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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에서의 둘째날, 비가 몹시 내렸다. 인형웨이터와 꼬맹이, 고양이는 지난밤에 저희들끼리 온 골목을 쏘다니다가 뒤늦게 게스트하우스 창문을 두드렸다. 그리곤 아침이 밝아오는지도 모르고 방구석에서 곯아떨어졌다.

 

고양이는 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졌는지 몸에서 퀘퀘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머지 둘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왔었다. 어린애한테 술을 먹이면 어떡하냐고 내가 따지니까 인형웨이터는, 한밤에 젊은이들이 술을 사고 있기에 그 곁에 붙어있다가 누가 놓고 간 몇 병을 혼자 마시는데 꼬맹이가 보채서 조금 줬다는 거다. 아침까지 그 냄새들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Y의 집에서 아침을 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와 조제 그리고 시인과 가이드는 우산을 쓰고 그의 집으로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의 집엔 여름장미가 하얗게 피어있었다. Y는 우리를 들이곤 소담한 식탁으로 모두를 앉혔다. 농어와 감자, 익힌 시금치와 게살 샐러드가 곁들여진 접시가 하나씩 놓여졌고 우리는 보슬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 보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보카 외에 탱고로 유명한 곳은 없나요?"


나는 농어를 썰며 시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키고는,


"산텔모가 있어요. 산텔모 가요제로 유명한 곳이죠.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 할 수 있는 곳이죠. 이 곳은 독재 시절에도 독특한 보헤미안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어요.  1950년대 후반에 이곳에 현대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탱고 뮤지션들과 댄서들도 활동무대를 마련했어요. 1969년엔 탱고 가수 에드문도 리베로가 식민지 시절의 식료품점을 개조해서 뮤직홀로 만들었는데, 그곳은 산텔모 탱고의 상징이 되었고요."


"아르헨티나의 독재 시절이라...감이 잘 안오네요. 거리마다 우아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문화들로 둘러싸인 이 곳에 독재라니... "


그러자 가이드가 얼른 안경테를 끌어올리며 말을 잡아챘다.

 

"아, 그건 내가 알려줄게요. 흠흠, 페론 대통령과 그 영부인 에비타의 시절은 한마디로 탱고의 시대였어요. 하지만 1955년 콰르릉하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말았지요. 그와 함께 찬란했던 탱고의 황금기는 무참하게 쓰러졌고요.

 

난리도 난리도 아니게 30년 간 군사 독재는 계속됐지요.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탱고 같은 건 거들떠 볼 수도 없었어요. 왜냐? 탱고는 여러명의 관객들이 모여서 보는 공연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3명 이상 함께하는 모임이면 무조건 금지시키는 상황이니 아예 공연 같은 건 할 수도 없는 거죠. 그러니 그간 페론의 민족주의 덕분에 활성을 누렸던 탱고가 확실히 제거된 시대라고 할 수 있죠. "


"독재 시기엔 어느 나라건 문화가 탄압받는 군요. 저,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대해 몰랐던 걸 알게 되면서 이 나라에 점점 흥미가 느껴져요. 열망을 잃어버렸지만 끝없이 갈구하는 나라? 뭐 그냥 제 느낌은 그래요. 현재 제가 골치 아픈 것과도 비슷한 상황인 것도 같고."


나는 농어 조각을 씹으며 조용히 말했다. 시인은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신대륙의 식민지 국가로 시작한 나라였어요. 한마디로 누군가의 개척과 모험의 무대였다는 의미죠.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다툼이 이 나라를 이끌어온 근본이었단 말이죠.

 

스페인이 이 나라에 가진 시각을 보면 그걸 잘 알수가 있어요.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이름은 라틴어 '아르겐툼(Argentum)'에서 유래한 건데요, 아르겐툼은 '은(銀)'을 의미해요.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로 진출을 시작했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이 지역에 은이 넘쳐난다고 굳게 믿었어요.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은이 흐르는 강', '은의 땅' 으로 부르기도 했었죠. 보물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들의 귀에 아르헨티나 라는 나라는 황금광으로 보였단 말이죠.

 

물론 그들이 만족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보물이 있을 거라는 잘못된 판단, 혹은 진짜 보물을 발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 때문일 수도 있죠. 당신도 당신 자신을 스스로 탐험해 봐요. 그리고 자신의 보물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 그게 이 여행을 하는 목적인 거죠."


<계속>


#장르문학#중간문학#판타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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