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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태 표현은 영어의 대표적 특징이다. 영작에 능숙하려면 수동태 표현을 적절히 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이 출판되기 무섭게 전 세계로 번역되어 수천만 부씩 팔려 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인 미국인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아가 "이것은 나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문체 요강>에서도 똑같은 충고가 나온다"고 덧붙인다. 이유는 수동태 표현에 무의식적인 책임 회피 의식이 담겨 있어서다. 정작 우리는 영어 공부 실컷 하다 물들어 버린 수동태식 표현 습관으로 제대로 된 우리말·글 쓰는 데 애를 먹고 있는데, 그게 영어에 있어서도 고치고 변해야 하는 표현이라는 게다.

미국 문화에 대해 내가 당연히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진 계기가 또 있다. 미국의 육식 문화다. 스테이크는 영어를 배우는 입문자들에게 필수 메뉴다. '완전히 익혀 드릴까요(Well-done), 반만 익힐까요(Medium), 생으로 드릴까요?(Rare)' 초급영어회화의 대표적인 기본 표현 아닌가. 그만큼 미국인들의 주요 먹을거리는 고기라는 것을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비만이 많다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이곤 했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1,2)  존 라빈스는 "먹는 것은 즐거워야 하고, 축복이고, 생명과의 친교여야 한다"고 말한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1,2) 존 라빈스는 "먹는 것은 즐거워야 하고, 축복이고, 생명과의 친교여야 한다"고 말한다. ⓒ 최봉실

그런데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회사의 상속자인 존 라빈스는 미국의 지고불변한 특징인 줄 알았던 육식 문화가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변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유를 알리기 위해 방대한 자료와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Diet for a New America : How your food choices affect your health, happiness, the life of your future, 1998, 존 라빈스 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라는 책을 냈다. 그 즈음 미국의 가장 큰 공영 방송 중 하나인 KCET는 '새로운 미국을 위한 식생활'(Diet for a New America, 위 책의 제목과도 같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 육식 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미국의 육식 문화가 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존 라빈스는 그 꿈을 위해 '그레이트 아메리칸 식품업계'의 상속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기 인생을 걸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비로소 현대 육류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이 미국의 공개적인 토론에서 언급되기 시작했고, "출판 후 4년간 미국의 소고기 소비가 18% 떨어졌다." (p.302)

그는 왜 개인의 영달을 위한 꿈을 거부하고, 그토록 간절히 미국인들의 건강과, 나아가 이 세상의 건강한 삶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걸까. 그리고 축산업계와 그 이익 집단은 철저히 숨기기 원하는, 그가 발견한, 알리고자 한 그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의 책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통해 그 진실을 조금 꼼꼼히 들여다볼까 한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11월 말 구제역이 발발하기 전부터 친구들과 3개월을 정해 채식 실험을 하면서 함께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한글판이 2000년에 나왔기에 이미 읽은 이들이 많겠지만, 아직 안 읽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읽었어도 이래저래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잊었을 감수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어졌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권으로 구성돼 있다. 존 라빈스는 현대 육류 생산의 뒤안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으로 우리는 어떠한 일을 겪고 있는지를 밝히며, "식습관이 우리 자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활력과 우리 세계의 건강,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에 앞서 '동물'이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우리 안에 일어나도록 그는 책의 첫 1부를 정성껏 할애한다. 이 글은 그 1부에 대한 서평이다.

죽어가며 새끼 젖 먹이는 어미소... 동물 존중하는 법 배우지 못한 우리

1부에서 그는 "완벽한 자료에 독자적인 검증까지 거친 실제 사건들이 수없이 많다"는 표현을 반복하며 동물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어떻게 깊어져 갔는지에 대해 고백한다. 동물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인간에 대해 동료애와 헌신과 충성심을 바쳐 온 이야기, 동물이 다른 동물들의 생명을 구하러 나선 이야기 등이 책에 담겨 있다.

그들이 보여 온 헌신과 이기심 없는 사랑, 긴급 사태 때의 지능적이고 용감한 대처, 종의 경계를 뛰어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경외할 줄 아는 자질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겨울밤 화롯가에서 오래오래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조상, 혹은 영웅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뜨거운 열망이 어린아이의 가슴을 터질 듯 채우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다. 먼 미래를 강렬히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고귀하고 순수한 꿈이 환한 빛을 발하는 순간 갖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동물의 새끼도 사람의 새끼와 다르지 않게 그들 안에 있는 신성한 불꽃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자질을 표현하기 위해 신의 무릎에서 태어난다. 우리처럼 삶을 갈망하며,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고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를 바라며 태어난다." (p.63)

책을 읽은 얼마 후 살처분으로 피 땅이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그 메아리가 울려 왔다. 지난 18일 '살처분 어미 소의 모정, 또 방역 요원 울렸다'는 기사가 떴다. 강원도 횡성의 살처분 현장에 참여했던 한 축산 전문가가 전한 상황이다.   

"어미 소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근이완제 석시콜린을 주입하는 순간 갓 태어난 듯한 송아지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와 젖을 달라며 보채기 시작했다. 어미의 고통을 알 리 없는 송아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살처분 요원들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소마다 약에 반응이 나타나는 시간이 다르지만 대개 10초에서 1분 사이 숨을 거둔다. 하지만 곧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미 소는 태연히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30초, 1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어미 소는 다리를 부르르 떨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텨 냈다. 주위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어미 소와 송아지만 바라본 채 2~3분이 흘렀을까. 젖을 떼자 어미 소는 털썩 쓰러졌고 영문을 모르는 송아지는 어미 소 곁을 계속 맴돌았다. 현장의 요원들은 비극적인 모정에 얼굴을 돌린 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노컷뉴스> 1월 18일 자)

지난 2010년 12월 말 원주시 문막읍의 한우 농가에서도 수의사 조아무개(39)씨는 살처분으로 어미 소와 송아지의 이별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새벽녘 깜깜한 축사 보온등 아래서 근육 이완제를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어미 소를 큰 눈으로 지켜보던 송아지들은 눈물이 그렁한 채 울부짖었고 갓 태어난 새끼는 누워서 발버둥치는 어미의 젖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 조 수의사는 '주사를 놓으려니까 한 어미 소는 새끼를 막아서서는 꼼짝도 안 하고 지키고 서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월 19일 자)

이런 사례들을 보며 우리는 동물의 모성과 사랑의 본성에 대해 잠시 깊이 생각하게 되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빈곤한 이해를 극복하려면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복잡 미묘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창조물'이면서, 동시에 이 지구별을 함께 살아가고 마땅히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는 형제요 동료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우리는 좀처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물은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

죄없는 돼지의 마지막 길 6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에서 방역당국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살처분을 위한 약물 공급이 지난해 말 끊겨 돼지를 생매장하는 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죄없는 돼지의 마지막 길6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에서 방역당국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살처분을 위한 약물 공급이 지난해 말 끊겨 돼지를 생매장하는 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존 라빈스의 고백처럼, 나도 동물들이 인간인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게 그냥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기도 좋아하고 닭은 더 좋아하고 계란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다 수년 전 그런 동물이 비좁은 창살 감옥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갇힌 채 사육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충격적이었지만, 여전히 고기의 맛에 푹 빠져 버리는 건 너무 순식간이곤 했다. 동물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폭이 어느 정도일까. 문득 강렬했던 한 작은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길을 가다 보호자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그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자를 만나는 걸 확인하게 될 때까지 자리를 뜨지를 못한다. 그리고 때론 아이가 무사히 보호자를 만나도록 돕기도 했다. 다행히 모두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런 아이를 볼 때면 만일의 경우에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짧은 순간 파노라마가 머릿속에 쫙 펼쳐진다.

어느 날 어둠이 막 거리를 덮으려 할 무렵,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삼각지에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갈월동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약간 추웠던 것 같다. 문득 어둑한 건물 계단 아래 내 막내 아이(예닐곱 정도)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행색이 초라했고 얼굴이며 머리도 노숙자들의 모습을 닮았다. 어느 노숙자의 자녀인가 했다. 서울역에서는 노숙자를 흔히 볼 수 있고 그곳도 종종 노숙자가 지나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노숙자 아이가 어쩌다 혼자 버려졌나 보다'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 아이를 지나쳐 건널목을 건너려던 순간 가슴이 쿵했다. '내 태도가 왜 다른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아 보이면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으면서 왜 저 아이는 내가 그냥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냥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 아이는 이미 그런 신세가 됐으니 그 아이가 어떤 어려움과 고통, 위험에 처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아이라면 그런 상황에 그렇게 처해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꼼짝하지 않은 채 선 나는 아주 열심히, 열심히 고통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 아이가 내 아이와 다르지 않게 사랑스럽고 너무도 귀하며 보호받고 존귀하고 아름답게 자라야 하는 아이라는 것을. 그제야 그 아이에게로 몸을 돌려 내가 해야 할 바를 할 용기를 냈지만, 어떤 사람은 어떤 비참한 지경에 처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던 죄성을 느낀 것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깊은 충격이었다. 

고통에 미친 동물들에게 '더 큰 고통' 가하는 인간

맞잡은 손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맞잡은 손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 최영준
나는 1부에서 그가 제시하는 동화 같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면서 동물이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그런 모멸적이고 잔인한 대우를 받아도 괜찮은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인 우리가 마치 이 세상의 주인인 양, 지배자인 양 구는 교만한 마음과 잔인한 행실을 거두고,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갈 친구로, 동료로 인식하며 생명에 대한 예를 더욱 단단히 갖추며 살아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존 라빈스를 통해 동물들을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어 그들의 고통이 새롭게 이해된다. 우리와 다르지 않는 존엄과 기쁨, 만족,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필수적인 욕구와 돌보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랑의 능력을 지녔기에, 그러한 본성이 짓밟히고 강탈당하고 억압될 때 강렬한 그 존재의 삶의 의지는 고스란히 '고통'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고통에는 다른 존재들과 교감하는 능력, 즉 사랑하는 능력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 동물들도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기에 고통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63쪽)

미국인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이 1909년 10파운드(약 4.5kg)에서 빠르고 꾸준히 증가해 최근에는 쇠고기 소비량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지난 100년간 닭고기 소비가 증가한 것에 대해 미국 양계협회 대변인 리터드 로브는 이를 "건강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양계기술의 발전 덕분"이라고 분석했고, 미국의 권위 있는 시장 조사연구기관 NPD 그룹의 해리 발저 박사는 닭고기 수요의 급증 원인을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치킨메뉴의 증가"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2010년 3월 15일 자)

하지만 그들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양계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치킨 메뉴의 증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랑과 삶의 의지와 고통을 느끼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그 생명을 철저히 유린당한 결과라는 사실을.

자연광이 전혀 없는 건물, 움직이기도 어려운 비좁은 철장이나 칸막이 안에서 전 생애를 살게 만드는 현 축산업의 실태. 먹이를 먹거나 세력권을 확보하고 잠자기, 짝짓기, 부성애와 모성애 등의 자연적인 욕구를 분출하고 해소하고 살아야 할 동물들의 존엄성은 털끔만큼도 고려받지 못한 채 체계적으로 박탈당하며 철저히 영혼이 무시당하는 끔찍한 현실. 

종종 칠흑 같은 어둠을 며칠이고 견뎌야 하고 걸을 수도 몸을 돌리기도 어려운 깜깜한 감옥 같은 공간 속에서 동물들의 심성은 사나워진다. 결국 좌절감에 사로잡혀 거의 미친 상태가 되어 서로를 사납게 쪼거나 물어뜯으며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고통 가득한 삶에 완전히 미쳐 버린 짐승들의 절망적인 행동'이다. 축산업자들은 그들이 미쳐 버려 폭력적으로 변하는 근원적인 이유를 바꾸려 하기보다 닭의 부리나 발톱을 없애거나 돼지의 꼬리를 잘라 버리거나 하는 등 그들에게 더욱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고 환호한다. 그것이 동물들에게 어떤 끔찍한 고통이 되는지는 알 바 아니다.

미국의 축산업자가 원하는 이윤에 기여하지 못하는 수평아리들, 더 이상 수태를 할 수 없는 암탉이나 암퇘지는 플라스틱 통에 버려져 질식사하거나 모이를 받지 못해 굶어 죽는다. 오로지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그들 축산업자는 깨끗한 물과 모이와 동물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가장 최소화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 살을 찌우고, 항생제 범벅과 질병으로 만신창이가 되게 하고, 호르몬제를 통해 발정기를 조절하고 강압적으로 수태시켜 연거푸 새끼나 알을 낳는 것으로 전 생애를 살게 한다. 과도해지는 몸무게는 동물들의 또 다른 고통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다리나 발이 부러져 절뚝거려도 값이 좌우되는 근수에는 지장이 없기에 그들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된다.

"오늘날 (미국의) 돼지 공장에서 씨암퇘지가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죽고 말 때까지 이 암퇘지에게 이런 비자연적인 모독을 반복해서 가한다. 새끼를 강탈당한 암퇘지들은 잃어버린 새끼들을 찾아 돌보고자 하는 한 맺힌 본능으로 침통한 울부짖음을 토해 낸다." (p.141)

"우리가 짐승들한테 하는 짓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져요"

 지난달 5일 충남 보령시청 직원들이 구제역 예방 차원에서 돼지를 살처분하기 위해 굴착기를 이용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지난달 5일 충남 보령시청 직원들이 구제역 예방 차원에서 돼지를 살처분하기 위해 굴착기를 이용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 연합뉴스

존 라빈스가 목격한 축산업자들과 그 이익 집단은 그렇게 온갖 모멸적인 생을 견뎌야 하고, 결국 무생물인 제품처럼 무자비하게 기계에 던져져 찢겨지고 태워지고 죽어 가야 할 그들의 생명과 존엄은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들의 무한한 이익에만 눈이 벌겋다. 게다가 몇몇 거대 축산 기업 아래서 하청 노동자로 전락한 축산 노동자들은 생계를 포기해야 하거나,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서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된다. 존 라빈스가 전하는 어느 한 양돈가의 증언이다.

"우리가 이 짐승들한테 하고 있는 짓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져요. 이 돼지들은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뭣 취급하지요. 세상의 그 무엇도 이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어요. 이건 미치도록 부끄러운 짓이에요. 난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p.153)

이제 두 가지만은 분명하게 알겠다. 우리의 육식 소비가 너무 과하고, 심지어 매일매일 너무 많은 달걀을 먹는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잔인한 축산 과정을 생각하지 않아도 특정 음식의 과도한 섭취는 몸에 이롭지 않은데. 하물며 뜨거운 사랑과 책임감으로 따스히 품은 자기 자녀인 알을 모조리 강탈당하는 어미의 입장을 생각해 볼라치면, '뭘 그렇게까지!' 하는 내부 검열이 바로 덮치기 바쁘다. 하지만 우리가 어미닭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닭고기와 달걀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바로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심지어 죄악이나 다름없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데만 혈안인 자들이 조장하는 육류 생산을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존 라빈스가 말한 대로 "우리가 이런 식품 생산 체계에서 나온 소출들을 사먹는 것은 그들과 결탁하여 그 지옥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 라빈스의 음성을 조금 길게 인용해 본다. 

"이 동물들이 겪는 고통이 점점 더 심해져 가는 상황에서 그 고기를 먹는다는 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삶이었던 처참한 불행을 함께 삼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고기들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자기 몸속에 그들의 고통과 질병을 함께 집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몸에 좋으라고 그것들을 열심히 먹어치우고 있다.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 매끼마다 먹어치우는 건 영양이 아니라 악몽이다. (p.19)… 불쌍한 동물들의 살과 알을 섭취하는 것이 그들의 질병과 비참함과 공포 따위를 우리 몸속에 집어넣는 것. 그들이 참고 살면서 몸 속 켜켜히 쌓아 간 그 한까지도 같이 삼키는 것이다. (p.113)… 그런 미친 시스템의 산물을 먹는 것이 오늘날 인류의 전반적인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이 지구가 어쩌면 우주의 정신병원 비슷한 상태가 되는 건 아닐까. (p.159)"

소비자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과 생명을 거스르는 데 거리낌 없을 뿐 아니라, 우리조차 모두 죄악에 동참하게 하는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가 무심히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 분별해 먹는 일상의 조그만 노력이겠다.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그들 기업의 영향력 앞에서 우리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 보이지만, 실상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우리가 그들의 '상품'을 거부하게 되는 일이다.

'소비자가 왕'이라니, 우리가 진정 왕이 되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계라는 큰 품 안에 다 같은 형제며 동료, 생명 존재인 동물과 우리의 존재가 사랑과 서로를 살림으로 하나 되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원한으로 점철된 채 결국 서로를 비극과 죽음으로 내몰아 서로의 생존과 평화를 급속히 위태롭게 만들어 갈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 1부 중간에는 작자 미상의 한 글이 실려 있다.

"우리를 형제로 만드는 운명이 있으니,
아무도 홀로 자신의 길을 가지는 못한다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보내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네."

누군가는 '돌봐야 할 인간도 많은데 동물 걱정하는 건 배부른 소리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이해에 우리가 회심하는 일은, 우리가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심성으로 대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는 일과도 맞물려 있다. 그 사람이 청소 노동자이든, 배달원이든, 탈북자이든, 혹은 세입자이든. 직장 아랫사람이든, 자기 연구실에서 일하는 조교나 대학원생이든, 허름해 보이는 사람이든, 얼굴색이 다르고 가난한 이주 노동자이든,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이든,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철저히 도구로 이용되거나 학대받아서는 안 되지만, 그런 일이 우리 안에는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말이다.


#구제역#육식#신자본주의#축산업#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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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라, 널리 생명을 이롭게 하는 나라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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