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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상 7장(1)

 

선생에 관해선 가계(家系)와 생평(生平) 그리고 『맹자』라는 책의 저자 혹은 편집자에 관한 의혹에서부터 유세(遊說)의 여정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분명치가 않다. 심지에 그가 실제로 공자의 학통과 맥이 닿는가하는 점까지.

 

이에 관한 논점 중 하나가 여정에 관한 것이다. 제(齊)나라에 먼저 들렀고 나중에 양(梁)으로 갔다는 선제후양설(先齊後梁說)과 양(梁)에서 제(齊)로 갔다는 선양후제설(先梁後齊說).

 

문밖 사람이 굳이 이런 논쟁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여기에 따로 이런 논쟁을 언급하는 이유는 후대의 시각을 반영하는 주석(註釋)에 구애됨 없이 원문(原文)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날것 그대로의 맹자의 육성, 그 자체에서 어떤 냄새가 나지 않을까? 그런 냄새를 맡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장(章)을 마칠 때까지 이 대책 없는 기대를 꼬~옥 유념해두도록 하자. 그래서 이 장(章)을 마치면 '나는 맹자가 어디에서 어디로 갔다고 확신한다'고 한 번 말해볼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 아닌가?

 

여기서의 태도는 뒤에서 살펴볼 <등문공 상 1장>에 나오는 말 그대로, '저들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 내가 어찌 저들을 두려워하리오(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라는 정도의 턱(?)없는 자신감 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문밖 사람으로서 좀 더 중요한 태도는 '아니면 말고'라는 유연한 마음가짐이겠다.

 

양(梁)에서 제(齊)로 갔던지 제(齊)에서 양(梁)으로 갔던지 어쨌든 우리 선생님, 드디어 전통의 강호, 영원한 우승후보, 산동(山東)의 제(齊)로 간다. 제(齊)가 어떤 나라이던가?

 

무왕(武王)을 도와 주(周)나라를 건국했던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의 나라. 대륙최초의 패자(覇者) 환공(桓公)과 그를 도운 관중(管仲)에 의해 산동 한구석에서 천하를 호령하다 기울어져 32대 강공(康公)을 끝으로 나라를 전(田)씨에게 찬탈 당하고 전(田)씨의 제(齊), 4번째 위왕(威王)은 전기(田忌)와 손빈(孫殯)을 등용하며 다시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그의 아들이 여기 등장하는 제(齊) 선왕(宣王)이다.

 

참고로 전국4공자(戰國四公子)유명한 맹상군(孟嘗君/田文)은 위왕(威王)의 서자(庶子)이자 여기에 등장하는 선왕(宣王)의 배다른 아우인 전영(田瓔)의 아들이고, 여기 전영(田瓔)은 선왕(宣王) 7년에 제나라의 재상이 된다는 것도 알아두시길.

 

각설하고 여기 7장, 제(齊) 선왕(宣王)과의 대화는 비교적 긴 편이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다 대화가 묘한 구석이 있어서 한 번 문맥을 놓치면 대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외람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첫 번째 제(齊) 선왕(宣王)과의 만남은 내용을 중심으로 몇 부분으로 나누어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 보자. 

 

마주한 상대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위왕(威王)의 아들인 선왕(宣王). 첫 번째 편에서의 맹자의 탄식(誠子齊人也)과 같이 제(齊)나라 사람들은 제(齊) 환공(桓公)을 빠트리고서는 말이 안 되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과거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그래서 선왕 역시 첫마디가 환공이다.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기억하시는가? 이건 위에서 살펴본 대로 양혜왕이 맹자에게 건넸던 첫 번째의 질문, "어르신께서 천리(千里)를 멀다않고 예까지 오셨으니, 역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을 테지요(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제(齊) 환공(桓公)이나 진(晉) 문공(文公)의 일이란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는 일을 말하는 것이고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란 패자가 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어떨까? 내용으로 보면 같은 질문이니 대답 역시 같지 않을까? 앞에서 "왕은 하필 이(利)를 말하십니까? 역시 仁義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라고 대꾸하셨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의 답변이 있지 않을까?

 

진 문공이나 제 환공같이 성공한 패자의 비결을 알려달라는 속(?)보이는, 맹자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대꾸한다. "저희(공자의 제자)들은 환공이나 문공의 일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 들어본 적이 없다고? 참으로, 참으로 앙큼(^^)하신 거짓말.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

주어는 중니지도(仲尼之徒), 말 그대로 공자의 무리들, 맹자는 공자의 제자임을 자처했으므로 여기서는 저, 또는 저희들. 무(無)는 없다, 무엇이 없는가? 도(道)하는 것이 없다. 도(道)는 말한다의 의미를 가지므로 말함이 없다. 무엇을 말함이 없는가? 진문(진 문공과 제 환공)의 일을. 따라서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에서 끊어주고 是以는 이에, 후세에 없다. 무엇이? 전해지는 것이(焉). 是以後世無傳焉에서 끊난다. 신(臣)은 주어, 강조를 위한 도치가 들어와 있고 未之聞, 즉 들어본 것이 없다. 臣未之聞也.정리하면 "저희(공자의 제자)들은 환공이나 문공의 일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맹자』 <양혜왕 상 7>, <공순추 상 1> 게다가 『논어』<헌문>, <팔유> 등등, 진 문공과 제 환공 그리고 관중에 관한 이야기는 일일이 꼽지 못할 정도로 흔하고, 다른 학파와 곧잘 충돌하는 지점이어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선생이 들은 바가 없다고 잡아떼는 것은 그것을 말하기 싫으신 것(짜증 지대로)이고, 왜 하필 이(利)를 말하느냐는 것과 말인데 단지 상대가 상대인지라 표현만 좀 완곡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선생이 그 다음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나는 들어본 적 없다며 단호히 말을 자르시곤, 바로 이어서 한 단계 낮은 톤으로 그것도 조심스런 어감이 잔뜩 묻어나오는 말투로, "그런데, 저기, 그만하라고 하지 않으신다면, 저가 '왕 노릇하는 일'을 말해 봐도 될까요(無以則王乎)?" 이런 조심스러움, 이런 부드러움이라니. 이건 평소의 선생답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은근한 접근.

 

아아, 선생은 정말 제(齊)나라라는 일류(一流), 메이져리그에서 뛰고 싶으신 것, 파급력이 큰 제(齊)나라를 지렛대로 삼아 한번 천하를 움직여보고 싶은 것. 망할 놈의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정신이 나간 미친 세상을 바로 잡아보고 싶으신 것이다. 제(齊)나라가 꼭 필요한 선생님, 이제 선생님의 본격적인 낚시질이 시작된다.

 

"덕이 어찌해야만 왕 노릇할 수 있을까요(德何如則可以王矣)?" 첫 번째 입질이 왔다. 입질에 선생 신이 나신 듯. 노련한 목동이 소를 몰아가듯, 어부가 고기를 몰아가듯, 살살 그리고 신중하다. 남들은 왕 노릇하는 일이 막연한 소리나 어려운 일로 여기는데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고 아주 쉽다. "백성을 잘 돌봐주기만 하면 왕 노릇하는 것이고 그리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保民而王莫之能禦也)." 앞에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말, 선생이 정말 하고 싶던 말.

 

그런데 저 선왕이란 사람 좀 보소. "저 같은 사람도 백성을 잘 돌보아 줄 수 있을까요(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때 아닌 겸양으로 살짝 몸을 틀어본다. 녹녹지 않은 상대. 사실 이 겸양 속에는 어느 정도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좀 심하게 말하자면 '바보들이나 가능한 일'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숨어있다. 이럴 때 보통사람들이라면 지레 말문이 막히고 기가 꺾이기 쉬운데, 어디 선생이 보통사람이던가?

 

위축? 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그딴 것 모르신다.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다. "충분하거든요(可)." 바로 이어지는 대꾸.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何由知吾可也)?" 여기서도 제 선왕의 말투가 쪼~옴 거시기(?)하다. 깐죽거리는 태도가 '들어줄 테니깐 어디 한 번 설득해보렴' 뭐 그런 느낌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때쯤 되면 으레 등장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위기의 상황이거나 승부처라고 여겨지면 서슴없이 꺼내들던 그것. 자신의 필살기 '수사(修辭)'. 그런데 이 수사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大會戰)에 등장하는 만큼 미묘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몇 번을 되돌려가며 음미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게 되곤 하는 부분.

 

맹자는 멀리가 아니라 가까운데서 시작한다. 즉 제 선왕의 과거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아마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왕께서 당위에 앉아있었는데, 소를 끌고서 당 아래를 지나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그것을 보고 묻길, ' 그 소를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 대답하기를 '흔종(釁鐘)하러 갑니다.' 왕께서 다시 말하길 '놓아 주거라. 나는 차마 그것이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죽으러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구나.' 그러자 대답하길 '그러면 흔종(釁鐘)을 하지 말라고 할까요?' 왕께서 말하길 '어떻게 흔종(釁鐘)을 그만둘 수 있겠느냐? 소를 양으로 바꿔라(王坐於堂上有牽牛而過堂下者王見之曰牛何之對曰將以釁鐘王曰舍之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對曰然則廢釁鐘與曰何可廢也以羊易之)." 맹자의 마지막 말은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까(不識有諸)?"

 

우리는 알지만 제 선왕은 여기까지도 왜 맹자가 뜬금없이 자신의 과거 일을 들추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有之)." 낚였다. 제 선왕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맹자의 논변의 일 단계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일단 낚시를 거는 데는 성공.

 

이제 맹자가 제 선왕을 당겨내는 장면. "이런 마음이면 왕 노릇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겠지만 저는 진실로 왕이 차마 하지 못함을 압니다(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爲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제 선왕은 아마도 어지간히 인색한 양반이었나 보다. 백성들이 희생(犧牲)으로 쓰일 큰 소가 아까워서 작은 양으로 바꾸었다고  여길 정도로.

 

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爲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시(是)는 이것, 족이(足以)는 충분히 ~할 만하다. 왕(王)은 왕 노릇하는 것, 이른바 요순(堯舜)으로부터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에 이르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말한다. 의(矣)는 단정의 의미를 가지는 종결어미이므로 여기서 한 번 끊어준다. 이런 마음이면 왕 노릇하기에 충분합니다(是心足以王矣). 백성은 주어, 개(皆)는 모두, 이(以) ~위(爲) ~ 이 구문은 자주 나온다. ~을 ~로 여기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인색(愛)하다고 여긴다(百姓皆以王爲愛也). 신(臣)은 주어, 고(固)는 위의 개(皆)와 마찬가지로 부사로 쓰여 여기서는 진실로. 동사는 안다(知), 무엇을 아는가? 왕이 차마 못함을(臣固知王之不忍也). 정리하면 "이런 마음이면 왕 노릇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겠지만 저는 진실로 왕이 차마 하지 못함을 압니다."

맹자는 침착하게 제 선왕의 본심으로 다가선다. 저는 알지요. 왕께서 정말 맑고 큰 검은 눈의 소를 보고 차마 하지 못한 것을 알지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니 제 선왕, 이 대목에서 아마 귀가 솔깃해져 자리를 당겨 바짝 다가앉았을 것. 감동 먹었을 제 선왕과 일단 자신의 말빨, 혹은 기술이 들어갔다고 판단한 맹자의 한결 여유로워졌을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덧붙이는 글 | ^^


태그:#공자, #맹자, #제선왕, #맹상군, #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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