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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러시아의 모습은 초라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러시아가 꼭 그러한 모습으로만 한국인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었음을 잘 기억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오늘날 러시아의 모습이 꼴불견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러시아가 한반도에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에, 과거의 러시아·소련이 맡아온 역할, 그리고 과거의 러시아·소련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책 속에서)

 

러시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낯선 국가다. 미국과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고대 이래 국경을 맞대고 지냈던 이웃이 아니었다. 미국처럼 지속적으로 군대를 주둔시키며 한반도의 현대사에 깊숙이 개입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주요 고비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요 역할을 했던 국가가 러시아였다.

 

미국과 더불어 냉전 질서의 핵심이었던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에 대한 강대국의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다. 대신 한국산 중고 자동차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현실, 한국에 들어와 성매매에 종사하는 상당수 러시아 여성들의 존재 등을 통해 초라한 모습의 러시아 이미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언제까지 그런 모습으로만 우리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거라 속단할 수 없다. 청의 강요에 의해 동원되어 러시아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던 나선정벌에서 시작해 아관파천, 삼국간섭, 러일전쟁, 해방과 분단,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러시아의 모습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박노자 외 저, 신인문사 펴냄)는 나선정벌 이후 400년간 이어진 한·러 관계 속에서 형성된 러시아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1860년 두만강을 사이로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연해주 이주가 시작된 때의 모습, 제국주의 침략 속에서 러일전쟁을 거쳐 한일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습,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공간까지의 모습, 해방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의 모습,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한·소 수교까지의 모습, 한·소 수교 이후 현재까지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하던 러시아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하게 된 1860년대는 제국주의의 물결이 휩쓸던 시기였다. 러시아는 제국주의 팽창의 주체가 되어 있었고, 조선은 제국주의의 공세 앞에서 힘겨운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1863년 러시아는 연해주 개간을 위한 노동력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인 이주를 적극 장려했다. 이에 따라 생활고 때문에, 지속적인 독립 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크게 증가했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고, 을사조약 이후에도 러시아의 힘에 의존하여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애써보지만 러시아 제국 역시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했다.

 

국권 상실 이후 식민지 조선의 상당 수 지식인들이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 가운데 일부는 볼세비키 혁명에 동조해서 백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제국주의 타도를 추구하는 러시아 혁명 주도 세력의 가치관이 일제 식민지 지배를 타파하고 민족해방을 추구하던 독립운동의 가치관과 일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탈린은 1937년 연해주 지역의 한인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친일적 성향의 한인들이 러시아 사정을 정탐하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일본에 대한 접근을 꾀하고 있던 시기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서 강행한 조치로 분석된다. 17만 이상의 연해주 한인들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해방과 분단,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소련(러시아)는 남한에서 분단과 전쟁의 배후로 인식되었다. 전쟁 이후 북한과 대립하면서 북한의 배후 세력으로서의 소련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반북한 이데올로기였고, 이에 의해 북한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이 종주국으로 삼고 있던 소련을 비판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새롭게 탄생하면서 한·러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러시아는 과거처럼 맹목적인 북한의 후견국도 아니고 남한의 적대국도 아니었다.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타자'로 남아 있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400년 동안 지속된 한·러의 역사를 통해 그 가능성을 분석해서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박노자 외/신인문사/2011.4/15,000원


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유토피아에서 야만국까지 조선의 눈에 비친 러시아 400년의 이미지

박노자 외 지음, 신인문사(2011)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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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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