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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일제 시대 건물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 북성로 일제 시대 건물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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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과거에 대구 읍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위를 따져서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란 이름이 붙었다. 그 중 북성로는 근대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해방전까지는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적산가옥이 많던 거리였다. 신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왔기에 사람과 돈이 빠르게 움직이던 곳이었고, 식민지 하에서 대구경제를 움직인 최고의 번화가 였다. 특히 일본인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이 남다르다. 그 당시 대구 도심을 중심으로 북동에 일본인이 살고, 남서에 한국인이 살았다. 그리고 도심의 발달은 철저히 일본인 위주로 진행되어 시가지 간선도로의 건설과 확장, 상하수도 개설까지 전적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에 맞추어 건설됐다.

북성로의 일제시대 건물 .
▲ 북성로의 일제시대 건물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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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로 북성로 일대는 곧고 깨끗한 도로가 건설되어 대구 상권의 중심이 되기에 이르렀다. 백화점, 목욕탕, 철물점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섰고, 특히 1920년대에 대구에 처음 등장한 양복점은 북성로에만 있을 정도였다. 요릿집, 술집이 즐비해서 대구 최고의 번화가를 만들기에도 이르렀다. 지금도 북성로 곳곳에는 일본 적산가옥과 상가 등의 건축물이 남아있어서 그 시절 모습을 엿보게 한다.

한국 전쟁시기에는 향촌동과 더불어 해방 문학의 진원지로 이름을 알린 곳이기도 했다. 오상순,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유치환, 구상, 최정희, 정비석, 장만영, 이중섭 등이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 무너지고 헐어진 채 방치 된 북성로 골목 이곳 저것에는 그 시절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꽃자리 다방' 등의 역사적 증거들이 남아있다.

이후 한국 산업의 역동기에 북성로는 공구상들이 밀집한 거리로 이름을 올렸다. 북성로 공구거리가 만들어진 것은 60여년 정도 되고 유명해진 것은 약 30년 정도 됐다. 한강이남 최대의 공구거리로 이름을 알렸지만 최근에는 대구 산격동에 그 명맥을 이어주고, 그 결과로전성기에 비해 많은 가게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북성로에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북성로 우동과 연탄 불고기 정도다. 이것이 유명해진 이유는 택시기사들이 밤참을 해결하기 위해서 들르던 것이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부터다.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 일가족이 모두 나와 생업에 매달리며 고기를 굽는 것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어 대구 북성로를 알리고 있다.

북성로 연탄 불고기 대구를 알리는 서민 음식 중 하나다.
▲ 북성로 연탄 불고기 대구를 알리는 서민 음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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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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