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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중 충남 예산주물단지 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정환중 충남 예산주물단지 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 심규상
21일 충남 당진 면천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정환중 예산주물단지 반대투쟁위원장의 얼굴은 반쪽이 돼 있었다.

쑥 꺼진 눈, 바싹 마른 입술. 엷은 미소로 기자를 반겼지만 금세 심각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정 위원장님은 18일 저녁 충남도청앞에서 '조건부 승인' 결과를 전해 듣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어요. 낙담이 크셔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도 울먹였지만, 정 위원장님은 며칠 동안 잠 한숨 못 주무셨다고 하네요.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구요." 

함께 있던 이권배 공동위원장이 침통한 목소리로 주민들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한참동안 땅바닥만 응시하고 있던 정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작년에 농사일 제쳐놓고 전국 주물단지를 다 돌아다녔어요. 우리 주민들 눈으로 그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 똑똑히 보고 왔는데 잠이 올 수 있나요. 평생 농사만 지며 고향을 지켜왔는데 공해산업단지에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고 보니 어이도 없구요."

얘기 도중 그가 침을 삼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단과 5m 거리 사이에 두고 살라니...'눈 가리고 아웅' 식 심의"

주민들이 낙담한 이유에는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서운감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예산군은 사업자 편만 들었어요. 사업자 측이 찬성 주민만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했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했죠. 안 지사께서 시종 꼼꼼히 따져보겠다고 하고, 지난 번 간담회 때는 '무리하게 결론 내지 않겠다'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적어도 환경오염 문제가 없도록 안전장치를 잘 해 주실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약속하신 지 일주일 만에 허가를 내주고…. 위원회에서 사업자 측에 내건 조건이란 걸 들여다봤는데 죄 눈 가리고 아웅이에요."

충남도산업단지심의위원회가 조건부로 제시한 것은 환경저감시설 추가설치, 완충녹지 확장, 이해 관계자들 간 환경보전위원회 구성 등이다. 주물산업단지 입지 예정지에서 5m 도로를 사이에 놓고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심의위원들 보고 소음과 악취가 심한 공해산업단지를 코앞에 두고 살라면 살 수 있겠느냐"며 "심의의견 어디에도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본환 면천교회 목사(당진군 면천면)는 "면천초등학교 교정에는 11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등 면천은 오랜 역사의 고장"이라며 "특히 꽈리고추를 비롯 친환경농산물의 주된 생산지며 교육체험의 장인 태신목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곳에 주물공장을 세우는 것은 역사의 현장에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충남도지사는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서라도 심의위원회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주물산업단지 예정부지 옆에 위치한 태신목장
예산주물산업단지 예정부지 옆에 위치한 태신목장 ⓒ 태신목장 홈페이지

주물산업단지예정지와 인접한 태신목장주인 김영배씨의 걱정도 태산이다. 주물산업단지 예정지에 태신목장 부지 수 천여 평도 포함돼 있다.   

"보세요. 저기가 산업단지 입주예정지예요. 심의위원회에서 저희 목장 사이에 완충녹지를 15m 이상 설치하고 방풍림 역할을 하는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는데 어이가 없어요. 산업단지 예정지가 목장보다 아래쪽에 있거든요. 완충녹지를 수백 미터를 설치하더라도 바람 불면 먼지 한 톨까지 다 날아올 수밖에 없는 지형이잖아요." 

"연 5억 세수 얻자고, 연 10만 명 체험목장 옆에 공해공단 유치?" 

김씨의 체험목장에서 주물산업단지 예정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공단예정지 쪽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은 국내 최초로 낙농체험목장 인증을 받은 곳으로 30만평(100ha)부지에 4만여 평의 초지를 갖추고 한우, 말, 염소, 양, 거위, 기러기 등을 비롯 승마체험, 낙타체험, 마차타기, 치즈만들기 등 각종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의 경우 연간 10만 명 정도가 체험학습을 위해 농장을 찾아 약 1억 원의 세금을 납부했다"며 "고작 연 5억 원의 세수를 얻기  위해 체험목장과 친환경농업지역 바로 옆에 환경위해업체인 주물산업단지를 허용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주물단지가 들어서면 목장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주물공단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이날 대책회의를 통해서도 "안희정 지시가 주민과 약속을 깨고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성급한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을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만약 이대로 주물산업단지 공사가 진행된다면 트랙터로 길을 막고 공사현장에 드러눕겠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삶의 터전을 공해업체에 넘겨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뒤늦게 실토하는 인천지역 언론... "주물업체는 애물단지"  

 태신목장에서 바라본 예산주물산업단지 조성 예정지(붉은 원안)
태신목장에서 바라본 예산주물산업단지 조성 예정지(붉은 원안) ⓒ 심규상

 태신목장 각종 체험시설 안내판
태신목장 각종 체험시설 안내판 ⓒ 심규상

다른 한편 충남으로 이전하는 경인주물조합이 있는 인천지역 분위기는 정반대다. <경인방송>은 지난 18일 충남도의 예산주물공단 조성 '조건부 승인' 소식을 전하면서 "30년 전 조성된 인천서부산업공업단지는 주물업체들로 인해 애물단지가 됐다"며 "환경위해업체로 분류돼 분진과 악취, 소음 등 환경오염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입주민들이 소음 등 환경문제로 업체에 항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물업체들이 설 곳은 점점 줄어들었다"며 "지난 2007년부터 서부산업공단측이 공해다발업종인 도금업, 주물 업체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해 공장 확장 등이 어렵게 되자 업체들은 지방이전을 고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9년 11월 충남도와 인천서부산업단지 소재 23개 기업이 집단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인천지역언론이 처음으로 주물업체가 '애물단지'임을 공개한 것이다. 인천지역 다른언론들도 "주물업체 충남이전이 본격 추진될 전망" "예정대로 추진이 가능해졌다" 등 표현으로 충남도의 결정을 반기는 속내를 내비췄다.

주물단지 협약 맺은 이완구 전 충남지사..."큰 경사가 났다" 

 태신목장 내 각종 체험시설 안내판
태신목장 내 각종 체험시설 안내판 ⓒ 심규상
그런데도 양해각서 체결 당시(2009년 11월) 이완구 충남도지사는 "금속주조업체인 경인주물공단조합 등 23개 기업을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유치, 큰 경사가 났다"며 "도와 예산군은 기업이 정상가동 될 때까지 행정·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한편 <경인방송>은 지난 18일 오후 6시 23분 인천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의 인터뷰가 포함된 '경인주물조합 23개 업체 충남이전 확정' 리포트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충남도산업단지심의위원회는 충남도청에서 예산주물산업단지 건을 놓고 한참 비공개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날 회의가 끝난 시간은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였다. 충남 예산과 당진 지역 주민들도 이날 밤 8시 경까지 회의장 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인방송 측이 과감하게 추측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면 충남도나 사업시행자 측으로부터  이날 회의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기사를 준비해 뒀다는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경인방송의 해당 기자는 "이날 회의결과는 오후 8시 경 전해 들었다"며 " 충남이전이 유력시 된 상횡이어서 보도를 한 것으로 다른 경로로 사전정보를 들은 바는 없다"고 말했다.   


#예산주물단지#태신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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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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