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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엄마노릇 10년차다. 하지만 엄마노릇은 갈수록 어렵다. 요즘 세상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과연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늘 고민한다. 동병상련, 이 고민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엄마들이다. 여러사람에게 귀를 열어봐도 자녀 얘기에는 역시 엄마만한 전문가가 없다. 단, 엄마들은 미완성 전문가다. 열정과 마인드 면에선 누구보다 전문가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선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올해 10년차 엄마인 나는, 좀 더 마음을 열고 '보통' 엄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유별나지는 않지만 조금은 특별한 엄마들의 자녀 교육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기자 말> [편집자말]
"엄마, 오늘 학교에 경찰관이 와서 어떤 오빠를 데려갔어요."
"왜?"
"학교폭력 때문이라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어요."

며칠 전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충격적인 말을 했다. 학교 안에 경찰차가 와서 같은 학교 다니는 오빠를 데려가는 모습은 충격이었으리라. 정확한 이유는 모른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아이들은 '학교폭력'이라는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 저희끼리도 잘 쓰는 모양이다. 가끔은 아이들이 어떤 질문을 해올까봐 두려울 때가 있다. 가령 '희망버스'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희망버스가 '희망 없는 사회에 대한 처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희망버스를 떠올리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요즘, 우리 사회에 정말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그런데 도대체 희망이란 게 뭘까? 국어사전이라도 다시 펴봐야 할 만큼 어색하다.

다음 달 만기되는 적금? 원하던 아파트 분양? 우리 아이 실력 향상? 이런 것들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실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 '희망'. 그럼에도 오늘 나는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다. 두 딸아이의 엄마. 이미경(39)씨를 만나고 나서다.

 이미경씨. 둘째를 입양했지만 사람들이'그냥 평범한 두 딸의 엄마'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비록 넉넉하진 않아도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미경씨의 바람이다.
이미경씨. 둘째를 입양했지만 사람들이'그냥 평범한 두 딸의 엄마'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비록 넉넉하진 않아도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미경씨의 바람이다. ⓒ 안소민

전주에 사는 미경씨는 2년 전, 둘째 아이를 입양했다. 큰아이가 5살 때였다. 미경씨가 입양을 처음 생각한 것은 대학시절 지금의 남편과 영아원 봉사활동을 갔을 때였다. 그 당시엔 그냥 막연했다. '입양을 해도 좋겠다'는 다소 뜬구름 같은 생각이었다. 결혼한 뒤 큰아이가 세 살되던 해, 남편의 직장에서 '홀트아동복지관' 주최로 열린 입양의날 행사에 우연히 참석했다. 남편과 상의 후, 입양을 결심하고 입양신청서를 제출했다.

"평생 후회하며 사느니 우리가 키우자"

기자(이하 파란색 글씨) : "입양신청서를 쓰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미경씨(이하 갈색 글씨) : "물론 많이 고민했죠. 그런데 그때는 왠지 입양을 꼭 해야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둘째 계획이 있었나요?"
"사실은 전혀 둘째 계획이 없었어요. 제가 일 욕심이 많아요. 제 일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 요즘 세상에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게 경제적으로도 힘들잖아요. 그냥 하나만 낳으려고 했죠."

그런데 미경씨는 입양을 신청했다. 미경씨는 입양신청서만 쓰면 바로 입양이 되는 줄 알았을 정도로 입양에 대해서 무지했다. 신청서를 쓰고 계속 기다렸다. 전화도 해봤다. 그러나 입양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불임부부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는 것도, 미경씨네 입양이 지연되는 이유였다. 그러는 사이에 미경씨도 입양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큰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어느 날 돌연 연락이 왔다.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건강하고 좋은 아이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거예요. 만약 그쪽에서 '입양하실 의향이 아직도 있나요?'라고 물어봤다면 머뭇거렸겠지만 '준비하라'는 말에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그렇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젠 현실이 되어버렸잖아요."
"복지관에서 메일로 아이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때가 생후 30일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 큰아이 어렸을 때와 똑같았어요. 너무 신기하다 생각하면서 며칠 후에 직접 보러갔는데, 그땐 또 안 닮았더라구요"(웃음)

"아무래도 인연이었나 보네요."
"그런데 2년 동안 입양을 잊고 살아서 그런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큰아이도 유치원 다녀서 잔손 가는 일도 줄어들고, 제 직업도 안정되고, 남편도 그렇고. 우리 가족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안방에서 남편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가 꼭 해야 되는 일은 아니잖아'라고 결론 내렸는데도, 거실 나가면 그 아이 얼굴이 어른거렸어요. 이러기를 수백 번, 수천 번도 넘게 했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마침내 결정했죠."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었다. 입양 이유는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살아가면서 평생 그 아이가 눈에 밟힐 것 같았다. '올해는 몇 살 되겠네', '잘 살고 있으려나', '초등학교 입학하겠네', '시집은 갔을까' 하는 생각들이 미경씨 부부를 평생 쫓아다닐 것만 같았다. '그렇게 후회하느니 차라리 우리가 키우자'고 생각했다.

가족모임에서 눈도 안 마주치던 시아버님이...

부모님께 입양을 설득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친정 부모님은 어찌어찌해서 설득했지만, 시부모님은 설득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너희가 알아서 해라' 하시며 짐짓 뒤로 물러나시는 것 같았던 시부모님께 입양사실을 통보(?)했더니 그제야 극심한 반대를 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평생 부모님 말씀 거역한 적 없던 아들 며느리였지만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 말씀을 어겼다. 입양한 후 미경씨는 시아버님으로부터, 함께 다니던 교회도 앞으로 나오지 말라는 '금지령'까지 들어야 했다. 흔히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하지만, 미경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 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시부모님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처음엔 많이 울었고 원망했죠.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분들 생각에서는 입양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당신 자식들이 겪을 고생이 염려됐던 거죠. 그게 바로 부모 마음이죠."

"지금도 시부모님과 연락을 안 하나요?"
"입양한 뒤 한 달 후 가족모임이 있어서 아이를 데려갔는데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던 아버님이 이제는 달라졌어요. 손주들이 다 커서 집에 어린아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많이 귀여워하세요."

내 가까운 주위에는 입양가족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경씨의 그런 결심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했다. 일부 연예인들이나, 아주 뭔가 특별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입양을 할 거라는 일종의 편견이 있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 아니었다. 정말 특별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입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특별한 마음은 특별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미경씨가 쓴 둘째의 육아일기. 눈물로 쓴 적도 많지만 동시에 그것은 기쁨이기도 했다.
미경씨가 쓴 둘째의 육아일기. 눈물로 쓴 적도 많지만 동시에 그것은 기쁨이기도 했다. ⓒ 이미경

미경씨는 참 평범하다. 1970년대 대한민국 한 시골 가정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 시절 맏딸들이 그랬듯, 동생들을 위해 참아야했고 때론 양보도 해야했다. 평범한 대학을 나왔고 연애해서 결혼을 했으며 평범한 가족을 이루었다. 미경씨 어렸을 때 별명은 '모과'였단다.

"제가 어렸을 때 예쁜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별명이 모과였어요. 남들에게 주목받으려면 착해야 했어요. 어른들 모여 계실 때 식혜도 떠다드리고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인사도 잘하고. 그래서 착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게 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세상이 되었죠."
"그래요. 제 큰 딸을 보면 꼭 저를 보는 것 같아요. 너무 애어른 같다고 할까. 뭐든 동생한테 양보하고, 자기 마음 티 안 내고. 그래서 안쓰럽죠. 그래서 큰애한테 누가 착하다고 말하면 이렇게 얘기하라고 알려줘요. '네. 착한 건 좋은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도 관심은 가져주세요.'"

'착하다'는 말이 욕? 그래도 '착함의 힘'을 믿는다

미경씨는 착하다. 착하다는 말이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착한 건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착한 미경씨, 슬며시 짓궂은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두 아이가 다투면 누구 편을 들까. 무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지만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도 오히려 미경씨에겐 짐이 될 수 있다. 그냥 두 딸을 둔 보통 엄마에게 물어보듯, 물어보았다.

"둘이 다툴 땐 누구 편을 드나요?"
"아무래도 둘째 편을 많이 들게 되요. 일부러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정말 둘째는 뭘 해도 예뻐요, 정말. 사실 첫째보다 고집도 세고, 강한 데가 있어요. 그런데 너무 귀여워요. 투정부리는 것도 예쁘고, 심술부리는 것도 예뻐요."

미경씨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다. 여느 엄마들과 똑같다. 첫째에서 느끼지 못한 둘째의 '재발견'. 나도 그랬으니까.

 첫째 딸 지민이와 둘째 딸 지나. 사이좋은 자매다. 미경씨는 두 아이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길 바란다. 여느 엄마들이 다 그러하듯이.
첫째 딸 지민이와 둘째 딸 지나. 사이좋은 자매다. 미경씨는 두 아이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길 바란다. 여느 엄마들이 다 그러하듯이. ⓒ 이미경
자신과 사뭇 다른 둘째를 키우며 미경씨는 그 아이에 대해 날마다 배운다. 시시각각 새로운 점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신비로움을 느낀다. 둘째를 입양해 키우면서 미경씨는 첫째도 이렇듯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단다. 자식은 언젠가 부모 품을 떠난다. 어느 아이든, 내 몸을 빌려서 세상에 나온 것일뿐, 아이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미경씨의 말에서 또 하나를 더 배웠다.

"어느 날, 교회에 데려갔는데 성가대 지휘하는 분이 저희 둘째에게 성악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거예요. 사실 저희 집안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데 아이 친엄마가 성악을 전공했어요. 참 신기하죠?"

"아 그랬군요."
"나중에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친부모에 대해서 메모해두었어요. 그냥 머리로 기억하면 다 잊어버리니까요. 너희 친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경씨는 어딜가나 입양 사실을 밝힌다. 공개입양이다. 주위에선 그냥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미경씨는 나중에 모든 사실을 다 알려주고 싶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해서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다.

물론 쉽지않다는 걸 미경씨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입양 사실을 원만하고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가족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셋째를 계획한다면, 역시 입양으로

요즘 미경씨 부부는 가급적 홀트아동복지관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또 입양을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만은 열어두고 있다. 만약 셋째를 계획한다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말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그래도 전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가끔은 저희도 놀라요. '어떻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입양을 했을까'라고요. 입양은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아직은 드물 뿐이죠."

"미경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뭘까요?"
"평소에는 고운 눈길로 봐주시던 분들도, 아이가 심하게 울거나 보채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세요. '도대체 근본이 어떤 애기에', '부모가 어떤 사람이기에 애가 저럴까' 하는 시선들요. 저는 무딘 편이어서 그냥 지나치지만 가끔 대놓고 말씀하는 분들 있어요. 그럴 때 저도 상처받죠.

아이가 아프거나 짜증나면 우는 게 당연한데 저희 둘째가 울면 '엄마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니'라고 저를 위하듯 말씀하시는데, 그건 절대 저를 위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린아이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니까요. 저를 그냥 두 딸의 보통 엄마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첫째의 육아일기가 환희와 신비로움, 기쁨으로 가득했다면 둘째의 육아일기는 마음고생으로 인한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우리는 함께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더 큰 사랑이다. 

"요즘 아이 키우는 데 최소 2억은 든다고 하죠. 저희도 넉넉한 건 아니지만 큰 사랑을 주고 싶어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을요. 비록 가진 건 별로 없어도 서로 의지하고 돕고, 함께 나누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 부족해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네요." 

'정말 그런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생략했다. 미경씨의 얼굴에서 이미 답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더불어 사는 세상',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음'이란다. 유일하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다. 그것이 바로 '희망'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공개적으로 입양을 했다하더라도, 인터뷰까지 결심이 쉽지 않았을텐데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해준 이미경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엄마를 만나다#입양#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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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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