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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휴일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직장인 여성들
▲ 우리들의 휴일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직장인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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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옛날엔 아주 큰 명절 중 하나였단다. 올해는 6월 6일이 단오였고, 우리에겐 단오보단 현충일로, 또 현충일보단 신나는 '빨간 날'로 더 다가오는 날이었을 거다.

<오마이뉴스>에서 내게 단오날 단오의 풍습을 한번 따라해보라고 했다.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를 뛰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나는 물론 흥미를 느꼈지만,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6월 6일에 약속이 없을 것 같은 세 처녀를 불러모았다. 처녀들은 적극적으로 이 단오놀이에 동참하겠다고 부르짖었다. 물론 하루 전날까진 말이다.

창포비누 창포물을 구할 수 없어 마트에서 사온 창포비누.
▲ 창포비누 창포물을 구할 수 없어 마트에서 사온 창포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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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오날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포물에 감은 머리를 휘날리며 경기도 고양시 원당 종마목장의 푸르른 벌판에서 그네를 뛰며 우리가 손수 만든 동물 모양의 볏짚핀을 머리에 꽂고 1년의 잡귀를 쫒는 행위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황금 같은 휴일에만 만끽할 수 있는 '늦잠'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오를 위해 합숙에 들어간 우리들은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으며, 어제와 같은 의욕을 가진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심지어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해보자라는 의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마트에서 겨우 구해온 창포 비누로 머리를 먼저 감은 A양이 아직도 침대에 널브러진 다른 처녀들을 깨워 차를 타고 종마목장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A양 역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목장 앞에 도착해서야 오늘이 목장 휴일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창포비누로 머리 감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감는 A양
▲ 창포비누로 머리 감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감는 A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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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목장 옆에 있는 서삼릉으로 바꾸고, 맘이 급한 A양이 머리에 꽂을 동물 모양의 볏짚인형 만들기를 독촉했다.

"볏짚을 어디서 구해?"
"단오는 아무 풀이나 먹는 날이니, 아무 잎사귀로도 머리에 꽂으면 잡귀가 물러날거야. 일단 머리에 꽂는 게 중요하다구."

꽃비녀 원래는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볏짚을 모아 동물 모양의 머리핀을 만들어야 했지만, 직장인 여성에게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 꽃비녀 원래는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볏짚을 모아 동물 모양의 머리핀을 만들어야 했지만, 직장인 여성에게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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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삼릉 곳곳을 저 모양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네가 없으니, 씨름을 하자."
"여기서 씨름을 어떻게 해."

씨름 돗자리에 누운 세 커플을 배경으로 단오의 풍속을 즐기고 있는 직장인 여성
▲ 씨름 돗자리에 누운 세 커플을 배경으로 단오의 풍속을 즐기고 있는 직장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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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연인들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휴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곳에서 두 처녀는 마지못해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웠지만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지 않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한때는 엄청나게 큰 명절 중 하나였던 단오 날, 웹검색을 해보면 그날에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지만, 지금은 지역 몇 군데에서만 이벤트식으로 행사가 열려 안타깝다. 그리고 생각보다 개인적으로 단오의 풍습들을 따르는 것도 꽤 어려웠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이벤트를 하기엔 적격인 날이 아닐까.


#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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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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