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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서울의 오르는 전세 얘기도, 연봉과 승진 이야기도 다 남의 일이다.

 

지리산에는 50만 원이면 일 년 내내 머무를 수 있는 집이 있고 200만 원으로 일 년을 족히 사는 이들이 있다. 작가 공지영은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 지리산에 살게 된 최 도사와 낙장불입 시인, 그리고 버들치 시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그 어떤 누구보다 행복한 이들이다. 어찌보면 산 속에서 궁상떠는 못난 인간들로 보일 수도 있는 산 사람들의 인생은 공지영이라는 달필가의 글 속에서 오묘하게 빛난다.

 

도시의 잘 나간다는 직장을 다니다가 어느 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하는 "너무 쉬운 깨달음"을 얻고 산골로 들어온 버들치 시인.

 

그는 봄이면 나물을 뜯어 말리고 손바닥만한 밭에 자신의 오줌을 거름으로 주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직접 농사지은 푸성귀 하나에 김치 하나 놓고 밥을 먹으며 이 싱싱하고 맛난 것을 혼자 먹는 것이 죄스러워, 한 줌도 안 되는 소출을 손수 접은 어여쁜 종이봉투에 담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

 

버들치 시인은 혹여 독신인 자신이 죽기라도 하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 통장에 관 값 200만 원을 넣어두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거기서 넘치는 돈은 시민단체에 기부하며 산다고 한다.

 

이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는 카드를 내어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관 값이지만 가져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금반지를 빼주었으니, 놀란 강도는 카드는 그냥 두고 금반지만 받아서 가버렸다. 그야말로 '없이 사는 사람의 넉넉한 마음'이라고 할까.

 

행복한 이들이 사는 '지리산'... 부디 이들의 평화가 계속되길 

 

지리산에는 버들치 시인 말고도 기인들이 많다. 얼떨결에 수경 스님의 청을 받고 오체투지순례에 참여하는 낙장불입 시인은 세상을 다 버리고 내려온 지리산에서 평화와 사랑을 얻었다. 오체투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는 공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명 평화 이제 말만 들어도 지겨워. 생명이라는 말로 수경 스님이 전화하시면 팍 죽고 싶어. 평화 집회라고 도법 스님이 전화하시면 마누라랑 막 싸우고 싶다니까… 하하하."

 

얼마나 힘들기에 이런 농담이 나올까 싶다. 그러나 스님의 상한 무릎과 문규현 신부님의 부어터진 발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따라 나서게 된다고 한다.

 

얼핏 힘들어 보이는 지리산의 삶이지만 지리산에 언제나 고난만 있는 건 아니다. 지리산에는 봄눈 녹듯 찾아오는 사랑도 있고 인정도 있으며 자연과 인간이 만나 공유하는 깊은 감정이 존재한다.

 

어느 날 쓴 글의 원고료 7만 원을 받은 버들치 시인은 친구 최 도사를 데리고 식당에 간다. '살인과 강간 빼고' 다 해봤다는 최 도사는 한참을 메뉴판만 바라 보다 입맛을 다신다. 이윽고 결심한 듯 의기양양하게 주인에게 말하는 최 도사.

 

"난 사리!"

 

육개장 5000원, 설렁탕 5000원, 자장면 3500원, 냉면 4000원, 사리 1000원.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았을 텐데, 돈 없을 친구를 생각해서 배려하는 마음에서 고른 음식이 바로 사리다. 이 대목에서 절로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복날에 낙장불입 시인의 집에 찾아왔다. 세 마리 닭을 친구로 키우던 시인에게 사람들은 날도 날이니 그 닭을 잡아먹자고 한다. 시인은 절대 친구같은 닭을 먹을 수 없다며 자리를 피하는데, 집요한 서울 사람들은 주인이 없는 집에서 닭잡기를 시도한다.

 

힘들게 닭을 붙들긴 했지만 그 큰 닭을 죽이는 것도 문제. 결국 양계장을 물어물어 찾아가 닭을 잡아달라고 하고, 집에 와 커다란 닭을 삶기 시작한다. 야생에서 자란 닭은 질기디 질겨 맛도 하나도 없고, 서울 사람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자연과 공생하는 이들은 이처럼 닭 한 마리에도 애정이 생기고 길가 풀숲 들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아, 바로 이게 진짜 자연인의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이 싫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던 이들을 공지영 작가가 소개하기까지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행복한 이들의 삶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자주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제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지리산을 휘젓고 다니며 이 멋진 사람들을 찾아내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평화로운 삶이 깨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지리산에 살지는 못하지만, 그 곳에서 진정한 자연인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글로써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냥 마냥 행복하다.


태그:#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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