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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노력만큼이나 좋은 결실을!
▲ 모내기 노력만큼이나 좋은 결실을!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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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한 달이나 늦은 모내기,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올해 우리집 모내기는 참 많이 늦었다. 막상 일 년 농사를 시작하려니 날씨는 좋은지 벼는 제대로 자랐는지 걱정스러운 게 참으로 많은 것 같다. 행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농사를 그르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15년을 넘게 해온 우리 오남매의 농사 일에서 올해 큰형부가 빠지게 되자, 이래저래 작은오빠가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일 마치고 고향집에 들러 늦은 저녁까지 조금이라도 더 심어야 모내기를 마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지 이미 반 정도는 마친 상태였다.

모판 떼는 작업 모판 떼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데...
▲ 모판 떼는 작업 모판 떼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데...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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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매가 날짜 맞춰 농사 일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서로 의논해가며 잘 지내온 것이 고맙게 여겨졌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마 큰형부의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고, 그 뒤를 묵묵히 따라 말없이 일해 온 작은형부나 남편, 사위의 역할이 많은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다.

가끔 어머니는 아들한테 하듯 사위들을 대할 때가 많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야단치고, 옆에서 보면 아들에게 야단치는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때론 옆에서 듣고 있는 우리가 더 민망하고 미안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보면 그저 고마움이 먼저이다.

모판 나르기 남편은 모판을 리어카에 실어다 논두렁 위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 모판 나르기 남편은 모판을 리어카에 실어다 논두렁 위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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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하기로 한 모내기를 조금 일찍 당겨 주말 오후에도 했다.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작은형부는 혼자서 어머니와 함께 모판을 떼고 있었다. 큰오빠도 일하다 다시 돌아가야 하고, 작은오빠 역시 일 마치고 오기 때문에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남편이 도착 할 무렵엔 늦은 점심을 먹고 큰오빠는 일터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피곤했는지 그늘진 곳에 잠시 누워계셨다. 그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작은형부, 원래가 말이 별로 없는 분이지만 유달리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왜인지. 심심하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한꺼번에 모여 할 땐 하루 종일 할 일이었는데 틈틈이 해서 그런지 일은 벌써 반이 줄어들은 상태였다. 잠시 쉬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큰오빠는 가고, 작은형부는 모판 떼는 일을 계속 했고, 어머니는 모판에 비료를 뿌리고, 남편은 그 모판을 손수레에 실어다 논두렁에 가지런히 갖다 놓았다. 그렇게 해놓고 나면 작은오빠는 그 모판을 기계 위에 올려 기계모를 심는 것이다.

논두렁 위의 모판들 이제 기계로 심는 일만 남았어요!
▲ 논두렁 위의 모판들 이제 기계로 심는 일만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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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일일이 품앗이를 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맘때가 되면 서로 돌아가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모내기를 해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고생스러움은 없는 것 같다. 좋긴 한데 아련한 추억은 없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다들 각자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그때, 느닷없이 어머니는 나를 불렀다.

"순희야, 니도 장화 신고 일해라. 뭐하고 있노?"
"뭐라꼬, 엄마가 우째 그랄 수 있노. 언제는 할라카믄 우리 공주 마아 그냥 그늘에 있거래이. 뭐 이러드마."
"빨리 마칠라 카믄 해야지 우야노. 놀고 있으믄 뭐하겠노."
"와아~~. 내가 우짜다가 이래됐는가 모르겠네. 엄마 섭하데이."

정말이지 한 번도 먼저 일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던 어머니인데 장화 신고 모판을 논두렁에 올려놓으라고 하셨다. 일하라는 소리에 내심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어머니의 몸이 힘들다는 소리임을 왜 내가 모르겠는가. 늘 생각하고 있던 일이지만 가슴이 아팠다. 구부정한 허리로 논두렁을 오가며 일하시는 모습. 지난 달, 못자리 만들 때보다 더 약해진 모습 같았다.

어머니의 두 사위! 말없이 일하는 작은형부와 남편, 미안하고 고마워요!
▲ 어머니의 두 사위! 말없이 일하는 작은형부와 남편, 미안하고 고마워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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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으스름 되려 하자 작은오빠가 도착했다. 능숙한 동작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며 모를 심기 시작했다. 큰형부가 빠진 자리가 참으로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언니들이며 조카들이 있고 시끌벅적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참 조용했다. 휴일에 다들 모일 거였지만 상황이 또 그렇게 되니 그 나름대로 조용한 가운데 모내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섭섭함을 뒤로 하고 모판을 논두렁 위에 올려놓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머니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웃으셨다. 섭섭하다고 누차 얘기하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며 자투리 모 심으러 간다며 휑하니 가버리셨다. 모판을 논에서 다 떼고 작은형부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우리가 오기 전에 안 그래도 어머니는 작은형부 옆에서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러냐고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얼마나 했었는지 모른다며 그제야 형부는 마음 속에 쌓인 것을 토로했다.

언제나 든든한 어머니! 모판 위에 비료를 뿌리고 계신 어머니!
▲ 언제나 든든한 어머니! 모판 위에 비료를 뿌리고 계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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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안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집 사위들은 처가 농사일에 참여했고, 당연하게 여겨왔다. 특별한 사위 대접이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이 대하는 어머니. 좋게 생각해야 할지 안타깝게 생각해야 할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형부들이나 남편은 그런 어머니를 뭐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말 오후, 모가 잘 심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다 흐뭇했다.

몸이 안 따라주니 말이 먼저 앞서고,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을. 어머니는 제대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모를 심고 있다. 그 옛날 동네 모내기는 빠지지 않고 다 하셨던 어머니였는데 이제 세월이 참 많이 흘렀는가보다. 아끼던 막내딸보고 장화 신고 일하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한 마디가 그간 어머니의 세월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하다.


#모내기#어머니#사위#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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