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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을 포함한 강력범죄의 용의자가 검거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의자의 자백일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하지 못했던 몇 십 년 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범죄현장에서 진범을 가리키는 증거가 몇 개 나오더라도, 용의자가 시치미를 떼고 자기가 한 범행이 아니라고 우기면 수사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용의자가 계속 우겨대면 열받은 형사가 자기도 모르게 완력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욱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대신에 용의자를 잘 타이르고 구슬려서 자백을 받아낸다면 사건 수사는 그만큼 깔끔해진다.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자백하지 않으면 형량이 늘어난다고 위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백하면 선처해주겠다고 달랠 수도 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건 간에,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노나미 아사의 단편집 <자백>에는 뛰어난 심문기술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베테랑 형사 도몬 고타로가 등장한다. 도쿄 경시청 수사과에 근무하는 도몬이 처음부터 베테랑이었던 것은 아니다. 형사부로 발령받은 초기에는 어리어리하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신참이었다. 그러다가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조금씩 능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도쿄에 근무하는 형사의 사건수사기록부

 

도몬은 두 가지 신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부하들이 가지고 온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서 사건의 전체적인 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장의 분위기와 주변정황 등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사건 수사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사냥개처럼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용의자를 검거한다. 그 다음 단계는 심문을 통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자백>의 시간적 배경은 1960-1980년대다. 현장감식기술이 지금처럼 첨단화되지 못했던 시절이니만큼 무엇보다도 형사의 개인적인 능력이 중시되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도몬 고타로는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수 백 건의 절도사건을 저지른 남녀 커플을 추적하기도 하고 칼에 찔려서 죽은 택시기사의 시체를 마주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다른 형사가 '육감'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쓴웃음을 짓는다. 물론 직감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도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자료와 정보다.

 

용의자를 검거하면 도몬은 자신의 심문기술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거칠게 윽박지르고 때로는 가볍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이 심문한다. 그러면 용의자는 백발백중 자백을 하고 만다. 도몬의 심문기술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까지 효과가 있을 정도다. 도몬은 사람의 마음과 심리를 꿰뚫어보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이고 가정적인 형사의 모습

 

일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대부분 가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작가는 형사가 가진 가정적인 모습을 여러차례 묘사하고 있다. 도몬 고타로도 가정적이다. 결혼해서 부인과 두 딸을 둔 도몬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는 두 딸이 디즈니랜드에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그러면 도몬은 중간고사 성적이 좋으면 데려가겠다고 타협한다. 부인과 딸이 친정에 가고없는 밤이면 혼자서 통조림에 술을 마시며 얼큰하게 취하기도 한다. 경찰서에서는 날카로운 형사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가정적인 서민으로 변하는 것이다.

 

<자백>에는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엽기적인 살인사건도 발생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그 주변인물들을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본에 왔다가 범죄자가 되어버린 외국인도 있고, 자신이 살기위해서 갓난아기를 팽개쳐버리는 엄마도 있다.

 

도몬은 그런 사람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들과 인간적으로 대화하면서 심문을 한다. 자백이 끝나면 '앞으로 고생스러울 겁니다'라며 위로해 주기도 한다. 용의자를 죄인처럼 취급하는 일부 형사들과는 많이 다르다. 도몬이 '자백의 달인'이 된 것도 그런 면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자백> 노나미 아사 지음 / 이춘신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자백

노나미 아사 지음, 이춘신 옮김, 서울문화사(2011)


#자백#노나미 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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