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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사건이 또 벌어졌다. 7월 4일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김아무개 상병의 총기사건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사건은 해병대의 잘못된 전통인 소위 '기수 열외'와 구타 등 가혹행위 때문에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 2005년 경기 연천에서 벌어진 김 일병의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린다.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 최전방 GP(감시초소) 내무반에서 김아무개 일병이 수류탄 1개를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발사했다. 이 사건으로 모두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했다. 그로부터 다시 6년. 악몽은 해병대 총기사건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왜 참담한 사건은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와 원인은 무엇일까. 이 사건을 접한 후 나는 내내 답답함으로 우울했다.

되돌아보는 김 일병 사건의 교훈

2005년 김 일병 총기 난사 사건은 그동안 외면해온 군대 내 악습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김 일병이 주장한 총기 난사 이유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GP총기사고 진상조사소위원회'와 군 수사당국은 "김 일병의 개인적인 군 복무 부적응"을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김 일병은 "선임병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일상적으로 들어 화가 나서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방위 소위 위원이었던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도 "김 일병의 성격 결함보다는 상급자들이 언어폭력을 가하는 등 비민주적 병영 문화가 이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고 소수 의견을 개진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이해를 못 했다. 김 일병 스스로 "부대 내 구타 등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일병은 "일상적으로 선임병에게 욕설을 들으며 극심한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 일병의 주장에 따르면, 욕설이 엄청난 사건의 주요 원인인 셈이다.

이 사건으로 과거와 다른 신세대 사병들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병영 문화에 구축'이 제기됐다. 즉, 일상적으로 만연한 '욕설도 엄연한 폭력'이라는 인식과 함께 다양한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당시 국회 진상조사소위는 몇 가지 대책을 정부와 군 당국에 촉구했다.

GP 근무 병력을 지원병으로 충당, 이들에 대해 특별수당과 특별휴가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 군 생활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 개발 및 사병 관리시스템 개선 등이 그것이었다. 또한 대대적인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구호와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병영 문화가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이번에 발생한 해병대 김 상병 총기사건으로 의미 없는 '도돌이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당시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군대와 '사제'는 다르다고?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이 7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회의에서 해병대 총기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이 7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회의에서 해병대 총기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한 케이블 방송을 보았다. 그 방송은 해병대 총기 사건을 다룬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군대에서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군 인권센터 관계자의 주장과, 군대 특히 해병대라 특성상 '일반적인 인권'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나를 아연실색하게 한 건 높은 군 고위 지휘관을 지낸 한 패널의 말이었다. 그는 "원칙적으로 인권은 필요하지만 국토방위와 원만한 부대 운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 권리가 무시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 인권센터 관계자의 주장을 "극히 일부인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는 무책임한 인권 타령"으로 치부했다.

방송을 보며 나는 1991년 겨울, 입대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 그렇듯 입대 영장을 받은 후 입영열차를 타기 두어 달 전부터 갖가지 환송 모임이 열렸다. 그 자리에 함께한 예비역이나,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군대에 대해 여러 조언을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빨리 부대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고 '군발이'가 되라는 것이었다.

예비역 선배는 자신이 군대에서 얼마나 처참한 환경을 잘 견뎌냈는지를 말했다. 집합을 통한 잦은 구타와 가혹행위, 한겨울 새벽 연병장에서의 비상 집합과 '원산폭격', 사랑하는 여자 친구나 친누나를 소재로 한 선임병의 성희롱 발언을 주먹 불끈 쥐고 참았던 인내심 등등. 결국 소위 '사제(일반 사회생활의 모든 것)' 정신을 버리고 '군용' 정신으로 빨리 거듭나는 것이 '훌륭한 군인'의 길이라고 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한 동창이 첫 휴가를 나와 만났던 일도 기억난다. 이제 막 대학 1학년이 된 우리와 달리 그의 푸른 군복은 마치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 느낌이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이등병 모자를 쓰고 내뿜는 담배 연기, 그 모든 것이 우리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

그때 유난히 독특했던 것은 그 친구의 말투였다. 친구는 담배 한 모금을 빨아 깊숙이 마시며 "아, 이 사제 공기"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내내 친구는 '사제'를 외쳤다. "사제 공기"로 시작한 그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나온 포크에 대해서도 "사제 포크", 새로 사다 준 담배에 대해서도 "이 사제 담배",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제 인간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며 이등병의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외친 '사제'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제'와 '군용'이라는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제 인권'은 '군대'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고위 군 출신 인사의 말을 듣고 새삼 깨달았다.

군 자체 특별 조사, 나는 못 믿겠다

해병대는 7월 17일 "'병영 악·폐습 척결을 위한 혁신기획추진단' 구성을 통해 그동안 문제가 돼 온 병영생활 개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번에 문제가 된 해병 기수 개념을 재정립하고, 선임병과 후임병이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강령을 수립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군이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를 다짐해도 그들의 '지독한 특수성' 탓에 좋은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애초부터 무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한 해병대 부대원에게 '부대 내 구타' 진정을 접수하고 실시한 직권조사 결과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해병대 내에 구타행위가 만연하고, 이것이 일종의 해병대 전통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은폐·축소한 해당 사단장·연대장을 경고 조처하고 관련자 11명을 징계하도록 해군참모총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해병대는 이런 국가 인권위원회의 지적을 받고도 별다른 각성을 하지 않았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운구행렬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동료 해병대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렸다. 운구행렬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동료 해병대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005년 발생한 김 일병 사건 이후 대책이 부족해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게 아니다. 당시에도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 일병 사건 이후부터 2010년까지 군대 자살자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자살 군인은 2005년 64명, 2006년 77명, 2007년 80명, 2008년 75명, 2009년 81명에 이어 지난 2010년에는 82명이었다. 

나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한 적 있다. 당시 담당한 첫 번째 일이 바로 군대에서 의문사한 남현진 이병 사건이었다. 당시 군 헌병대는 남현진 이병이 "군 복부 염증에 의한 자살"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실제 조사 결과는 달랐다.

물론 남 이병이 자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 이병은 자대 배치된 직후부터 내내 선임자에게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 특히 남 이병은 자살하기 직전, 또다시 한 선임자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고, 얻어 맞은 그 장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한 당시 헌병대는 "부대 내에 구타 등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으며 오직 자살자가 군 복무 염증과 부대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방부는 자살자가 증가한 최근 수치를 발표하면서 "일반인의 자살률에 비해서는 오히려 적은 것"이라는 밝혔다. 하지만 군대에서 자살로 처리된 이들에 대해 다시 그 원인과 이유를 제대로 검증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적인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기에 이제 더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해법은 없었으면 한다. 얼마나 더 많은 군인의 희생과 유가족의 슬픔이 필요하단 말인가.  

한편 군 당국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의 특별지시에 따라 사고가 발생한 해병대를 비롯, 전군에서 각급 지휘관의 책임 아래 강도 높은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향신문> 국방부 담당 박성진 기자의 평가는 간결하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국방부의 시계는 몇 시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국방부 장관의 지시는 그저 "부대 지휘관도 새로운 행정 업무가 생겼고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귀찮은 일"만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 역시 그의 지적에 대해 동감한다. 문제는 형식적인 대책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비판적 시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군 당사자가 아닌, 그들의 내부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제3자의 객관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그런데 여러 사건 사고를 거치는 동안 군 당국은 늘 '그들만의 해법'만을 고수했다. 그리고 여러 실태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인권단체의 요구를 거부해왔다.

용한 점쟁이는 아니지만 나는 감히 이런 단언을 한다. 인권단체 등 제3의 객관적인 외부 기관의 참여 없는 군 병영 부조리 실태조사 결과는 국민에게 큰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다.

과거 남현진 이병 사망사건 조사 당시 만났던 허아무개 동기생의 사례가 한 예가 될 것이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가 입대한 남 이병이 부대 전입 후 불과 2주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되자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국 이같은 의혹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군 당국은 헌병대를 통해 부대 내 구타 등 가혹행위 여부에 대해 남 이병의 모든 동기생을 불러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김관진 장관, 군 폭력 뿌리 뽑으려면 결단하라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리는 가운데, 김관진 국방장관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희생된 고 이승훈 중사, 고 이승렬 병장, 고 박치현 병장, 고 권승혁 상병의 합동영결식이 6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리는 가운데, 김관진 국방장관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권우성

그때 남 이병의 동기생들이 헌병대로 출발하려하자 당시 선임자들은 "그곳에 가서 진술하는 내용을 우리가 다 알게 되니 엉뚱한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 이병이 사망하기 바로 직전, 우연히 세면장에서 매우 힘들어하는 남 이병의 얼굴을 보고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걸지 못한 미안함에 괴로워하던 허 이병이 있었다.

자신 역시 부대 내 구타에 시달렸기에 동기생의 자살 후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그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헌병대 수사관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에 대해 진술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이 진술한 내용은 모두 빠진 채 오히려 "구타 등 가혹행위가 일체 없었다"는 조작된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

이후 해당 헌병대 수사관을 상대로 진술서 내용을 조작한 사실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헌병대 수사관은 처음엔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결국 "구타 등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사실 나도 믿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그렇게 해야 부대 지휘관이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다시 "전군에서 각급 지휘관의 책임 아래 강도 높은 실태 조사를 한다"고? 이미 언급했듯, 나는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전군의 병영 부조리 실태' 진실을 정말 알고 싶다면 결단할 일은 오직 하나다. 지금 당장 인권단체를 포함한 제3의 객관적인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대한민국 군 부대의 병영 부조리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방부장관이 나서 "우리 함께 해봅시다"라고 먼저 인권단체에 제안한다면 제대로 된 해법을 찾는 용기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방부장관의 멋진 화답을 기대한다.


#해병대#부대내 부조리 실태조사#기수열외#총기사건 #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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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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