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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집회에 참가했다. 지난 4월 몇 번 한진중공업 투쟁 현장을 찾았지만 당일 집회가 취소되고 조합원 내부의 일정이 진행되는 바람에 발걸음을 돌렸었다. 11일도 저녁까지 비가 계속 와서 집회가 취소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 전화를 걸어 "집회가 비가 많이 와도 하냐"고 물어보았다.

"오늘(11일) 집회 진행합니다. 비가 와도 집회는 진행합니다."

지노위 판결 이후 더 황량해진 한진

 한진중공업 17호 크레인, 날씨가 흐려 크레인이 더욱 황량하게 보임
한진중공업 17호 크레인, 날씨가 흐려 크레인이 더욱 황량하게 보임 ⓒ 배성민

6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서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 사측이 말한 2년간 수주를 하지 못하는 등의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을 지노위가 인정한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분노를 느꼈고, 생각을 해보니 현재 한진에서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날 하루 속이 쓰려 잠을 설쳤었다. 4월 한진 투쟁에 많은 조합원들이 떠나 힘든 상황에 지노위 판결이 나자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이 성큼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은 한진중공업 공장의 분위기는 더욱 황량한 분위기였다. 한진 정문에는 한진 투쟁을 지키려는 사수대 조합원들과 회사 경비실 노동자들이 있다. 사수대 조합원들은 집회에 참석하는 나를 보고 반갑게 "어서 오십쇼"라고 인사를 하고, 경비실 노동자는 "소속이 어디냐"며 꼬치꼬치 캐묻기 바빴다.

입구를 통과하자 문철상, 채길용 동지가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17호 크레인이 보였고, 회사 곳곳에 불법 파업에 참가하는 자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벽보와 방송이 울려 퍼졌다. 벌써 한진 파업이 5개월이 지났지만 회사 측의 반응과 노조의 투쟁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단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투쟁을 시작하고 달았던 플래카드의 색이 바래 '정리해고 분쇄! 투쟁 승리!' 등과 같은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한진중공업 집회 현장. 사회자 왈 "우산을 걷고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면 우리의 투쟁의 의지를 돋아 봅시다!"
한진중공업 집회 현장. 사회자 왈 "우산을 걷고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면 우리의 투쟁의 의지를 돋아 봅시다!" ⓒ 배성민

발언을 부탁받다... 하지만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번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사회당의 이름으로 연대 발언을 민주노총에서 부탁받았다. 처음 발언을 부탁받았을 때는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얘기를 하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발언을 준비하게 되자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대학생 때와 같이 발랄한 발언을 준비해 그들의 사기를 북돋는 방법, 격앙된 어투로 힘차게 다시 싸우자는 발언 등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현재의 한진 상황에 맞는 얘기를 찾기 어려웠다.

고심 끝에 발언 내용을 스마트폰 메모장을 이용해 적어 두었다. 그리고 한진으로 이동 중에 어떤 내용을 추가해서 즉흥적으로 말해볼까 하는 고민을 한 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의 발언이 있기 전에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의 발언도 있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제야 한진중공업을 찾았습니다. 정당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느라 여러분들의 투쟁에 현장에 한 번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 한진 같은 곳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싸우며 국회에서 이 문제 다시 한 번 얘기해보겠습니다. 투쟁!"

 사진 오른쪽 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대표자(사회당 대표자가 필자)
사진 오른쪽 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대표자(사회당 대표자가 필자) ⓒ 배성민

홍희덕 의원의 발언이 끝나고 진보 3당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대표자들이 올라와 발언을 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대표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누구는 정권을 교체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잘 뽑으면 노동자가 살맛 나는 세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세력이랑 통합을 잘하면 진보의 가치가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자가 살맛나는 세상과 진보의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면 진보정치 세력이 정리해고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 계시는 한진 중공업 조합원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대통합 얘기를 한 후 5월 광주가 떠올라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 얘기를 언급했다.

"1980년 광주에서는 군부독재에 맞서서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투사도 유명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군부의 폭력에 쓰러져갔던 이웃과 가족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후대에 그들의 죽음을 기억되기 위해 죽는 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습니다. 한진 투쟁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진의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돌아가신 열사들의 정신을 지키고 함께 싸우고 있는 내 옆의 조합원들이 쓰러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철상· 채길용 동지가 크레인에서 내려오다

 채길용, 문철상 동지가 87일간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조합원들과 만나고 있다.
채길용, 문철상 동지가 87일간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조합원들과 만나고 있다. ⓒ 배성민

발언을 마치고 민중가수의 노래 공연이 이후 문철상, 채길용 동지가 내려왔다. 내려오기 전에 현재 남은 조합원들 앞에서 크레인 농성을 종료하는 얘기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고심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 17호 크레인 농성을 정리하고 밑에 계시는 동지들과 다시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가겠습니다. 현재 투쟁 과정 속에서 집행부 내의 갈등도 있었고 초기에 함께 했던 조합원들이 파업 현장을 이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지도부가 계속 고공농성을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내려가 현재 현장 상황을 재정비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크레인에서 내려가는 것이 한진 자본에게 우리의 뜻이 꺾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늘이 아닌 땅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새로운 투쟁 만들어 가겠습니다! 투쟁!"

크레인에서 내려온 문철상, 채길용 동지는 덥수룩한 수염에 밝은 표정으로 조합원들과 87일 만에 만나게 되었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지는 겉모습을 봐서는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집회는 17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문철상, 채길용 동지와 함께 김진숙 동지가 올라가 있는 85크레인으로 가서 오늘 집회를 정리하였다. 어제는 김진숙 동지의 당찬 발언 대신 조합원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김진숙 동지는 크레인에 내려오지 않고 계속 고공농성을 진행할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투쟁은 앞으로 힘든 과정을 더욱 겪어야 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견뎌온 조합원들의 끈기는 이후 투쟁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 같다. 시민단체, 정당, 학생 등 앞으로 한진중공업의 정문을 더 자주 들락날락거려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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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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