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뱌야흐로 소비자 주권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외인 곳도 있죠. 바로 병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에서는 유독 고개를 숙이는 '약자'가 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마이뉴스>와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환자들의 당당한 권리를 찾고자 '대형병원부당이용백서'를 공동기획하였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가끔 딸이 놀라는 경향이 있어서 소아과 진료를 보러 갔어요. 진료 시간이 짧은 건 그렇다치고, 뒤에 대기 중인 환자 5명이 함께 앉아서 진료를 보더라고요. 청소년이라 민감한 시기인데, 환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희가 꽤 여러 번 갔는데 매번 그렇게 다 같이 진료를 하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서울의 A대형병원을 찾은 김명진(50)씨. 지인의 소개로 찾은 병원이지만, 아이에게 병원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겨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직업은 의사. 대형병원 이용과 관련해 불편을 겪는 데 의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대형병원 이용과 관련해 크고 작은 불만들을 이야기한다.

의사도 불만인 대형병원, 일반인들은 더하다

설명 간호사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환자.
 설명 간호사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환자.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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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측에 따르면, 하루 이 병원을 이용하는 외래환자는 약 7000~8000명 선. 입원환자는 1500명 정도이다.

이 병원 설명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아무개(39·여)씨는 "환자 중에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새벽에 KTX를 타고 오거나 병원 주변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진료를 기다렸다고들 하세요, 그런 수고로움에 비해 진료시간은 너무 짧다며 불만을 털어놓곤 하시죠"라고 말한다.

서울대병원은 15분 간격으로 환자 예약을 받는다. OO과의 진료예약표를 보니 15분 사이, 11명이 배정되어 있다. 이를 단순 계산해보면 1.36분(15분÷11명)이 나온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의사 1인당 외래 환자 수는 390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숫자일 뿐,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형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기시간은 긴데 진료시간은 짧고, 의사의 설명은 불친절하다'고 느낀다.

1년 넘게 서울대병원 신장내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최은경(34)씨는 언제부터인가 검사에 대한 결과 문의를 담당 의사가 아닌 설명 간호사에게 듣고 있다.

"환자 대기수가 많아서 그런지, 검사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아요. 뭐, 괜찮습니다. 더 싱겁게 드시고요. 한 달이나 6주 후에 봅시다, 이게 다죠. 한 달 주기로 진료 받는 건데, 그동안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근데 의사 앞에서는 그걸 묻는 게 참, 뭐랄까, 어려워요. 쓸데없는 걸 묻는다는 반응이랄까.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설명 간호사를 찾았는데, 정상치 대비 이번 검사 결과는 어떻고, 음식은 어떻게 먹는 게 좋고, 운동은 어떻게 하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더라고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한 거예요. 사실 이건 의사의 역할 아닌가요?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는 그래도 보다 숙련되었을 것이라 믿는 의사한테 진료받기 위해서인데, 이건 좀 아니다 싶어요."

이러한 민원을 병원이 모를까. 그럴 리 없다. 박 간호사는 "병원 만족도 평가가 도입됐는데, 다른 부분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 환자들의 만족도가 낮게 나와 설명 간호사 제도가 도입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병원에서 자랑스레 내건 설명 간호사 제도는 사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민원을 고려한 자구책인 것이다.

실제로 짧은 진료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입장을 고려해, 이 병원에서는 2007년 8월부터 진료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설명간호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설명 간호사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를 선발해 예약부터 진료 후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 한다는 검사시행 이유, 검사 결과, 귀가 후 주의사항, 수술, 심지어 처방전 상담까지 환자가 궁금해 하는 점을 설명해준다.

병원 측은 "설명간호사에 대한 반응은 괜찮다, 설명간호사로부터 심도 깊은 의학정보 및 간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일하는 간호사의 말은 달랐다.

이 병원에서 설명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아무개(39)씨는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이를 설명하기가 가장 곤란하다"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검사 결과나 처방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게 맞지만 바쁘시니까 제대로 못하시고… 반해 환자분들은 알고 싶어 하시니까 저희가 최대한 알고 있는 범위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노력은 하지만, 저희도 다 아는 것은 아니라 뭐라고 말씀드리기 곤란할 때가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대형병원은 중증환자 중심? 대접 못 받는 건 마찬가지

서울대병원의 진료 대기 모습.
 서울대병원의 진료 대기 모습.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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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서울대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대형병원이 설명간호사를 두고 있지만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환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의사는 "대형병원은 외래 중심이 아니고 중증환자 중심 병원이기 때문에 기관의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증환자들 역시 대형병원 의사의 진료서비스에 대해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서울의 C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남편을 간호하고 있는 이인자(57)씨는 "회진 도는 날이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교수님만 기다리는데, 공지도 없이 오시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2011년 3월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을 지닌 환자 4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회진 중 담당의사(인턴, 레지던트 제외)가 머무는 시간은 2분 내가 83.3%이며, 5분 이상은 4.3%에 불과했다. 또한 환자 중 63.5%는 정기 회진을 제외하고 원할 때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질문 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가도 금방 왔다 가버리는 교수님 때문에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휴일에는 병원 직원이 거의 없어서 당연히 참아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밤에 열이 엄청 나서 호출로 간호사를 불렀는데 채혈을 하다가 잘 안 되니까 다시 나가서 감감 무소식. 환자 혼자 방치하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응답들이 있었다.

치료부터 결과까지, 환자는 '만족'하고 싶다

의료의 질은 대개 '과학기술적 의료의 질'과 '병원 서비스의 질', 이 두 가지 요소로 평가된다. 과학기술적 의료의 질은 암 치료 기술 등을 말하는데, 이 부분은 우리나라도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그럼에도 병원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못하다는 것.

건강세상 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대형병원의 환자 이용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병원 측이 진정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환자들이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치료부터 결과'까지의 만족도입니다. 검사는 기계가 할지 몰라도, 환자를 살리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건 사람의 일이지요. 거기서 서비스의 질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사람(의사, 간호사)에 투자하지 않고 병원 시설과 장비에 투자하다보니, 의사들은 하루에 몇 백 명씩 환자를 보고 환자들의 2분 진료의 불만은 계속되는 거죠."

박리다매식 진료행위는 수가 체제와도 관련이 깊다. 진보신당 건강위원장 김종명(포천의료원 의사)씨는 "병원을 다녀간 환자 수나 검사수로 돈을 지급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 체계는 의료의 질을 높이기보다 진료의 양을 늘리는 유인으로 작동 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미 선진국에선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08년 국립의료원(NHS) 산하 병원들의 수술 중 환자 사망률을 공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Center for Medical consumers(New York State), The Pennsylvania Health Care Cost Containment Council 등을 만들어 의료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09년 의료기관 정보공개제도 추진을 시도했다. 수술 성공률과 질병별 진료비 등 병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결과를 하나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아 공개하려고 했던 것. 그러나 의료계의 반발과 정부의 추진력 부족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병원평가정보를 조회할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제한적이고 복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미진(56)씨는 "병원을 찾을 때 가장 알고 싶은 것은 내가 가는 병원에 '어떤 선생님이 어떤 수술을 해서 얼마나 성공했는가'죠. 그런데 정말 필요한 정보는 감춰 두니까 큰 병원, 입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경애 대표는 "정부가 강력하게 의사나 병원의 수술 성공률이나 5년 생존률 등을 공개하면 되는데 질환별 정보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라며 "외국처럼 병원별 정보를 공개하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비효율도 줄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병원 간 격차도 줄어들어 의료서비스의 수준 전반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중심의 첨단 로비로 새 단장한 서울대학교병원'
 '환자 중심의 첨단 로비로 새 단장한 서울대학교병원'
ⓒ 서울대학교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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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대병원은 홈페이지에 '환자 중심의 첨단 로비로 새 단장한 서울대학교병원'이란 기사를 내걸었다. '쾌적한 진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 1월부터 5월까지 총 사업비 22억 원을 들여 로비를 새롭게 단장했다'는 것. '환자 중심'의 서비스 아이디어가 고작 로비 확장이라니.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럭셔리한 로비가 아니라 의사의 만족스런 치료와 설명이란 거, 병원은 진짜 모르는 걸까.


태그:#대형병원 , #설명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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