합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통합론을 접고 선거연합 논의로 가는 것이 내년 총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지름길이다.

덧붙이는 글 | 같은 내용이 새세상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야권통합#선거연합#진보대통합#정당명부#진보정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