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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부유한 자들의 창녀, 가난한 자들의 성녀'로 표현되는 아르헨티나의 민중 영웅이요, 여성 운동가인 '에비타 페론(1919.5.7~1952.7.26)'은 자신이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마취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 전혀 본 적 없는 의사들에게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어떤 병으로 고통 받는지 전혀 모른 채 죽었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대통령인 남편 '후안 페론'이 이끌던 독재정권이 재집권을 하려면 '살아있는 민중 영웅 에비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환자의 병보다는 권력이 우선인 의사들은 권력에 순종, 에비타의 생명 연장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입이 충분히 벌어지지 않아 보정기를 입 안에 넣고 빼기가 몸시 힘들었다. 게다가 입안에 넣은 보정기가 점점 헐거워져서 나중에는 아예 엄지손가락을 턱에 항상 대고 있어야 했다. 그의 환자들은 이것을 환자의 말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긴 제스처로 해석했다. 재미있게도 오늘날 수많은 정신과의사와 심리치료사들이 모방하는 프로이트 특유의 정신분석가 포즈는 이처럼 헐거워진 구강보정기로 인해 얻은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 중에서

 

구강암 등으로 프로이트가 받은 수술은 무려 33번

 

권력에 들러붙은 의사들에게 이용당한 에비타와 달리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5.6~1939.9.23)'는 '어리석고 실력 없는 돌팔이 의사들'때문에 숱한 세월을 고통 속에 살다 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구강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프로이트는 피부과와 내과를 찾아간다. 의사들은 당장 암이 의심되는데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유난히 큰 '백반증'이라고 둘러 대면서 아무렇지 않게 덧붙인다. "니코틴과 알코올 섭취 때문에 생긴 대수롭지 않은 점막 장애이니 별다른 이상은 생기지 않겠지만 만일을 위해 가벼운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프로이트는 이들 두 어리석은 의사의 소개로 비엔나 대학병원의 '마루크스 하이에크 교수'에게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수술 과정에서 합병증을 얻게 된다. 게다가 환자관리도 엉망이었다. 의사들은 가족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수술을 진행했다가 합병증이 발생하자 부랴부랴 가족들에게 알리는데, 가족들이 프로이트를 찾았을 때 온몸이 피범벅인 그가 의사도 간호사도 없이 홀로 부엌의자 같은 의자에 앉아 있을 정도였단다.

 

"두 사람(부인과 딸)이 떠난 뒤 프로이트는 몹시 심한 출혈에 시달렸다. 그는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았다. 방금 수술한 상처 때문에 소리 내어 도움을 청하거나 일어설 수도 없었다. 다행이도 옆 침대에 있던 남자가 상황을 대충 알아차리고 도움을 청했다. 정신분석학이 당시 자기 시조를 영영 잃지 않은 것은 이 왜소한 남자의 정신이 때마침 어느 정도 제 기능을 발휘해 준 덕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명속의 불안>과 같은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며,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3.14~1955.4.18)일과의 서신교환도 없었을 것이다. 이 편지들은 나중에 <왜 전쟁인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평화운동의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평생 헤어날 수 없는 고통(병)만 얻은 프로이트는 다시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게 된다. 심지어 '고환 속 남성 호르몬의 생산을 자극하면 종양이 새로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당시 꽤 권위 있는 의사의 권유로 관련 수술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암세포대로 자라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남자가 되고 만다. 의사를 잘못 선택한(?) 그는 결국 아편주사를 자처해 맞고 고통스런 삶을 마감하게 된다.

 

구강암 등으로 프로이트가 받은 수술은 모두 33회, 턱뼈 수술만 스무 번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첫 번째 수술만 제대로 되었더라면 대부분 피할 수 있는 그런 수술들이었다나. 덧붙이면 종양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치료를 하기는커녕 합병증만 만들어 프로이트를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한 돌팔이 의사 마르쿠스 하이에크 교수의 무능함과 환자에 대한 무관심은 나중에 '프란츠 카프카(1883.7.3~1924.6.3)'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3세, 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데다 정치적이기도 했던 주치의들의 황당한 진단과 처방, 진료로 인해 황위에 오른 지 99일 만에 허무하게 죽고 만다. 프리드리히는 100일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했고, 주변국들과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며 국가를 이끌었다. 반면 그의 뒤를 이은 빌헬름 2세는 자신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제국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막다른 길로 내달렸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왔다.

 

프리드리히 3세가 어리석은 데다 사특하기까지 한 의사들에 의해 비명횡사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면, 세계 역사는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을 거라는 데에 많은 역사학자들이 동의한다. 또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인물로 꼽히는 히틀러와 같은 정치가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세계 역사가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페이지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되짚어 보면 이런 사례들은 의외로 많다." -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 머리말 중에서    

 

그 옛날 '돌팔이 의사' 이야기가 와닿는 이유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 겉그림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 겉그림 ⓒ 뜨인돌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뜨인돌 펴냄)은 지난날 인류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대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을 치료한(?), 무식하고 때론 사악한 의사들(1부), 환자를 두 번 죽인 의사들(2부), 돈과 출세에 눈 먼 사기꾼 의사들(3부), 자신의 환자를 약물중독자로 만든 의사들(4부)이야기다.

 

책을 통해 만나는 위대한 환자들은 에비타 페론과 프로이트 외 헤밍웨이, 나폴레옹, 모차르트, 니체, 처칠, 고흐, 베토벤, 프리드리히 3세 등 20명의 유명한 사람들이고, 위험한 의사들은 이들의 주치의들이다. 에비타처럼 자신을 치료한 의사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고, 프로이트처럼 다른 의사의 권유로 수술 때문에 잠시 만난 경우도 있다. 혹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지나치게 맹신한 경우도 있다.

 

여하간 분명한 사실은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이라는 절실한 문제로 신중하게 선택해 믿고 의지할 만큼 당시에는 꽤나 실력을 인정받고 권위 있는 의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통해 만나는 의사들은 '출세와 돈벌이 때문에 의사가 된 것이 아냐? 해도 너무하는군' 싶을 정도로 파렴치하고 뻔뻔한 것은 물론이요,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야? 제대로 의학을 공부한 것 맞아?' 싶을 정도의 돌팔이인지라 끌끌 혀를 차게 한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인류사에 유명한 그들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주요 내용인지라 20꼭지의 이야기 모두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그런데 이 책이 단지 흥미롭게만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들 역시 책속 위대한 사람들처럼 환자보다는 돈과 출세와 권력이 더 중요한 일부 의사들의 희생자가 언제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실력과 히포크라테스 정신 실현보다는 유명세와 배경이 실력을 판가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프리드리히 3세 혹은 빌헬름 2세의 경우처럼 세상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까지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에도 ▲음악 신동 모차르트의 진짜 사망 원인은 검은 망토 입은 사나이에게? ▲의사라는 적들과(치료? 살해?) 희대의 영웅 나폴레옹이 치른 '최후의 전투' ▲완벽한 오진과 황당한 처방의 희생양이 된 프리드리히 실러 ▲금욕주의자였던 니체에게 '매독으로 인한 사망설'이 오늘날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이유는?▲트롱상은 왜 자신의 환자 '볼테르'가 사망한 뒤 그를 '똥을 퍼먹는 괴물'로 왜곡했을까? ▲어리석은 의사들 때문에 '99일짜리 벙어리 황제'가 된 불운한 군주 프리드리히 3세, 그가 단명하지 않았더라면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었다? ▲환자의 건강보다 그의 그림에 더 관심 많았던 탐욕스러운 고흐의 의사들 ▲ 엉터리 의사를 철썩 같이 믿어 2년 동안 암페타민, 진정제, 마취제 등의 약물을 18000회 이상 처방받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위대한 환자와 위험한 의사들|외르크 치틀라우(지은이)|박규호(옮긴이)|뜨인돌|2011-01-20|12,000원 


#의료분쟁#히포크라테스 선서#의술(의학)#인문교양#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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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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