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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방영된 SBS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이후 아테나)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회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발했지만, 점차 시청률이 떨어지더니 이번 주에는 시청률 12.4%로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에게 역전을 당한 것이다.

<아테나>의 추락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럴 줄 알았다는 것. 초반에는 드라마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리스>의 후광을 받고, 화려한 캐스팅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줄거리가 처지기 시작하더니 무리하게 극을 이끌어나감으로써 시청자들의 실망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과연 다시 일어설 것인가
▲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과연 다시 일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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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아테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테나> 부진의 이유를 출연배우들에게 지울 수는 없는 듯하다. 비록 뛰어난 앙상블은 아니지만 출연배우들 모두 그 이름값은 해주기 때문이다.

극 중 주인공 이정우 역의 정우성을 보자. 비록 연기는 아직까지 영화 <비트>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어쨌든 정우성은 그에게 주어진 액션 신을 훌륭하게 소화해냄으로써 드라마의 볼거리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리스>의 이병헌과 비교하여 월등히 긴 그의 신장을 이용한 액션 신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윤혜인 역의 수애는 어떠한가. 기존의 이미지에서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 수애의 연기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항상 청순가련하게 나왔던 그녀가 어쩌면 저렇게도 잔인하고 냉혈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그녀의 빛나는 연기력이 발하는 신이 모자란 게 약간 아쉽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녀의 액션신은 훌륭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존의 이미지를 배역에 잘 녹여 악역을 충실히 소화해 내는 차승원과, 어깨의 힘을 뺀 채 주연이 아닌 조연이더라도 감칠맛 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김민종, 여전히 묵직한 카리스마로 매 장면을 지배하는 유동근 등 드라마 <아테나>의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바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초호화 캐스팅과 남발되는 현지로케 촬영 등으로 증명되는 물량공세를 가지고도 드라마 <아테나>는 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드라마가 놓쳐서는 안 될 기본, 드라마의 시작이자 끝인 스토리 때문이다. 요컨대 <아테나>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아테나>의 구조적 결함

혹자들은 <아테나>가 최근에 와서 그 내용이 부실해졌다고 불만을 표출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초반의 볼거리에 가려져 있었을 뿐, <아테나>의 비극은 구조적으로 이미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내용상 가장 큰 문제점은 갈등의 주체가 되는 '아테나'라는 조직 그 자체에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장악하려는 검은 세력 아테나.

아테나 조직원 손혁 너무 일찍 드러난 아테나
▲ 아테나 조직원 손혁 너무 일찍 드러난 아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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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그와 같은 세계적인 테러 조직을 거의 다뤄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현실이 투영된 결과인데, 기껏해야 동아시아가 전부인, 그 이외의 세계는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한 우리의 풍토 속에서 세계적인 테러 조직을 상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아테나'에 대한 묘사가 어설플 수밖에.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이리스>는 성공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드라마 <아이리스>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아이리스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아이리스라는 조직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이를 전제로 주인공들의 갈등을 전개해 관심을 증폭시킨 것이다.

<아이리스>는 극 초반 아이리스 대신 북한을 투입시켜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였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남과 북의 갈등을 바탕으로 극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현실성을 부여했으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오히려 테러 조직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조직의 용병들이 들어와 극이 전개되자 <아이리스>는 시청자들의 맹비난에 직면했는데, 이는 결국 세계적인 테러조직에 대한 묘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배제 현재 한반도에서 중요 키워드다. 그러나 <아테나>는 이를 너무 쉽게 버렸다.
▲ 북한의 배제 현재 한반도에서 중요 키워드다. 그러나 <아테나>는 이를 너무 쉽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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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테나>는 <아이리스>와 달리 북한이란 존재를 배재시켰다. (김민종과 김승우가 분한 김기수와 박철영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드라마를 전개해 나가는데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는) NTS와 아이리스가 처음부터 직접 부딪히는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는 처음부터 억지스러운 설정을 남발한다.

김명국 박사만이 만들 수 있다는 신형 원자로가 대표적인 예이다. 원자로 핵심기술을 박사 한 명만이 만들 수 있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지만, 하필 그 신형 원자로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역시도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메칸더 V가 떠오른다. 왜 하필 드라마는 신형 원자로를 드라마의 핵심으로 설정했을까. 솔직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요컨대 <아테나>의 아킬레스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테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아테나 조직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지 못하는 이상, 손혁(차승원 분)과 윤혜진이 아테나의 일원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 어떤 긴장감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아테나>의 어이없는 설정

<아테나>의 또 하나의 문제는 드라마가 무리한 멜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앞서 언급한 구조적 결함을 매우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인 듯한데,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러브라인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구실을 한다.

김명국 박사의 죽음 어처구니없는 정우의 행동
▲ 김명국 박사의 죽음 어처구니없는 정우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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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멜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주인공 이정우다. 드라마는 이정우를 '첩보요원의 레전드'라고 소개하는데, 드라마에서의 그는 전설이라기보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낸다. 대통령의 딸을 만나고도 그녀가 누군지 모르고, 바로 눈앞에서 그녀의 납치까지 바라보는 존재.

이정우의 어리석은 행적은 혜인과의 러브라인이 무르익으면서 극에 달한다. 아무리 사랑에 빠졌다 한들 첩보요원의 레전드라는 이가 어찌 그 빤한 범인을 의심하지 못하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원자로 핵심기술을 사랑하는 여자와 바꾸려 하는가. 게다가 그 사랑은 얼마 되지 않은, 그 진실성까지 의심되는 감정이지 않은가.

그들만의 베드신 맥락 상 이해할 수 없는
▲ 그들만의 베드신 맥락 상 이해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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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이 같은 설정에 알리바이를 위해 농도 높은 베드신을 선사하지만 이 역시도 거북하기만 하다. 서로의 진심도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베드신은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청률을 높이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혹자들은 이정우를 분한 정우성의 연기력을 탓하기도 하지만 정우성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워낙에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가 일관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드라마 초반 정우의 꿈으로 그쳤던 007 분위기의 첩보요원을 그리고 있을 지도.

정우의 꿈 우리 모두의 꿈
▲ 정우의 꿈 우리 모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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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드라마 <아테나>는 후반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과연 <아테나>가 앞서 지적했던 구조적 결함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1회부터 지켜보았기에 관성적으로 <아테나>를 기다리는 시청자로서 드라마가 부디 획기적인 반전을 이끌어내길 기도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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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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