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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경.
최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경. ⓒ 서주

2월 17일 오후 이집트 국민들은 이란의 함정 두 대가 시리아로 가기 위하여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것이라는 이스라엘측의 보도에 깜짝 놀랐다. 아직 군정부나 국영방송에서 발표하지 않은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함정이 시리아에 닿으려면 자국 영해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그에 마땅한 대응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자칫 시나이반도에 전운이 감돌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는 국정을 위임받은 지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군당국이 처음 맞는 이 국제적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지난 1월25일 '분노의 날'로 인하여 무산되었던 가족여행을 위하여 미리 준비해 두었던 트렁크를 돌아보았다. 나와 아이들의 간단한 짐이 담겨진 트렁크는 치워지지 않은 채 침대 맡에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은행업무도 중단이 된 마당이라 여간 심란하지가 않았다. 다행히 이집트 군정부에서는 '이란으로부터 아무런 요청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같은 날, 이집트에 13개의 정당이 생길 전망이라는 뉴스와, 1만2000여 명의 '국영MISR직물사' 노동자들과 해안도시 다미에타에서 6000여 명이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는 소식 등을 전하기에도 국영방송과 매스컴은 숨이 턱에 찰만큼 바빴다.

실제로 어떤 회사는 노동자들의 시위에 굴복하여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였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국내 기업가들은 군최고위원회가 좀 더 강하게 노동자시위대에 경고를 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또한 이집트 국내에서 활동 중인 31개 인권단체들은 헌법개정위가 사회성과 다양성 그리고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8인으로 구성된 헌법개정위원회에 여성과 콥트교도의 참여가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여성과 콥트교에 대하여 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로 유명한 알 비쇼리가 위원장이라는 것에 대하여 심히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분노의 날' 이후 모든 이집트인은 종교와 성을 떠나서 하나라는 새로운 각성이 지배적인 이때에 자칫 편파적인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타종교의 선교사들은 발각 즉시 추방시키는 이집트였다. 유학생으로 위장하여 체류 중인 한국인 선교사들도 적지 않기에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뉴스이든지간에 발 빠르게 전달하여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동족으로서의 의무감 같은 것이 나에게는 있었다. 나는 한동안 온갖 매스컴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정부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이집트 국기를 팔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
이집트 국기를 팔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 ⓒ 서주

나는 군최고위원회가 체포령을 내린 4명의 전직 장관 중에 국가치안담당자였던 하비브 알 아들리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국영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는 사실도 그러하거니와, 이를 결정한 군최고위원회의 태도도 너무나 놀라웠다.

알 아들리는 시위가 발생한 지난 1월말 경 도시의 경찰들이 사라진 점과, 시위 중 반대파들에 의해 시위대가 희생된 점 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무바락정권을 위해 개처럼 헌신했던 인물이었다.

군최고위원회가 다음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겨지는 즈음, 영국의 텔레그라프지는 카이로 인근의 교도소에서 흔적 없이 살해된 수감자들에 대하여 보도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지 등 기타 외신들은 시위대가 희생될 때에 분명히 군인들도 가해자측에 가담했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로연합은 이집트의 새로운 정부로부터 무바락일가의 은닉재산에 대한 어떠한 동결조치요청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제 '믿고 싶은 마음과 우려하는 마음' 두 개를 동시에 안고서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정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끝까지 믿어보겠다'는 마음이 우세한 것같다. 지금으로서야 도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지켜볼 수밖에. 믿을 수밖에.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다음날인 금요일(2월18일) 무바락 퇴진 1주일을 기념하여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이자는 데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청년들에게는 들뜬 하루가 가고 있었고, 장년층들은 주의깊게 군의 태도를 주시하며 목요일을 보냈다. 와중에 시위 중에 쳐놓았던 텐트의 철거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몇몇 군인들이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시민들을 향해 곤봉을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는 소식은 아주 잠깐의 뉴스밖에 되지 않았다.

봐줄만큼 봐주었다는 군부를 주시하라

 아직 카이로 시내에 머물고 있는 군대의 탱크 모습.
아직 카이로 시내에 머물고 있는 군대의 탱크 모습. ⓒ 서주

18일 이집트 군당국은 이란으로부터 함정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노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800명의 병력을 시나이반도로 보내어 이스라엘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보호하도록 했다. 이스라엘의 바짝 곤두 선 신경을 어루만지려는 제스추어였다.

같은 날 정오, 기도시간이 끝난 무렵 시나이반도의 긴장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타흐리르광장에는 백여 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온종일 자축했고 노래를 불렀으며 깃발을 흔들었다. 며칠 동안 수가 대폭 줄어 있던 헌병들이 자칫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하여 대거 광장 안으로 투입되었지만 다행히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체포령이 떨어졌던 4명의 전직 장관 중 3명이 이미 체포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알 아들리가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결속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군당국에 다시 한 번 각성시키려 했다.

이집트 전현직 관료들의 해외은닉재산에 대한 동결조치요청이 이집트정부로 있었다는 유럽발 보도도 이날 타흐리르광장의 흥분에 흐지부지 가리워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집트 군최고위원회는 2월18일 이날 단 하루만 더 참아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보도가 한 외신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나는 아들 라싣이 이날 타흐리르광장에 가기라도 할까봐 미리 주의를 주었다. 일주일 전 축제의 현장에서 CBS 여기자가 폭행을 당했다는 보도가 바로 전날 있었던 탓도 있었다. 외국인을 보는 눈들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이때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봐야 좋을 것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집트 전역에서 거의 모든 산업의 종사자들이 –심지어 국영기업의 종사자들까지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국가를 운영해 본 적이 없는 군최고위원회가 지난 30년 독재정권의 선두를 지휘하던 관리들을 데리고 단 일주일만에 무언가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보이기에는 역량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군당국은 매일 늘어나는 '새로운 스트라이크' 소식에 몹시 시달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일터로 돌아가지 않고 지속되는 스트라이크는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정부는 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도 높은 경고가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나온 발언 가운데에 가장 강력한 경고성이었기에 당사자인 이집트인들은 적잖이 긴장했다. 거기에 전현직 고위관리들의 해외재산에는 동결조치요청을 취했으면서 정작 무바락일가의 재산에는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은 군당국의 태도도 여전히 미덥지 않은 마당이었기에 시민들의 염려는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19일 하루만 더 견디어 내일(2월20일 일요일)이 오면 은행이 업무를 재개한다고 하니 이번에야말로 생필품을 제대로 재어두리라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도대체 하루가 멀다하고 시국이 들썩거리니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좀 나아지나 보다 했더니 전국적인 시위로 관공서마저 문을 닫질 않나, 이제 괜찮은가 싶었더니 이번에는 시나이반도가 어수선하고. 아이들 학교가 개학하려면 아직도 8일이나 더 남았다. 지난 주에 했어야 하는 2학기 개강일이 국내소요로 인하여 28일 이후로 미뤄진 까닭이다.

당근은 이미 주었으니 이제는 채찍을 휘두를 차례라는 어느 미국인 중동분석가의 끔찍스러운 판단이 제발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기를 바래본다. 우리 동네 수퍼마켓에 긴 샌드위치용 빵인 '아이쉬 휘노'의 공급이 끊긴 지 어느새 3주일이 지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카페에도 실립니다. 서주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교민입니다.



#이집트민주화#서주선생#마담아미라의이집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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