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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편
▲ <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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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과 그가 창조한 형사 매그레 반장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심농은 1931년에 자신의 본명으로 매그레 시리즈의 첫 작품을 발표한 이후, 1972년에 마지막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40여 년 동안 이 시리즈를 이어왔다. 매그레 시리즈는 장편만 75편에 이를 정도이니, 장편만 따지더라도 평균 1년에 2편 가량을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기간동안 매그레가 등장하는 단편과 그밖의 다른 소설 및 르포들도 꾸준히 발표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심농은 엄청난 속도로 글을 써낸 전형적인 다작형의 작가인 셈이다.

심농이 대단한 것은 단지 '많은 작품을 썼다'라는 사실이 아니다. 그가 쓴 매그레 시리즈는 대중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었기에 상당수의 작품들이 영화 및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무엇이 매그레를 셜록 홈즈나 아르센 뤼팽에 버금가는 유명인으로 만들었을까.

거구이지만 차분하고 침착한 수사관 매그레

매그레 시리즈 1편인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매그레는 파리 치안국 기동 수사대의 반장으로 첫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체구를 보면 '기동'이라는 단어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180cm의 키에 100kg이 넘는 그의 체격은 시쳇말로 거대한 '통뼈'다. 어디서든 떡하니 버티고 서는 것만으로도 동료들까지 위축될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위압적이거나 오만한 인물은 아니다. 맥주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고, 셜록 홈즈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처럼 파이프 담배를 선호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빈틈없이 진실을 추적하는 수사관이지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다정한 남편으로 변한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매그레의 나이는 45세다. 이때 이미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매그레의 진정한 개성은 외모가 아니라 그의 수사방식, 더 나아가서는 범인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에 있다. 매그레식의 수사는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는 것도 아니고, 권총을 들고 완력을 휘두르며 용의자를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매그레는 열심히 뛰어다니며 정보를 모은다.

시리즈 3편인 <생폴리앵에 지다>에서는 수사를 위해 파리와 벨기에를 수차례 왕복하며 관련 기관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4편인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운하를 따라서 70km를 질주하며 용의자를 찾아간다. 워낙 커다란 체격이라서 조금만 뛰어도 땀을 뻘뻘 흘리지만 한번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게해서 사건해결에 가까워지더라도 매그레는 즉각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부하들에게 자신의 추리과정을 들려주지는 않는다. 매그레는 조용히 범인과 단독으로 대면한다. 그러면 범인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매그레에게 털어놓는다. 때로는 매그레가 추측한 범행의 진상을 범인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범인이 가지고 있는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고 불행한 것들 뿐이다. 매그레 시리즈에는 교활하고 천재적인 전문범죄자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몰린 사람, 오랜 세월동안 학대받고 무시받아온 사람, 회한과 자포자기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매그레의 범인들이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매그레 시리즈'

<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편
▲ <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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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살아오면서 행복은커녕 표면적인 평화조차도 누릴 수 없었다. 이들이 가진 구구절절한 사연 속에서 매그레도 인간적인 동정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그레는 이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하기 보다는 그냥 방관(?)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매그레는 범인이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하도록 놓아두는가 하면, 진실을 밝혀내고도 '미제(謎題)사건으로 처리하자'라고 상관에게 보고한다. 그것이 자신의 경력관리에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그레가 담당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그 발단이 시작된다. 10년 전의 사건을 가슴에 품은 채 그 기간동안 절망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 오래 전에 있었던 일로 20년 가까이 공갈협박을 받아온 사람, 사랑의 힘을 믿은 채 10년이 넘는 강제노동을 견뎌온 사람들이 그런 사건의 주인공이다.

과거의 일을 이제와서 다시 들춰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래된 사연과 파란만장한 삶 앞에서, 매그레도 냉정하게 진실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욕심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매그레 반장의 매력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빠른 두뇌회전 및 과감한 행동력과 함께 범인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감성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매그레 앞에서 많은 범인들이 스스로 무너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많은 추리소설의 무대가 그렇겠지만, 매그레가 활약했던 세계도 밝고 유쾌한 세계가 아니었다. 모든 존재나 냄새, 인생 등이 뒤섞이고 얽힌 무겁고 답답한 세계였다. 그안에서 펼쳐지는 매그레의 수사도 흥미롭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마치 프랑스판 <인간극장>을 보는 것만 같다. 조르주 심농은 매그레 시리즈를 통해서 범죄나 추리가 아닌,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수상한 라트비아인><갈레 씨, 홀로 죽다><생폴리앵에 지다><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이렇게 네 편의 매그레 시리즈가 5월 말에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네 편을 시작으로 이후 매달 2편씩의 매그레 시리즈를 출간해서 총 75권을 완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열린책들(2011)


#조르주 심농#매그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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