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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 전부터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주제의 성격이 다소 민감해서 선뜻 쓰지를 못하고 다음에, 다음에, 그렇게 미뤄왔다. 그런데 KBS의 한 구성작가가 마치 내 속내를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방식의 질문을 해 왔다.

책이 시중에 깔린 지도 벌써 3주째. 그동안 몇 군데 방송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출판사 편집장이 알려 왔지만 미안하고 죄스럽게도 응하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내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이유에서, 그 뒤로는 어머니의 병원 입원을 이유로, 마땅히 성실함을 갖고 응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편집장께서 그만 포기하고 <오마이뉴스> 편집부 쪽으로 바톤을 넘겨버렸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식사 시간이 되어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중인데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해서 KBS 라디오 구성작가와 연결되었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낯설고 뭔가 민망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라디오라면 그것도 전화인터뷰라면 못할 게 없겠다 싶어 응하기로 했다. 시간은 10분. 10분 동안 이러이러한 질문을 할 테니 답변을 준비하라는 메일이 왔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내가 말이 워낙 어눌한 탓에 절반도 못하고 말았다.

아래 글은 전화인터뷰 전에 준비했던 내용.

- 오늘 고창에 늦봄은 어떻습니까?
"오전에는 황사가 살짝 깔렸었는데요. 비가 온 뒤끝이라서인지 지금은 촉촉한 느낌의 바람이 살랑살랑 하는 것이 뭐랄까, 연애감정에 빠지기 딱 좋은 날씨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 고창에서 태어나셨다구요? 어렸을 때 고창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보시면 어떤 일들이 떠오르세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란, 일종의 공동체가 되겠는데요. 오늘은 너희 집, 내일은 우리 집, 하는 식으로 그렇게 어울려 다니며 농사를 짓는, 품앗이라고 하는 그런 작업 분위기가 참 푸근하게 기억을 채색하고 있습니다. 일을 해도 그냥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고, 모내기를 할 때는 고깔 쓰고 사물 장단을 소리 높여 울리면서 정말로 신나게 일들을 했었는데, 그게 근대화라는 쓰나미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요."

-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고향을 떠나서 살다가 언제 다시 고창으로 돌아오신 건가요? 고향에 다시 정착하게 된 계기라면?
"제가 열두 살 나이에 무단가출을 했었는데요. 일종의 유행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한 도시를 동경하며 시골을 탈출하는 그런 유행. 그런데 막상 화려한 도시에 들어가서 보니 내가 없어져 버리더란 것이죠. 시골에서는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롭다는 느낌이 거의 없는데 도시에서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시골에서는 누가 거짓말을 해도 아 저 사람이 거짓말 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그게 아니에요. 거의 완벽한 거짓말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끝까지 완벽하게 나를 속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결국은 밝혀지고, 해서 배신감이 가중되더란 거죠. 그러다 보니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만 쌓이고, 아 이거 안 되겠구나, 어서 탈출해야겠구나, 해서 지난 97년도에 내려온 겁니다."

- 이번에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 엄마 참 예쁘다>라는 책을 발간하셨어요? 어떤 책인가요?
"중증치매 선고를 받은 어머니와 아들, 그러니까 어머니와 제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웃음과 눈물이 좌로 우로 엉켜서 흐르는 강물 같은 책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어떻게 해서 책을 내야겠다 생각하셨나요?
"사실은 조금, 아니 많이 망설였어요.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이게 온전한 생각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정도로 갈등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생각을 정리했는데요. 말년에 이른 부모와의 동거가 어떻게 자식을 거듭나게 해주는가, 하는 그런 선전을 좀 하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나로 하여금 산다는 것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신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도 물론 있지요.

사실 자식이 언제 어머니로부터 오빠라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결국 말로 이루어지는데요. 이를테면 누나라든가 이모, 삼촌, 고모 이런 호칭들이 무슨 절대적 근거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거든요. 다만 그렇게 부르자, 하는 약속일 뿐이란 말이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오빠라고 불러요. 약속이 깨진 것인데, 그런데 이때의 약속위반이 묘한 느낌을 준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말이라도 뒤집어서 보면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단 말이거든요. 패이소스라고나 할까. 이런 울림에서 얻어지는 어떤 경이로움, 이런 것들을 선전하고 싶었다는 게 아마 책을 낸 동기라고나 할까, 그럴 것 같습니다."

- 사실 기억을 잃은 노모를 직접 모시면서 산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김작가께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의지하면서 사는 거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기보다는 뭐랄까, 동거, 그러니까 저는 같이 산다는 의미에서의 동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연륜이 높으신 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가 그토록 죽고 못사는 공부란 것이 말입니다. 그게 결국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이라든가 그분들이 발견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란 말이거든요. 그렇다면 노인은 살아있는 도서관이 되는 거죠. 말 한 마디도 의미없이 그냥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중증치매 상태가 되고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더라는 거죠. 일종의 시적인 울림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해드리는 것은 사실 거의 없거든요. 기껏해야 밥하고 빨래하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정도인데,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게 한다는 생각도 없이 저에게 주시는 게 엄청 많다는 거죠. 이를테면 예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어떤 아주 독창적인 소스를 끊임없이 제게 주신다는 거죠. 아들을 오빠라고 전복시켜놓는 그런 방식의 신선한 충격들을 말입니다."

- 책 제목에 울엄마 참 예쁘다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때가 가장 예쁘세요?
"저희 어머니가 인사성이 참 좋으십니다.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하고 한 뒤에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항상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연거푸 인사를 하세요. 밥 먹자고 하면 언제나 '오빠도 항꼬 잡수게요'하십니다. 만약에 제가 안 먹는다고 하면 '나만 먹으라고?'하면서 숟가락을 내려 버립니다. 그런데 그때의 그런 말씀이 그냥 의례적으로 내놓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절절하다고나 할 어떤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저도 연애를 제법 해 보았는데요. 애인도 그렇게 눈물나게 이뻐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뻐도 그냥 이쁜 게 아니라 눈물나게 이쁘다는 거, 이거 굉장한 차이 아니겠어요?"

- 사실 요즘에는 자식의 도리를 져버리는 경우가 참 많잖아요, 그런 소식들 접할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글쎄요. 그건 뭐, 사람마다 인생관이 다르니까 뭐라고 할 말은 없겠는데요. 제 경우만을 놓고 보자면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은근히 신나는 사업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거든요. 이렇게도 신나는 사업을 왜 마다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노상 신나는 생활인 것은 아니고요. 이건 뭐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섞여지는 현장, 그게 인생이라는 마당일 테니까요.

어쨌든 저는 이런 생활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아쉽게도 부모가 안 계시다면 어디서 빌려서라도 함께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부가 할 일은 요양원 같은 격리시설을 자꾸 늘리기보다 세대와 세대를, 다름과 다름이 섞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어떤 묘한 정책을 개발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어머니를 돌보다 보면 막상 책 쓸 시간도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어지간한 책은 어머니와 함께 보아 왔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고나 할까. 영화도 함께 보고, 물론 야한 것들은 엄마 몰래 보아 왔지만요. 쓰는 시간이야 물론 저 혼자 하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소설 같으면 집중적으로 정신을 쏟아야 하니까 어렵겠지만 짤막한 글들은 머릿속에서 며칠 굴리다가 쓰기 시작하면 대개 두세 시간이면 끝나니까요."

- 작가의 길을 가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게 해준 책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책인가요?
"음, 그것은 책이라기보다 한 편의 짤막한 산문이었는데요. 삼십대 후반 무렵에 제가 자살을 아주 심각하게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고려하고 있었어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용산역 앞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책을 아무 생각없이 주워들었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문학전문 잡지였는데,  거기에 문순태 선생께서 자신의 소설 입문 동기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받은 느낌은 뭐랄까, 글쓰기 속에 엄청난 보물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읽고 나서 아하,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얼마 뒤부터 소설쓰기 연습을 시작했던 거죠. 그 이전까지는 내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거든요."

- 한권의 책이 한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감이지요. 용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당당함도 물론 빼놓을 수 없겠고요. 그 어떤 권력이나 자본 앞에서도 무릎 꿇거나 비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당당함, 이것은 꾸준한 독서가 아닌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용서 위주의 독서라면 정반대의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실용서란 대개 어떤 규칙과 원칙 같은 것들을 강조하는데, 규칙과 원칙이란 영구적이지가 않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단 말이거든요.

제가 사실 초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요. 학력 때문에 열등감 가져본 적은 딱 한 번, 학력미달로 군대에서 안 받아준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때 딱 한 번이었습니다. 정말로 저는 그때 군대에 다녀오고 싶었거든요. 얼마나 좋습니다. 공짜로 밥 먹고 잠자고 운동하고 이런저런 온갖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런데 안 받아주더라고요. 지금도 저는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아무 말도 못합니다. 심지어 방위병도 아니고 보충병이었으니까요, 보충병, 참 내 기가 막혀서, 나같이 병치레 한 번 없이 튼튼하고 유식한 남자를 학력 없다고 안 받아주다니. 이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이게?"

-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는데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아, 음... 며칠 전부터 어머니가 식사를 못 하셔서, 지금 부득이 병원에서 링거를 꽂고 계시는데요. 애인이 갑자기 떠나버린 것 같은 그런 공허가 집안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엄마가 빨리 퇴원하셔서 이것들을 죄다 쫓아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진행자께서도 빌어주십시오."


#라디오인터뷰#책이야기#치매#어머니#울 엄마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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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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