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동 28번지, 차숙이네>
<1동 28번지, 차숙이네> ⓒ 극단 놀땅

집에 대하여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의(衣), 식(食), 주(住)'. 이 '주'(住)는 곧 집(家)에 해당하는데, 민간어원적 해석에 의하면, 이 집 가(家)자에 돼지 돈(豚)이 합자된 것은, 아주 먼 옛날 중국에서 집안에서 돼지(豚)와 집안에 함께 살았음을 반영한다고 한다.

 

통상 사람 사는 집을 한문으로는 댁(宅), 거(居), 가(家) 등으로 칭하고 문학적으로는 집을 '소우주'라고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 우주(宇宙)의 한문이 '집' 우(宇)와 '집' 주(宙)로 만들어져 있음도 매우 의미롭다. 또 집은 서양의 경우 여체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집에는 여근을 상징하는 문, 통로, 계단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 등도 재미있다.

 

동양에서는 모태를 '아기집'이라 부르고, 여근을 보당(堂)이라하여, '집 당(堂)'으로 호칭하고, 우리의 세시에서는 시집 온 여인에게 고향의 이름을 붙여 하동댁이니 밀양댁이니 부르는 것은, 우리 조상이 여인(어머니)를 곧 푸근한 집(宅)으로 상징함을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대에 올수록 집은 점점 주거 공간으로의 기능과 편의성이 강조되고,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부여되면서 곧 돈이 되는 현실이다. 살고 있는 동네 주변을 둘러보면 헌집은 순식간에 굴착기에 부서지고 그 자리에 높은 고층 아파트촌이 탄생한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
<1동 28번지, 차숙이네> ⓒ 부산시립극단

사람들은 집을 짓는다.

집은 주인을 닮았다.

집은 사람보다 나이가 많다.

젊은이는 집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노인들은 더 머물고 싶어도 떠난다.

남자들은 집을 짊어지고 다닌다.

여자들은 집을 안고 다닌다.

집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산 아래 모여든다. 하나 둘 셋….

- <1동 28번지, 차숙이네> 중

 

집이 속을 보여 줄 때는 언제인가

 

<1동 28번지, 차숙이네(이하 차숙이네)>의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지방의 어느 시골이다. 이차숙(정행심 분)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옛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사는 중단되고 집의 기초를 바로 잡으려는 와중에 이차숙 할머니의 자식들(삼남매)은, 옛집이 택지가 아닌 농지 위에 불법으로 지어졌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청 몰래 집을 늘려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새집을 반듯하게 고쳐 지으려는데 막내 딸 시은(김은옥 분)이 의의를 제기한다. 새집을 비뚤게 짓자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에 대해 큰아들 희정(황창기 분)과 둘째 아들 희섭(유성주 분)은 발끈하고, 관습 속에서 집은 반듯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부들과 대치 상황 속에서 집을 건설해 나가는 등장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은 마치 공사장에 와 있는 것처럼 현장감이 높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설치된 무대 위에 놓인 무거운 돌덩이과 시멘트, 흙무더기들로 관객은 마치 이웃집의 공사진행을 구경하는 착각에 빠져 든다. 작가는 이와 같이 무대 위에 건축을 들여온다. 실제 집은 인류가 동굴에 살면서부터 현세대에 이르기까지 고민하고 노력한 지혜의 산물. 따라서 차숙이네 집을 공사하는 대장 덕근(이돈희 분)이 벽체가 세워진 집을 보면서 이런 말을 툭 관객에게 뱉기도 한다.

 

"집이 속을 보여주는 것은 딱 두 번이다. 지금처럼 옹벽만 세워 놓았을 때, 그리고 집을 허물 때이다."

 

이렇게 집에 대한 사유의 해석을 연기자의 대사를 통해 다양한 층위의 '집'을 바라는 보는 시각과 외형, 그리고 심미적인 기능까지 풀어낸다. 때문에 관객의 <차숙이네>를 감상하는 시선은 다양하게 된다. 해서 <차숙이네>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친분에 의해 드라마터그가 된 김민정에 의해 정리된 최진아 '연출가(작가)의 변'을 아래와 같이 옮겨 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관습 속에 갇혀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집의 평면도만 보아도 그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족이 늘고 줄면서 방이 몇개가 필요한가. 아궁이 부엌에서 입식 부엌으로, 마당 공간이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부엌이 커지고 마루가 없어지고, 명면도의 변화는 그곳에 살았던 가족들의 역사를 말해준다. 현재의 집, 도시의 집에서는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파괴되고 만다. 가장 편리하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획일적이 되었다. 이를테면 거실 중심으로 설계된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
<1동 28번지, 차숙이네> ⓒ 송유미

 

<차숙이네>주인공은 차숙이가 아니고 '집'

 

<차숙이네>의 서막은 '차숙이네'가 살고 있는 옛집이 굴착기로 허물리는 것으로 시작되고, 극의 중간 중간 집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설들이 연기자들을 통해 들려진다. 이를테면 창덕궁 인정전 앞마당을 지었던 박자청 이야기, 화장실의 사회사, 집의 직각 맞추기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차숙이네)>는 지난해 동아연극상과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수상 등 국내 굵직한 상을 탔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최진아는 작품 <차숙이네>를 통하여, 집을 구성하는 재료(흙, 물, 바람, 햇빛)에서 순환하는 생명의 이치를 사유하기도 하고, 설계도의 지혜를 통해 집을 지는 것은 사람이 아닌 집을 이루고 있는 재료(돌, 모래, 물, 바람 등)임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해서 현학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읽고 연극 감상한다면 이해의 폭을 보다 충일하게 할 수 있겠다.

 

이 연극은 '집'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다. 이것은 집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과 함께 집의 구조와 재료,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관심이다. 집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기까지 인간들이 기울였던 환경의 적응과 이용이라는 측면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것은 집이라는 외형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인간들의 수고로움이며 집에 대한 진화의 역사이며 집을 구성하는 재료인 흙, 물, 바람, 햇빛들이 가진 본질과 근원의 시간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너무나 친숙하여 무심히 보았던 집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와 시선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극은 앎의 연극, 인식의 연극이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한 형식으로 희곡은 객관적인 현장의 기록인 다큐멘터리를 취하였다. 다큐 형식을 통하여 집이라는 필수구조물이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관찰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집의 역사와 안내와 창조의 시간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것은 극적 긴장감과 감정이입의 재미를 결들여진 관객에게 낯설거나 지루할 수 있으나, 그와는 다른 즐거움-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 후에 오는 재미와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차숙이네 : 작가 의도> 중

 

 <1동 28번지, 차숙이네>
<1동 28번지, 차숙이네> ⓒ 극단 놀땅
네모는 관습이다
인정당 마당은 네모를 거부한 것이었다
- <1동 28번지, 차숙이네> 중
 

 <1동 28번지, 차숙이네>
<1동 28번지, 차숙이네> ⓒ 송유미

연극 속에 건축을 들이다

 

기존의 연극 방식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자칫 지루하고 먼지 풀풀 나리는 현장감이 거부감을 갖게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이고 이는 보다 작품의 주제를 확장시키는데 이바지한다.

 

극본을 직접 쓰고 연출한 최진아(극단 놀땅 대표)의 <차숙이네>는 2010년 서울에서 공연한 바 있다. 2011년 부산시립극단 제 40회 정기 공연작품으로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현재 공연 중인 <차숙이네>의 연극 형식은 매우 독특하다. 

 

그러니까 '사물이나 도구가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하는 작가의 발상에서 비롯된 '사물(집)'이 드라마'의 주인공인<차숙이네>는, 통념의 인간 중심의 드라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소재와 주제 등만으로도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겨준다. 이에 작가의 깊은 삶의 성찰에서 나온 '집'에 대한 철학이 돋보인다.

 

집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이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집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초를 다지는 단계에서 부터 벽을 올리고 지붕을 올리는 매 단계마다 만년 세월의 비법이 숨어있었습니다. 몸뚱아리 하나 누이기 위한 사람들의 노고가 집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연극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 집을 서울에서 지었다가 이번에 부산에서 짓습니다. 여기서는 시립극단의 참 좋은 배우들이 함께 고민해 주었고, 부산시립의 스탭들과 서울 스텝들이 힘을 더해주었습니다. 애를 많이들 쓰셨습니다. - <연출의 글> 최진아

 

 <1동 28번지, 차숙이네> 출연진
<1동 28번지, 차숙이네> 출연진 ⓒ 송유미
<차숙이네>는 무대 위에서 연기자들이 목수가 되어 직접 주인공 이차숙을 닮은 집을 짓는다. 해서 무대의 중심을 꽉 차지 하고 있는 '미완성의 집'은 인간의 미완성 삶과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면서, 관객에게 '집에 대한 여러 개의 화두를 던진다. 
 
이에 출연한 연기자들의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노동의 현장에의 묘사 등 집의 의미한 상실한 이 시대에 '집'의 다양한 의미망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그렇다. 사람의 육체는 신의 건축물. 그 사람은 집을 닮았고, 집은 사람을 닮아간다.
 
집은 모두의 보금자리요. 어머니와 같이 떠나있으면 그리운 것이 집(고향)이다. 드라마틱한 드라마와 달리 보는 동안은 지루할 수도 있으나, 관람 후에 여운이 길게 남는 철학적인 연극이라 하겠다.
 
기자는 막이 내리고 집을 가는 발걸음을 돌려, <차숙이네>의 주인공, 이차숙 할머니 역을 맡은 정행심 배우를 무대 분장실에서 만나 얘기한 것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천(千)의 얼굴, 정행심
 
 <1동 28번지, 차숙이네>의 주인공 이차숙(정행심 분)
<1동 28번지, 차숙이네>의 주인공 이차숙(정행심 분) ⓒ 송유미

- 연극 정말 잘 봤습니다. 주인공 이차숙 할머니의 캐릭터가 정말 너무 어울리셨습니다. 아직 젊으신데 할머니 역할을 하면서 어려움 점은 없었는지요?
"(웃음) 저는 30대부터 할머니 역할을 종종 해왔습니다. (사이) 저가 주인공이 아닌데요? 실은 주인공은 내(이차숙 할머니)가 아니고 무대에 짓어 놓은 '집'이에요. (웃음) 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차숙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제목이 <차숙이네>가 될 수 없겠죠?(웃음)
 
사실 연기자는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임무이니까 이번 할머니 이차숙역할은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합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어릴 적 살던 집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 친구들이랑 집짓기 놀이하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옛날 살던 집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공사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가 새삼 깨달았습니다. 매번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배웁니다. 이번 작품은 인문학적으로 통찰한 '집'에 대한 역사 등을 다루고 있어 관객의 시선이 다양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수선한데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연기자 정행심은 누구? 
현재 부산시립극단 단원, 부산여자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수료.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과 졸업, <시인 정신>으로 데뷔한 시인. 영화 <사생결단>, <수상한 이웃들>외 다수 출연. 30여 년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 주요 연극 작품으로는 <늙은 부부의 이야기>, <백화> 외 1인 모노드라마 등 다수 작품에 출현하였다.

덧붙이는 글 | 부산시립극단 제 40회 정기공연 <1동 28번지, 차숙이네>공연은 3. 14(월)-20(일)부산문화회관 소극장,(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시, 오후 7시 30분), 일요일 오후 4시, 공연 문의는 051-607-3151


#부산시립극단#정행심#차숙이네#최진아#동아연극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