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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기능과 프로그램을 없애 스마트폰 속도를 개선하는 '규혁롬'을 만들어 인기를 끈 이규혁군을 지난 6일 오후 서울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불필요한 기능과 프로그램을 없애 스마트폰 속도를 개선하는 '규혁롬'을 만들어 인기를 끈 이규혁군을 지난 6일 오후 서울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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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혁롬을 깔면 신세계가 보인다."
"규혁롬 까니 '모토레기'(모토로이와 쓰레기 합성어)가 디자이어HD보다 빠르네."

요즘 '규혁롬'이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다. 메모리 부족과 느린 속도 때문에 이용자 불만이 많았던 모토로라 모토로이에서 불필요한 파일과 프로그램을 지워 속도를 빠르게 만든 '규혁롬'이 인기를 끌자 LG 옵티머스2X 이용자들이 직접 돈을 걷어 '규혁롬' 개발을 의뢰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 주인공이 전문 개발자도 아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란 점도 관심을 끌었다. 오는 9일 옵티머스2X 버전 공개를 앞둔 이규혁(19) 군을 지난 6일 오후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제조사 대신 스마트폰 속도 개선... 모토로이용 인기

"옵티머스2X처럼 좋은 스마트폰은 처음이에요. 막상 (개선) 효과가 별로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에요."

사실 이용자들이 중고폰 값인 45만 원을 보내줘 시작했지만 옵티머스2X처럼 요즘 나오는 '최신형'은 이규혁 군 관심 밖이다. 일단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커스텀 롬'을 만들더라도 속도 개선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이다 보니 돈이 없어 비싼 건 못 사요. 주로 중고나라 같은 데서 평가가 안 좋은 값싼 스마트폰을 선택해요. 안 좋은 제품을 빠르게 만들면 그만큼 만족감도 크거든요. 다음엔 태블릿도 해보고 싶은데, 요즘 갤럭시탭에 관심이 있어요."

'규혁롬'은 구글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설치하는 롬(ROM, Read Only Memory)에서 필요 없는 기능이나 프로그램을 없애 스마트폰 처리 속도를 높이는 '커스텀 롬(Custom ROM)'의 하나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신제품 내는 데만 급급해 기존 제품 사후 지원이나 성능 최적화에 인색한 틈을 타 규혁롬 같은 '커스텀 롬'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커스텀 롬이란 이용자 입맛에 맞춘 맞춤형 롬이에요. PC도 네이트온 같은 자동 실행 프로그램을 여러 개 깔면 느려지잖아요. 스마트폰도 PC처럼 제조사나 통신사에서 깔아놓은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해서 속도를 빠르게 하는 거죠."

불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없애 기본 메모리(RAM)에 최적화한 규혁롬이 깔린 스마트폰은 전화, 인터넷, 문자메시지 등 기본 기능에 더 충실하다. 이군은 제조사 출시 상태 그대로인 '순정' 제품에 익숙한 초보자나 중년층을 위해 자신의 블로그(http://a931004.co.cc)에 규혁롬 설치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놓기도 했다. 

"싸고 안 좋은 휴대폰 빠르게 만드는 일 보람 느껴"

7살 때 386 PC를 처음 만진 이 군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익히고 초등학교 때 이미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컴퓨터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군이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 삼성 블랙잭을 중고로 구입하면서부터다. 당시 블랙잭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모바일 초기 버전을 사용했는데 느린 속도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성능 개선에 나선 게 '규혁롬'의 출발이었다.

이후 4년 동안 만든 '규혁롬'은 삼성 미라지폰, 옴니아, 옴니아2, 갤럭시A, 모토로라 모토로이,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X1 등 스마트폰 10여 종에 50여 개 버전에 이른다. 이밖에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요청해 비공개로 만든 것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규혁롬을 세상에 알린 건 지난해 12월 처음 만든 모토로이 버전이다. 

"지금 웬만한 모토로이 사용자들은 규혁롬을 쓰는 거 같아요. 지하철에서 규혁롬 쓰는 모토로이를 자주 봤거든요. 모토로이 규혁롬은 1.0에서 1.51버전까지 7~8가지를 만들었는데 사용자 환경이 비슷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지난해 초 모토로라에서 선보인 '모토로이'는 국내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기본 메모리(RAM)가 부족한 데다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설치도 제한돼 이용자들의 큰 불만을 샀다. SK텔레콤 기본 설치 프로그램(SKAF)이 기본 메모리 90MB나 차지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모토로이 램 용량이 218MB인데 너무 작아서 간단한 작업은 할 수 있지만 게임이나 멀티태스킹을 못 해요. 그나마 통신사 모델은 128MB밖에 못 써요. 외국인 전문가도 300MB 이상은 돼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말이죠."

"최악의 스마트폰'도 속도 빠르게 하면 쓸 만해요"

지난 4월 갤럭시A 버전을 만들 때는 "갤럭시A 연관검색어에서 '최악의 스마트폰'이란 말을 없애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갤럭시A는 가장 슬픈 스마트폰이에요.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갤럭시S가 나왔고 갤럭시K, 갤럭시U 다 진저브레드로 업그레이드되는데 혼자 빠져 '홍길동폰'이 됐어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쓸 만한 스마트폰 소리를 듣게 하고 싶어요."

'규혁롬'은 이처럼 "싸고 안 좋은 휴대폰을 빠르게 하면 가격 대비 좋은 제품이라고 소문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제조사 입장에서 '규혁롬'은 위협이기도 하지만 자신들 대신 이용자 불만을 해소해준다는 점에서 든든한 '원군'이기도 하다. 모토로이 역시 규혁롬이 등장하면서 중고 시장에서 다시 관심을 받았다.   

"이용자 불만이 있으면 제조사가 해결해야 하는데 이용자 스스로 고쳐 쓰게 하는 건 문제에요. 제조사들도 자신이 쓰는 폰이라 생각하고 지원해야 해요. 아이폰은 최소 1~2년은 업그레이드 지원하잖아요. 우린 추후 모델에서 수정하겠다고 하니 버그 있는 폰은 안 사야겠다고 하는 거죠."

인터뷰 사진이 맘에 안 든다며 이규혁군 스스로 보낸 사진.
 인터뷰 사진이 맘에 안 든다며 이규혁군 스스로 보낸 사진.
ⓒ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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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삼아 만들어 더 완벽해져... 친구들 도움 덕"

규혁롬이 알려지면서 자신들이 쓰는 스마트폰 버전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곳곳에서 들어오고 있다. 

"요즘 '베가' 같은 스카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삼성이나 LG는 그래도 해외 시장에 보급돼 해외 툴들이 많은데 스카이는 주로 국내에서만 팔리다 보니 정보나 '커스텀 롬'이 부족해요. 반면 HTC 제품은 최적화돼 있어 요청이 적고 모토로라는 해외에선 큰 불만이 없는데 국내에서 작업한 제품에 문제가 있는 듯해요. 이통사에서 깐 애플리케이션을 이용자들이 못 지우게 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자신이 대기업 개발자와 비교되거나 갤럭시S 로딩속도를 개선한 패치(커널)을 만든 '테크라크' 같은 자신보다 뛰어난 개발자들도 많은데 자신만 부각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저는 그냥 취미로 하니까 테스트 많이 거쳐 더 완벽해질 수 있어요. 제조사는 언제까지 만들겠다고 하고 만드니까, 개발자들이 시간에 쫓겨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죠. SK텔레콤 스카프(SKAF)처럼 이통사 요구에 맞춰야 하는 것도 있고."

이 군은 중고폰 사기 전 3개월 전부터 제품의 단점이나 이용자 불만 같은 정보를 모은다. 일단 제품을 확보하면 4개월에서 많게는 6~7개월 정도 직접 써보면서 개선 방법을 모색한다. 자신의 블로그에 개발한다고 공지한 뒤 본격적인 프로그래밍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한 달이면 충분하다. 

"이젠 감이 와요. 만든 뒤에도 안정화 작업이 필요한데 주변 친구들이 '베타테스터'가 돼 줘요. 오늘의 규혁롬이 가능한 것도 모두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이죠."

"기초부터 배우고 싶어... 사람들 위한 기술 개발할 것"

이규혁 군은 그동안 규혁롬 이용자들이 모아준 기부금 33만 원을 지난 6월 중순 굿네이버스에 전액 기탁했다.

"규혁롬을 만든 건 사람들 도우려고 만든 거지 이익 얻기 위한 건 아니에요. 사람 도우면서 얻은 돈이라 처음엔 20~30%만 기부할까 하다가 전부 다 하기로 했어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런 이규혁 군이지만 '해커'가 지닌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개발자'로 불리고 싶다거나 신문에 사진이 어떻게 나갈지 고민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10대였다. 하지만 한 번 컴퓨터 작업에 들어가면 밤새기 일쑤다.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에는 4~5시간 정도 컴퓨터 작업을 하고 주말에는 12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 군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학교 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런 '과외 활동'이 입학사정관들 눈에 들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 기초부터 배우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처럼 되고 싶은 것도 제 기술을 돈 버는 용도가 아니라 사람들 위해 쓰고 싶기 때문이에요. 공부만으로 세상 아는 거 아니잖아요. 앞으로 원하는 일 하면서 경험 많이 쌓고 싶어요."


태그:#규혁롬, #이규혁, #스마트폰, #커스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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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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