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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과학벨트의 최종입지로 대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은 환호하고, 과학벨트를 위해 열띤 유치전을 벌여오던 다른 지역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북도지사는 이미 13일부터 입지선정의 공정한 평가를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고, 경북지역 시민들도 과학벨트 입지선정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규탄대회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혈서까지 등장했다. 과학벨트 입지선정에 공공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었으며, 신공항 백지화로 인해 성난 민심을 정부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충북도지사도 14일 밤부터 과학벨트 유치를 위해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광주에서는 이번 입지선정을 원천 무효로 규정하고 정부에 대한 불복종 운동까지 벌이겠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과학벨트'가 지역 간의 갈등으로도 모자라, 정부에 대한 불신마저 불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벨트'는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공약집을 통해서 "과학벨트는 중부권을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육성한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중부권'은 '충청권'을 지칭했고, 과학벨트는 대표적인 '대(對)충청권 공약'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대통령이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고, 12월에는 '충청권에 들어선다'는 내용이 빠진 '과학벨트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그러던 중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일 신년좌담회에서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는 대선공약집에 없었다"는 발언으로 '과학벨트 원점 재검토'를 시사했다. 이에 대구, 경북, 광주 등의 지역들은 지난 달 정부에 과학벨트 유치제안서를 제출하며 뜨거운 유치전을 벌여왔다. 14일에는 과학벨트 입지로 대전 결정이 유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 지역에서는 환호가,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발이 이어졌다.

 

물론, 16일에 나오는 정부의 정식 발표를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언론에 발표되는 정부관계자들의 발언과, 대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정부가 과학벨트의 입지로 '대전'을 결정한 것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과학벨트 입지선정'의 경우, 그 진행과정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뜨거운 감자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세종시, 그리고 신공항 문제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세종시 이행과 동남권 신공항 모두, 과학벨트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2007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제시한 것들이었다. 세종시의 경우, 대통령이 수정안을 전면에 들고 나서며 논란의 중심이 되었지만, 수정안의 부결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왔다. 또한 늘어나는 국제 교류와 물류를 대비하기 위해서 신공항 건설을 해야 한다고 공약했지만, 대통령 본인조차 기자회견을 통해 "국익에 반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며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동안의 세종시와 신공항 문제, 현재의 과학벨트 문제. 이를 둘러싼 지역들의 갈등과 정부에 대한 규탄은 그 본질보다는 갈등하고 분노하는 지자체와 시민들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지역이기주의'의 한 단면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사는 내 지역에 관한 문제에 관해 위정자가 어떠한 약속을 하고서도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혼란만을 가중시킨다면, 이에 분노하지 않을 지역 주민은 없을 것이다.

 

세종시, 신공항, 그리고 과학벨트에 대해 대통령은 한결같이 이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정치인들에게도 정치논리에 얽매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그러나 세종시와 신공항, 그리고 이번 과학벨트 문제가 보여주듯이, 정작 정치 논리에 얽매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 본인이 아닌가 싶다.


#과학벨트#지역이기주의#신공항#세종시#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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