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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씨는 유일한 치료제인 '아피니토'를 복용하지 못해 현재 뇌로 암이 전이된 상태이다.
 이명철씨는 유일한 치료제인 '아피니토'를 복용하지 못해 현재 뇌로 암이 전이된 상태이다.
ⓒ 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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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이명철(40)씨는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의 사연은 이미 올 3월 3일 SBS <8시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뉴스가 나간 후 2개월 만에 병이 악화되어 뇌까지 전이되었다. "아피니토만 먹을 수 있었어도… "라며 그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새로 개발된 '아피니토'를 복용했다면 뇌로 전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늦추거나 전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신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고질적이라고 불린다. 이유는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되고 난 뒤 발견되거나 신체 다른 부위로 전이가 잘 되기 때문이다. 이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신장에서 폐로, 머리로 전이되었다. 이대로라면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폐 수술을 한 후 그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이제는 괜찮겠지… 여기서 치료를 잘 받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이번에는 항암제가 듣지 않았다. 내성이 생긴 것이다. 이럴 경우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면역치료를 받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장기로 전이된 암세포를 찾아다니며 공격하는 표적항암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성이 생긴 대부분의 환자들이 면역치료를 받다 짧은 기간 내에 사망했다. 그러나 얼마 전 이들 환자에게 쓸 수 있는 2차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아피니토'라는 약인데, 신장암 수술이 끝난 뒤 폐나 간 등으로 전이된 전이성신세포암의 2차 치료제로 사용된다. 2009년 3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고, 같은 해 6월 한국 식약청에서도 이 약에 대한 사용 허가를 내주었다.

돈 없어서 먹을 수 없는 약... "한 번은 먹어보고 싶다"

그러나 이씨는 이 약을 먹을 수 없다. 기존에 복용하던 항암제 '수텐'은 내성이 생겨 효과가 없는데,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아피니토'는 약값이 너무 비싸서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신장암 환자들이 이 약 먹는 것을 포기했어요. 약이라는 게 한 번 먹으면 그 약을 계속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가격이에요. 한 달에 417만 원. 어떻게 빨리 보험이 적용되어서 가격이 조금만 낮아져도…"라며 말끝을 흐린다. 한참을 허공을 응시하더니 "그래도 한 번은 먹어보고 싶어요. 더 살아보고 싶어요. 아직 우리 두 딸과 아내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은데…"라고 말했다.

▲ 신장암 환자 이명철씨
ⓒ 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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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두 딸과 아내, 그리고 노모가 있다. 젊음을 믿고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잖아요. 여름철에는 에어컨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겨울에는 일감이 없으니까 가구점 같은 데서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러나 이씨가 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면서 수입이 끊겼다. 아내가 마트에 나가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벌고, 학생인 두 딸이 아르바이트를 해 그 돈으로 치료를 해왔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모(70)가 아들의 밥을 챙기며 일상을 꾸리는 것이 이들 가정의 일상이다. 아내 김씨는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치료를 해보고 싶어요. 이대로 놓아버릴 순 없잖아요. 아이들이 아빠에게 얼마나 잘하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정말 아프구나 하고 느끼는 게 언제냐 하면, 아침에 눈을 뜰 때예요. 아침이 제일 겁나요. 눈을 떴는데 잘 안 보여요. 그러면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죽은 건가 싶어요. 뇌수술을 하고 신경이 손상돼서, 말도 어눌해지고, 글도 못 읽고, 못 쓰게 됐는데 요즘은 기억도 왔다 갔다 해요. 정말 아침에 눈뜰 때 아이들과 아내가 안 보일까봐…."

많은 신장암 환자들은 '아피니토'에 유일한 희망을 건다. 이유는 현재까지 나와 있는 약들은 생명을 연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했지만 이 약을 복용할 경우 3~9개월 동안 삶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아피니토는 표적치료제이기 때문에 그만큼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게 치료받을 수 있다.

보통의 항암치료는 정상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먹을 수도 편히 누울 수도 없기에 병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약은 부작용이 적어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산책이 가능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오늘도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이 약(아피니토)은 항암치료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다고 해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피니토'는 신장암 수술이 끝난 뒤 폐나 간 등으로 전이된 전이성신세포암의 2차 치료제이다.
 '이피니토'는 신장암 수술이 끝난 뒤 폐나 간 등으로 전이된 전이성신세포암의 2차 치료제이다.
ⓒ 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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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제약회사 줄다리기에 기약 없는 보험 적용

좋은 약이 있는데 왜 못 먹는가? '돈이 없어서 약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약값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실제 약값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싸지 않다. 특히 암환자들이 복용하는 약값은 하루 10만~20만 원을 호가한다. 한 달이면 300만~6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약값을 낼 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피니토 역시 1년 전부터 곧 보험 적용이 될 거라고 다들 이야기했어요. 그러면 약을 먹으면 되겠구나 했는데 (암이) 뇌로 전이됐고, 아직도 보험 적용이 안 되고 있어요."

이에 대해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가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지금도 이 약만을 기다리는 많은 환자분들이 계십니다. 더 지체하면 생명이 위협을 받는 환자들이 더 늘어날 거예요. 약가협상이 끝나기만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기에 성금이나 모금을 통해서라도 이 환우들을 도와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약값은 제약회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보험적용) 신청을 해 결정을 받은 후,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가 협상하여 결정한다.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하지만 짧게는 4개월 만에 끝낼 수도 있다. 따라서 아피니토를 만드는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의 의지와 협조만 있다면,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릴 수 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이들은 그들 역시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피니토'를 복용하고 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이명철씨. "내가 떠나더라도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편하게 인생을 마칠 수 있겠다"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태그:#신장암 , #아피니토, #약가협상, #보험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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