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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기를 자양분 삼은 돈나무 잎
 줄기를 자양분 삼은 돈나무 잎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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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지인이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화분속의 식물은 돈나무라고 했습니다. 뿌리와 몸통부분에 저수조직이 발달한 다육식물로 지역에 따라 섬음나무, 갯똥나무, 해동(海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다육식물의 특성상 물주는 것을 잊어도 늘 통통하고 푸른 잎을 간직해서 게으른 주인을 안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늦추위가 심했던 올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낮볕이 '완전한 봄이다' 싶을 때였습니다. 처는 지난 겨울동안 서재에서만 지낸 커피나무와 이 돈나무 화분을 봄바람과 봄볕을 쬐이려고 발코니로 내었습니다. 다시 서재로 들여놓는 것을 잊은 그날 밤, 기온은 다시 살얼음을 얼릴 만큼 떨어졌습니다.

하룻밤의 추위조차 커피나무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씨로 싹을 틔워 7년 동안 자라 작년에 3개의 꽃송이를 달았던 커피나무는 서재로 다시 들여놓은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모든 잎이 낙엽으로 되었고 줄기조차 말라 늦은 봄까지도 새잎을 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돈나무도 기존의 두툼한 잎은 그 날밤의 추위로 조직이 파괴되어 결국 잎은 물러 떨어졌고 며칠이지나자 가는 가지들도 절로 부러졌습니다.

하지만 굻은 줄기는 냉해를 입지 않은듯해서 보존했습니다. 열흘쯤 지나자 부러진 줄기 모서리마다에서 새로운 잎을 내었습니다. 굻은 가지에 달린 연록색의 새순도 예쁘고, 무엇보다도 다시 살아준 것에 대해 저의 실수가 만회된 듯싶어 기뻤습니다.

그제 물을 주다가 물조리에 스친 곯은 곁가지하나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 떨어진 가지를 살피던 저는 비로소 이 돈나무에게 봄과 여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녹색잎을 달고 있던 그 줄기는 완전히 비어있었습니다. 냉해이후 이 돈나무 가지는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육신을 자양분삼아 새로운 잎을 키워냈던 것입니다.

푹 꺼진 채 바닥에 나뒹군, 껍질만 남고 속은 텅 빈 돈나무 가지와 그 끝에 달린 새순이 구제역 광풍 속에 희생된 한 어미소와 송아지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매몰처리를 위해 안락사 주사를 맞은 어미소가 그 독소가 온몸에 퍼지는 것을 견디며 끝까지 젖을 물리고 있다가 송아지가 젖을 뗀 뒤에야 쓰러졌다는…….

나는 이 돈나무의 희생을 보며 어찌해야 사람노릇 제대로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이틀 밤낮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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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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