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론조사는 이론의 여지 없이 무림계 최대공방인 한나라방의 근혜여랑위가 여전히 30%대의 지지율로 부동의 무술 순위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드디어 학규공자가 야권 1위인 국민참여방의 도방 시민객장을 누르고 서열 2위로 등극했다. 그것도 무림국민 지지율 13%라는 경이적인 기록이었으니, 민주공방의 기세는 가히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권무도대련에서는 근혜여랑위의 압승으로 조사되었으므로 민주공방의 여러 도방들의 세력 대결 2라운드가 더욱 거칠어질 것임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다. 당장 세균무진장은 경남공국의 풍운아 두관거두장에게도 도방의 혈전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시민객장의 위세가 한풀 꺾이는 사이 국민참여방의 공력과 지력 대결도 점입가경, 고(故) 무현황제의 복심이자 비무실장 출신의 부산법령사 재인문향이 무림대권의 신상(紳商)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강원공국의 맹주에서 졸지에 재야무림이 된 광재청령포장은 자신들이 그렇게도 없애자고 주장하던 이른바 무림일간지의 최대주자들인 조중동 중에서도 최대 발간부수를 자랑하는 대한무림국 최대일간지 <조선무림일보>와의 나발통 대화를 갖고 다음과 같이 일성을 울린다. 먼저 기자 왈(曰).

"공자를 영월, 평창, 정선, 태백골 등에서는 '우리 광재'라고 하여 강원공국을 대표하는 무림도방으로 일컫는다지요? 기분 째지시겠어요? 이번 문순기적창이 그 거대한 산인 기영풍국도인을 물리친 것도 다 공자의 공력이라 해요. 허나 이번 의금부의 결정으로 향후 10 년간이나 무림정치계에 발을 담그지 못하실 텐데, 마지막으로 대권무림의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허허, 거 무신 말씀. 나 강원공국의 아들 광재는 떳떳합니다. 나는 무현황제 시절 이전부터, 지금은 충청남향방의 관찰사로 있는 희정무뇌발이 조직과 자금을 맡을 때 기획을 맡아 전 세계무도의 비기를 찾아 무현황제를 보필했던 사람. 희정무뇌발이 무현황제 재림 당시 고뇌의 가시밭길을 걸었던 것처럼 지금 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대답하자면, 차기 무림대결은 최대도방에서는 부언할 것도 없이 공주님 근혜여랑위와 출세한 진보거두인 열혈남아 문수거사, 살아있는 사금고로 무림축구를 리드하는 원조엄친아 몽준쩐방 정도가 혈전을 벌이고, 민주공방에서는 학규공자, 동영통사, 세균무진장이 그리고 국민참여방에서는 재인문향이 단일화하여 비무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실 뭐, 차기는 그리 재미있는 비무전이 되지는 못할 것 같고, 오히려 차차기 매권무림혈전이 볼 만할 거예요.

최대도방의 간지남이자 보보스족의 우두머리 세훈장검은 지금보다 차차기에 나와 제주의 면벽도인 엄친아 희룡탐라진과 판사 출신으로 모모스족에 가까운 서울중구청 여성도방 경원미모령, 아버지 무림공자의 대를 이어 무림의회 4선을 하고 있는 원조볼매 수원농방의 귀공자 경필동안공자에 굳이 덧붙이자면 종로창의 박진외통사와 농번골인 김포전원방의 출세고속도로 정복행농 정도가 일전을 벌여 우리 민주공방의 각 행지를 대표하는 도방들인 경남공방의 두관거두장, 충청방의 희정무뇌발, 수도권의 종걸회영손자, 인천도방의 황소 탄 유협공자이자 직찍, 스샷이 일품인 공부도하가 영길역발산 기개공, 그리고 강원도의 얼굴인 나 광재청령포장이 격돌하여 국민참여방의 이론무림까도남인 시민객장과 일합, 야권단일화를 만드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거 왜 요즘, 무술전문스턴트맨인 광클본좌 성근취도권께서 야권단일후보 만들기 하러 전국투어 하느라 바쁘잖아요. 그러면 돼요."

<조선무림일보>의 기자가 어렸던 탓일까? 아니면 광재공의 무공을 깨닫지 못했거나, 무림정치의 본질을 이해 못한 것일까? 느닷없이 물었다.

"아니, 광재청령포장께서는 의금부로부터 무려 10년의 무림정치 퇴출 결정을 받고 재야무림인이 되셨는데, 차차기 운운은 말이 안 되는데요?"

광재청령포장의 내공은 30대 중반부터 실세로 군림하여 재선의 의회 경력과 강원공국의 도반을 맡았던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맹주가 될 수 있는 공력에 접근해 있었다. 그는 만면에 특유의 선해 보이는 얼굴로 마치 FTA에 임하는 각 무림국의 특사들처럼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엄친기자의 어린 귀차니즘에 제동을 걸며 나발통에 충실히 임했다.

"물론 나는 10년간 무림정계에 발을 디디질 못하는 금무령을 선언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내년 대권의 향방에 따른 조치도 있을 것이고, 무림대권의 향배와 상관없이 대한무림제국에는 황제의 기분과 주위 여건에 따른 특사령이 있어요.

나의 향후 거처는 그때그때 다른 것입니다. 그 사이 나는 여느 무림정치인들의 재야 시절처럼 아무 무술대학에서 겸임교수 하다가 재외무림국의 객원 연구원 생활 좀 하다가 들어오겠습니다. 자, 캐안습 기자님, 그럼 안뇽."

젊은 기자는 넋을 내리고 앉아 나발통을 마치고 일어나 유유히 정원이 고풍스런 한식점의 넓은 잔디 사이를 부유하듯 걸어가는 광재청령포장의 뒷모습을, 마치 황제대관식에서 지나가는 황제의 행차를 보거나, 풍경 좋은 경관을 바라보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5월이 하순으로 접어 들어가며 점차 산 좋고 물 좋은 한반도의 눈매에 요염한 푸른 빛이 직사 작열을 뽐낼 즈음, 민중무림시대를 외치며 홀로이 외롭던 고(故) 무현황제의 2주기를 맞아 성대한 추모 물결이 마치 4, 5월에 전국을 뒤덮는 울긋불긋한 꽃잎의 물결처럼, 후쿠시마의 쓰나미처럼 김해골 봉하방과 전국을 휘휩쓸었다.

2년 전, 진정한 무림국의 정의를 외치며 부엉이바위 위에서 자신의 공력이 소진되어 더 이상 비무를 전파하지 못함과, 명박경술사의 비소통 실용비무의 허구성을 개탄하며 그 고귀한 혼을 하늘에 던졌던 고인의 추모행렬은 2년이 지난 시점에도 많은 무예인들은 물론, 비무예(머글) 인민들까지도 슬픔과 착잡의 비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며칠 간 비가 한반도 전역을 깨물어 고인의 무덤에 촉촉한 습기를 머금어주는 가운데 무림정치권의 모든 인사는 물론, 최대도방인 한나라방 맹주들의 추모도 진정한 것이었다. 물론 그 추모 열기를 맞아 재인문향과 시민객장, 두관거두장, 광재청량포장을 위시한 무현공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부각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공력이 어찌하든 과거 황제 위에 올랐던 직계맹주의 '두환명패투사권'과 '지역주의폐쇄권', 그리고 불굴의 '낙마도전권'을 계승하겠다는 신념에 불타 있는 무현공의 사람들의 행보는 비교적 산뜻했다.

작금의 대권무림국 주위의 여건은 이쯤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제 대권무림의 2라운드 혈전에 앞서 우리 대한무림제국의 탄생과 각 도방 맹주들의 치열한 혈전 야사와, 이른바 잠룡(潛龍)이라 일컫는 현재의 무림맹주들의 면면을 한번쯤 훑고 지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도력으로 생각되어 에피소드를 통해 정리해보려 한다.

무림국 황제들의 희비극적인 등극역사와 야사, 또 그 사이에 얼키고설킨 '비하인드 스토리'를 '오프더레코드'라는 사견을 전제로 나열하여보는 것도, '2012 대권무림'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위해서는 한결 부드러울 것 같아서이다.


#대권무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