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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현지 시간) 리비아는 혈전을 치렀다. 카다피 정부는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자위야와 트리폴리 동쪽의 원유항인 라스 라누프 등 수도에서 가까운 도시들을 탈환하려 공격을 감행했다. 동부를 거의 장악한 반정부 세력은 장악 지역을 사수하기 위한 일전을 치렀다. 일요일에는 카다피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트리폴리에서도 반정부와 친정부 세력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지역을 반정부 세력이 장악한 상황에서 수도 트리폴리를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카디피 정부에게 트리폴리에서 가까운 자위야는 전략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곳이다. 외신들은 지난 토요일의 혈전에서 반정부 세력이 자위야를 사수했다고 보도했다. 일요일 리비아 국영 텔레비전은 정부군이 반격을 통해 서쪽의 자위야, 그리고 동쪽의 원유항인 라스 라누프와 전략항인 미스라타의 상당 부분을 탈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현지 확인을 통해 여전히 이 도시들을 반정부 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며 카다피 정부가 탈환을 위해 공격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월 15일 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후 20여 일 지났다. 초기에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은 시민저항의 승리로 아랍 민주화에 새로운 방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됐던 리비아의 반독재 시위는 앞의 두 나라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극히 유감스럽게도 카다피의 둘째 아들로 독재 정권 사수의 선봉에 서 있는 사이프 카다피의 "리비아는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다르다"라는 말이 대체적으로 맞아 떨어진 셈이다(관련기사 : "군, 우리와 한편이라 말한 뒤 총 쏘기 시작했다").

 

튀니지·이집트와 다르게 진행 된 리비아의 '시민저항'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저항은 수도에서 대규모로 시작돼 짧은 시간 동안 독재자에게 강한 압력을 행사했으며 비폭력 저항의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리비아의 경우는 제2의 도시이자 전통적으로 반 카다피 정서가 강한 벵가지에서 시작돼 수도인 트리폴리에 있는 독재자 카다피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중요하게는 튀니지와 이집트와는 달리 처음부터 반정부 시위가 굳이 폭력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42년 독재자 카다피와 그를 쏙 빼닮은 아들들의 무자비한 학살에 대응해 신속하게 무장 저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외신들은 이제 반정부 세력을 시위대(demonstrators)가 아니라 저항군(rebels)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반정부 세력이 무력 저항을 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리비아 상황이 거의 내전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주요 외신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리비아 상황을 내전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주말의 충돌에서도 양측은 특정 지역을 사수 또는 탈환하기 위해 서로 총과 포를 겨눴고 밀고 밀리는 말 그대로 전투를 벌였다. 비비씨(BBC), 씨엔엔(CNN), 알 자지라(Al Jazeera) 등 주요 외신들은 저항 과정에서 30여 명의 사망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서히 고착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한 예로 반정부 라디오는 지난 토요일 국가과도위원회(National Transitional Council)가 이제 리비아를 대표하는 합법적인 조직이라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리비아 대부분의 지역을 대표하는 31명으로 구성됐으며 토요일 첫 회의를 벵가지에서 열었다. 대표는 무스타파 압델젤일 전 법무장관이 맡았으며 군사업무를 담당할 대표도 임명했다. 위원회는 합법적 리비아 대표기관으로서의 국제적 접촉, 헌법 초안 마련, 총선 실시 등이 위원회의 주요 업무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다피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 각각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고 극심한 힘의 불균형이 있지만 무력을 이용해 상호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고착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상황의 가장 긍정적민 면은 반정부 세력이 동부 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고 카다피 정부에 무력 대응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예전과 같은 대량 학살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황의 고착화가 긍정적이 아닌 부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무력 충돌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 세력과 반정부 세력 사이의 지역 분리, 지도부 분리, 군사적 분리 등은 양측 모두 전열을 가다듬고 장기적 대응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무력대립 장기화, 인명 살상과 삶의 피폐화 지속될 우려

 

무력 대립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양측 다 무력에 기댈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에 따라 다른 내전에서처럼 인명 살상과 삶의 피폐화가 지속될 수 있다. 애초의 반독재 저항은 방향성을 잃고 다른 내전들에서처럼 정권 장악을 위한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반정부 세력 내부의 권력 싸움과 그에 따른 분열이 일어나면서 내부 갈등이 심해져 결국은 반정부 세력이 여러 개로 나뉠 수도 있다.

 

현재 반정부 세력에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전직 정부에 충성했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하고 시민사회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 이들이 얼마나 합의를 형성해 나갈지는 의문이다. 반정부 시위 초기부터 계속해서 벵가지와 자위야 등에서 취재해 온 씨엔엔(CNN)의 벤 위더만 기자는 반정부 세력 내부에 분열과 불신이 극심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개입할 여지도 적어진다. 현재 국제사회가 무력 개입을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다. 이것은 후세인 정권 당시 이라크 제재의 일환으로 실행됐던 것처럼 카다피 정부의 전투기가 비행금지 구역을 넘어와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매일 감시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에서 했던 것처럼 실질적으로 전투기가 투입돼야 하므로 무력 개입과 유사하다. 그러나 리비아 상황이 내전으로 고착화되고 간헐적인 무력 충돌만 계속된다면 국제정치의 실세 국가들이 막대한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면서 굳이 리비아 국내 상황에 개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대량 학살과 같은 인도적 재난 상황이 계속되지 않는 한 국내문제 개입이라는 논란 때문에 유엔안보리나 나토 내부에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다. 

 

무엇보다 현 상황이 고착화돼 무력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리비아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독재자 카다피도 쫓아내지 못하고 억압적이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채 내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다른 내전에서처럼 이들은 카다피 세력과 반정부 세력 사이의 전투 지역을 피해 국내 난민이 되거나 주변국으로 피해 난민 캠프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현 상황을 당장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카다피 정권의 종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은 리비아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은 트리폴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반정부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들의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일요일에는 그동안 수세에 몰려 숨을 죽여 왔던 트리폴리의 카다피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외신들은 정부군이 자위야 등 전략 도시들을 재탈환했다는 국영방송의 보도를 보고 수천 명의 카다피 지지자들이 트리폴리의 녹색과장으로 나와 승리를 축하했다고 보도했다. 카다피 세력과 반정부 세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런 상황 또한 장기 내전으로의 변화라는 악몽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게 한다.

 

절망적이게도 리비아가 튀니지나 이집트의 뒤를 따를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해졌다.


태그:#리비아, #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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