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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 대련시 탁본>으로, 대구시청년유도회 특별기획전의 도록에 실린 것을 스캔한 것이다.
 <주자 대련시 탁본>으로, 대구시청년유도회 특별기획전의 도록에 실린 것을 스캔한 것이다.
ⓒ 대구시청년유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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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와 '소동파'가 대구에 왔다. 그들을 대구까지 초빙해낸 대구시청년유도회(이하 '대구청유') 이창환 회장은 "그 분들이 대구에 온 것은 처음이다. 아마 우리나라 전체로 쳐도 이런 모습으로는 처음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이란 탁본을 뜻한다. 중국 강서성 여산 폭포에 새겨진 이백의 시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를 비롯해 소동파의 '念奴嬌(염노교)', 주희와 황정견의 대련시(對聯詩),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등을 탁본한 33작품 49점의 희귀 진본이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회관에 전시된다.

하지만 그 이후 그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중국 역대 명가 서화 탁본전'에 출품된 탁본들이 모두 대구청유 회원들의 소장품이기 때문이다. 대구청유 200여 회원들은 지난 10여 년에 걸쳐 중국을 답사한 끝에 상업적 목적의 복각본들만 횡행하는 와중에서도 초기의 진탁본(眞拓本)을 어렵게 구입하는 데 성공했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일부 작품을 이번에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특히 대구청유는 한학자 이갑규 씨 등에게 의뢰하여 전시 작품들을 번역, 도록도 발간했다. 대중들이 원문에 들어 있는 고매한 진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다. 대구청유 채영화 부회장은 "올해로 창립 33년을 맞아 그 동안 펼쳐온 사업의 일부 결실을 보고자 이번 기획전을 열었다"면서 "붓으로 문(文)을 담아내는 서예 작품의 진귀한 탁본을 전시하고, 또 도록도 발간한 것은 예술적 감상과 교훈적 독서의 일석이조를 자체 회원들과 대구시민들에게 제공하려는 저희 단체의 마음입니다."하고 말했다.

탁본의 내용을 읽어본다. 물론 쉬운 글자가 크게 적혀 있고, 해서에 가까운 작품부터 골라서 읽는 것이다. 주자의 대련시 탁본이 가장 적당한 대상으로 떠오른다.

 탁본전 도록의 표지
 탁본전 도록의 표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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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月兩輪天地眼 (일월양륜천지안)
詩書萬卷古人心 (시서만권고인심)

'해와 달 두 바퀴는 천지의 눈이요, 시와 책 만 권은 옛사람의 마음이다'라는 뜻이다. 북송 시대의 채양, 황정견, 미불 등의 뒤를 잇는 최고의 고수로 정평이 난 그의 서법을 대구에서 보게 된 것도 대단한 행운이지만, 인쇄된 글자로 읽던 것과 달리 이렇게 진품 탁본으로 문장을 읽는 맛은 새롭고도 진득하다.

이번에는 이백의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를 읽어본다.

日照香爐生紫煙 (일조향로생자연)
遙看瀑布掛前川 (요간폭포괘전천)
飛流直下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 (의시은하낙구천)

 이백의 시 <望廬山瀑布>를 명나라 말기의 화가이자 문인인 왕탁(王鐸)이 여산폭포에 새겨 넣었다. 기사의 그림은 대구청유가 펴낸 도록에 수록된 탁본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이백의 시 <望廬山瀑布>를 명나라 말기의 화가이자 문인인 왕탁(王鐸)이 여산폭포에 새겨 넣었다. 기사의 그림은 대구청유가 펴낸 도록에 수록된 탁본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 대구청년유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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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에 쓰인 글씨가 '예술'의 경지였다. 반듯반듯한 한자 정도만 겨우 읽는 수준의 필자에게는 말 그대로 난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 본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우리 고전 강독 때 가르치고 배운 것이라 그런 대로 넘겨짚어가며 읽어낼 수는 있었다. 내친 김에 필자 나름대로 번역까지 해보았다. 그 뒤, 도록의 해석과 견줘보니 엇비슷했다.

햇빛이 향로봉을 비추니
보랏빛 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눈앞에는 시내가 걸려 있구나
나르는 듯 흐르는 물길이
삼천 길이나 곧게 떨어지니
은하수가 먼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듯 하도다

전시장에 가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한나라 시대 탁본도 5점 볼 수 있다. 유명세로야 견줄 이가 없는 왕희지의 난정서 탁본도 4점이 걸려 있다. 가장 최근인 청나라 시대의 작품도 있으니 중국 역사 전체에 걸친 진탁본전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대구청유는 탁본집 '서언'에서 "동양고전과 서예, 그리고 금석학을 연구하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권학상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을 드린다.

게다가, 원문 모두를 읽고 싶으면 대구청유가 발간한 도록을 구입해서 천천히 음미해가며 감상하면 되니 답답할 것도 없다. 대구청유가 여러 모로 전시회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제 시민들이 많이 찾아 예술적 감상과 교훈적 독서를 즐길 일만 남았다.


#대구청년유도회#왕희지#소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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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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