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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린 23일 서울 세종로 세종대왕상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내린 23일 서울 세종로 세종대왕상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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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스럽게 전철을 갈아타고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데 큰 아들 인효 녀석에게서 손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빠, 지하철 잘 탔어?"
"어? 어."
"또 거꾸로 탔지?"
"어, 어... 나중에 얘기하자."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하거나 말거나 인효 녀석의 혀 차는 소리가 손 전화를 타고 꽂혀옵니다.

"어이구, 참. 또 거꾸로 탔구만!"
"얏마, 여기 전철 안여, 인제 그만 끊자잉."

3년 전, 7월 촛불문화제 이후 첫 한양길. 아침 6시 30분 마을버스를 타고 고흥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순천 가는 버스를 이용해 순천역에서 영등포역까지 장장 7시간에 걸친 대 장정 끝에 출판사 '삶이 보이는 창'을 용케도 잘 찾아가 볼일 보기까지는 탄탄대로였습니다.

이번만큼은 헤매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으로 위풍당당하게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 하지만 한양 땅속 길은 촌놈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옛 명화극장 부근에 자리한 출판사에서 버스를 이용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딘가의 지하철역'까지는 잘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어딘가의 역'에서 합정역까지 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안내판을 숙지하고 또 숙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잡아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번만은 헤매지 않으려 했건만... 역시나 또 '거꾸로'

전철 안은 무척 더웠습니다. 전남 고흥과 서울은 영하 7도 이상의 기온 차가 납니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올라와 전철을 타고 보니 등줄기로 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전철을 또다시 잘못 타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런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서울은 엄청 추울 것이라며 챙겨준 내복 때문이었을까. 전철 안은 점퍼를 벗어야 할 정도로 후끈거렸습니다. 고흥에서 서울로 올라올수록 기온은 영하로 뚝뚝 떨어졌지만 오히려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직행버스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고 열차 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점퍼를 벗고 목도리도 벗어야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입지 않았던 내복을 입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겨울을 느낄 수 없을 만치 따끈한 전철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갈아타고 합정역까지는 식은 죽 먹기로 되돌아 왔지만 어리숙한 촌놈의 갈팡질팡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멀리 비까번쩍한 하얏트 호텔을 눈앞에 두고 한남동 매봉산자락에서 군대생활의 반을 보냈고 거기다가 3년 넘게 잠실과 부암동에서 직장생활까지 했지만 촌놈에게 한양의 땅속은 여전히 낯설기만 했습니다.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서 내려 다시 <오마이뉴스>가 있는 누리꿈스퀘어 건물까지가 최종 목적지. 합정역에서 내려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안내판을 쭉 따라나오다가 그만 밖으로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자동판매기를 통해 거스름돈 500원을 찾아 가라는 난생 처음 대하는 전철 카드를 다시 끊어야 했던 것입니다.  

좌우지간 우여곡절 끝에 최종 목적지인 <오마이뉴스>에 용케도 찾아왔습니다. 출판부 기자들과 책 발간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인턴기자, 지난해 상을 받은 시민기자들과 더불어 강화도에 자리한 <오마이스쿨>로 향했습니다. 강화도로 향하는 버스 역시 더웠습니다. 점퍼를 벗고 목도리를 벗었습니다.

<오마이스쿨>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고 생각지도 않은 강단에 섰습니다. 강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냥 방바닥 아니면 원탁에 빙 둘러 앉아 내가 살아가는 이력을 중심으로 <오마이스쿨>에 모인 사람들과 주고받는 식의 강의인 줄만 알고 '그러지요' 대답한 것인데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이라 여기고 아무런 강의 내용도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내 머리 속에 꽉 들어차 있는 골치 덩어리 핵발전소와 연관시켜 '서울은 고흥보다 덥다, 대도시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입을 떼놓고 더위 먹은 인간처럼 새 터에 정착할 때까지의 사는 얘기를 앞뒤 없이 횡설수설, 싱겁기 짝이 없는 낯 뜨거운 강의를 겨우 마쳤습니다.

서울이 고흥보다 춥다면서... 지하철은 왜 이리 더운겨

다음날, 김종성 선생과 최병성 목사님의 준비된 알찬 강의를 듣고 나서 다들 눈밭으로 나와 신나게 축구공을 차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서울에서의 모든 볼일을 무사히 마치고 혼자 남았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몇몇 사람들에게 짤막한 안부 인사를 나누고 곧장 가까운 전철역으로 향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전철을 잡아탔습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전철 안은 답답했습니다. 어디로 갈까? 누구를 만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디야?"
"전철."
"오늘은 어디 가는데?"
"어? 글쎄? 그냥 고속버스터미널로 갈까 싶어."
"시은이네 아빠 연극보고 하루 이틀 더 있다 온다며?"

아는 사람이 주연을 맡은 연극 구경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얼굴들과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여가며 하루 이틀 더 머물고자 작정하고 올라온 한양길이었는데 생각 없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공주로 내려갈까 싶네, 내복을 입어서 그런지 서울은 너무 답답해."
"고흥은 엄청 추워졌어."
"땔감이 좀 부족할 덴디?"
"부족하면 주워다가 때믄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갈 때까지만 그냥 기름 보일러 돌려."
"방 한 칸만 쓰면 땔감이 얼마 안 들잖어."

겸용보일러 대신 기름과 화목 보일러를 각각 설치했다. 온수를 다락방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높은 곳에 물통을 설치했다.
 겸용보일러 대신 기름과 화목 보일러를 각각 설치했다. 온수를 다락방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높은 곳에 물통을 설치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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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기름보일러와 장작보일러가 있는데 새 터로 이사 와서는 거의 기름보일러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땔감이 떨어져 두 세 차례 돌린 것이 전부입니다. 내내 장작보일러를 돌렸습니다. 산에서 살아있는 나무를 베지 않았지만 땔감이 떨어질 때마다 어디선가쯤 맞게 생겼습니다.

길을 가다가 주워 다 때고 또 누군가가 베어 놓은 나무를 때고 얼마 전에는 마복산에서 유기농을 하고 있는 동관이 성님과 함께 군청에서 간벌하고 남은 땔감을 한 트럭 실어와 보름 넘게 잘 버티고 있습니다.

"아참, 내일 1인 시위 나가기로 했지? 추워서 어떻게 허냐?"
"그래도 나가야지."

열흘 전부터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고흥핵발전소 유치 반대 1인 시위를 벌여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내 차례입니다.

고흥은 밤이 되면 별빛 총총한데 서울의 밤은 하늘은 보이지 않고 대낮처럼 훤했습니다. 언젠가 비행기에서 서울 야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불야성이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휘황찬란한 불빛은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아름다운 불빛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4년 전 6월과 3년 전 7월, 그날 서울에서는 탐욕의 불빛 대신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빛을 통해 발산되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시골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과 온갖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레온사인의 불빛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공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점퍼를 벗었습니다. 목도리도 벗었습니다. 그런데도 내복 입은 등줄기로 땀이 배어 나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히터가 팡팡 돌아갑니다. 얼굴을 창 쪽으로 바싹 붙여야 할 정도로 갑갑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어... 서울은 핵발전소다

히터가 팡팡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오면서 핵발전소를 떠올렸습니다. 서울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해 내는 거대한 핵발전소 같았습니다. 엄청난 핵에너지를 빨아들여 엄청난 핵쓰레기를 배출해 내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엄청난 핵에너지의 피해자는 핵발전소 주변 지역의 힘없는 농어민들입니다. 대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둘째 치고, 주변 지역 바다가 황폐화되고 농수산물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주민들 간의 갈등이 확산되어 지역 인심조차 흉흉해집니다. 거기다가 위험천만한 핵쓰레기를 수만 년, 자손대대로 물려줘야 합니다.

세상살이는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누리게 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만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대도시에서 필요 이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면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를 껴안고 온갖 피해를 보며 살아야 하는 농어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 피해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들은 바로 대도시에서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쓰는 소비자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입니다.

결국 에너지 낭비는 핵발전소 주변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하여 모든 에너지를 핵으로 해결하려 하는 핵발전소만능주의는 힘없는 농어민들에게 몇 푼의 보상금을 쥐어줘 가며 '에너지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는 대로 되돌려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에너지 폭력'은 훗날 자신에게, 혹은 자신들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핵발전소가 늘어나고 핵쓰레기가 늘어나면 그 누구도 그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충남 공주에 도착해 오랜만에 반가운 선후배들을 만나 술잔을 나누고 다음날 고흥으로 내려가기 위해 대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금강을 만났습니다. 고흥에 새 터를 잡기 전, 공주에서 13년간을 생활하면서 늘 마주 대했던 금강, 불과 몇 개월 만에 목불인견,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강물이 들어차 있던 강줄기에 임시 도로가 들어서 있었고 그곳으로 육중한 덤프트럭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쪽 면에서는 굴착기가 강 속을 무지막지하게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심성을 키워 줬던 금강,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치 처참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금강을 벗어나 예전에 살던 마을로 향하는 도로 주변에는 난데없는 모래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마을 뒷산은 구멍이 뻥 뚫려 가고 있었습니다. 호남고속 철도 공사가 본격적으로 착공되어 산허리를 절개, 굴을 뚫어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 강산이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차마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고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서울은 여기보다 훨씬 더 춥지."
"내복을 괜히 입고 갔나 벼, 내복 때문에 더위를 먹었나? 서울은 너무 갑갑하고 더워. 여름에는 추워서 냉방병 걸린다더니 그 말이 맞네 벼."

우리는 너무 많이 쓰고 있지 않나요

인심좋고 자연환경 빼어난 고흥. 우리집 아이들의 등굣길에서 만난 가을 아침 바다.
 인심좋고 자연환경 빼어난 고흥. 우리집 아이들의 등굣길에서 만난 가을 아침 바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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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고흥 군청 앞에서 하루 더 핵발전소 유치 반대 1인 시위를 나서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내는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청정지역, 인심 좋은 고흥에 정착하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작은 도서관을 꾸려나가면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핵발전소 유치 반대 운동은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청정한 미래를 물려주고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가족이 에너지를 적게 쓰자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연료를 적게 쓰고 전기를 적게 쓰고, 조금 벌고 조금 먹고 조금만 쓰고 속 편하게 살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울 나들이를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무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이번달 사용량을 다 소비했다는 메시지가 찍혀 있었습니다. 한 달에 4기가 바이트를 쓰고 있는 무선인터넷, 서울로 떠나기 전에 약 1기가 바이트 정도를 남겨두었는데 그것을 큰 아들 인효 녀석이 다 소비해 버렸던 것입니다. 요즘 기타에 푹 빠져 노래를 만들고 있는 녀석이었기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노래들을 다운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 눔 자식이 아빠는 어떻게 하라구 다 써버렸어!"

키가 껑충하게 쑥쑥 자라면서 반항기에 접어든 녀석이 두 눈을 꿈벅거리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겨우 한마디 합니다.

"별로 안 썼는디..."
"안 쓰긴 뭘 안 써 인마! 아빠가 열흘 이상 쓸 용량을 며칠 사이에 다 써 버렸구먼. 너 또 음악 파일다운 받았지! 그런 건 피씨방에서 받으라고 했잖어."
"얼마 안 받았는디..."
"이 눔 자식이..."

녀석을 몰아붙이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텔레비전조차 없이 생활하는 우리 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하면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녀석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은 한 달에 서너 차례 정도. 꼭 필요한 검색이나 음악 파일을 찾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음날 녀석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전 동네 아저씨가 놀러왔다가 자신의 밭 가장자리에 감나무를 베어 놓은 것이 있다며 그걸 가져다 때라 했던 것입니다.

"어딜 가는데?"
"나무하러 간다 자식아, 니가 쓴 인터넷 용량만큼 땔감을 구해야 되지 않겠어? 뭔가를 소비했으면 그만큼 보충해 놨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 역시 에너지 낭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굴리는 것을 줄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를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상대하지 않는 대신에 할 일 없이 컴퓨터를 켜놓고 쓸데없이 인터넷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한달에 4기가 바이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효 녀석보다 더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녀석이 무선 인터넷 사용량을 다 소비해 버린 것은 그런 내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에너지를 줄여나가면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나 역시 모르는 사이에 핵에너지의 혜택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그 '위험천만한 혜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생활한다면 핵에너지가 없어도 얼마든지 뱃속 편하게 생활 할 수 있으니까요.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건설을 늘려나가겠다는 것은 인류가 파멸의 길로 향하는 탐욕의 수레바퀴를 부지런히 굴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그 파멸의 수레바퀴가 더디게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모래알이라도 되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내는 작은 모래알이 되어 이틀째 고흥 핵발전소 유치 반대 1인 시위에 나서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태그:#전철, #서울 더위, #핵발전소 에너지, #금강,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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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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