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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임려국씨
 미소가 아름다운 임려국씨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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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외국인이야. 중국어를 가르칠 때는 내가 너의 선생님이지만 한국어를 할 때는 네가 나의 선생님이야. 선생님의 틀린 한국말을 네가 고쳐줘야 돼. 우리 서로 배우는 거야."

중국어 수업시간. 서툰 한국어로 임려국(군산·42) 교사는 학생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이는 꼭 한국어를 배운다기 보다는 외국인 만날 기회가 적은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은 이내 마음의 문을 열고 중국어 공부와 한국어 지적(?)에 신바람이 났다.

임 교사가 중국어 교사로 활동한 지도 3년 째. 그녀에게 이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만이 아닌 삶의 질을 바꾸고, 목표와 희망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됐다.

2002년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9살, 8살 된 두 딸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그녀는 벌써 한국생활 10년차인 베테랑 한국아줌마다. 중국에서 생활할 당시 갑작스런 사고로 몸 60%에 3도 화상을 입은 려국씨는 불행한 나날을 보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남편은 청각장애 3급이었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어서일까. 첫 만남부터 서로 호감을 가졌고,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생활과 문화에 적응하면서 아이를 낳고 2~3년이 흘렀을 즈음. 려국씨는 차츰 우울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중국에서 생활할 당시 대도시에서 직업여성으로 일했을 정도로 우먼파워를 자랑했던 그녀지만 한국에서는 가정 주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또 적응한다고 하지만 음식, 언어 등 문화적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럴 때일수록 '힘든 농사 끝에 얻어지는 수확물이 있다'라는 중국속담을 마음속에 새기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려국씨는 어느 날부터 배움을 시작했다. 각 센터나 단체에서 하는 이주여성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한국문화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갔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주여성을 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서 차츰 자신감을 회복한 려국씨는 2006년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 당당히 자격증을 취득했고, 2007년에는 군산 YWCA에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삼아 중국어 회화를 가르치게 됐다. 2008년부터는 군산나운종합사회복지관 소속으로 직접 가정을 방문해 중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어 지도 교사가 됐다.

려국씨가 직업을 갖고 나서 무엇보다 기뻤던 건,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줄 수 있게 된 점이다. 시장 가서 1만 5000원 이상을 써본 적이 없다는 려국씨는 매번 아이들 옷을 헌옷수거함이나 이웃집에서 얻어 입혔다. 하지만 이제는 예쁜 새 옷부터 아기자기한 그릇을 살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끼리 조촐한 외식도 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지난해 10월, 아담하고 예쁜 내 집 마련의 소원을 이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한 달 후, 일 년 후, 십 년 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삶에 욕심을 낸다는 려국씨. 이 모든 게 '힘든 농사 끝에 얻은 값진 수확물'이 아닐 수 없다.

값진 수확물은 가정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려국씨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행운이 주어졌다. 몇몇 학생이 시·도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장학생에 선정, 중국 어학연수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려국씨는 서툰 한국말을 주의 깊게 듣고, 중국어 공부에 최선을 다한 학생들이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학생을 가르칠 때 저는 제 나이에 열 살을 더 보탭니다. 학생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며 마치 내 아이마냥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감정을 읽어내고,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며 엄한 선생님, 따뜻한 엄마, 친한 친구처럼 대해주면 학생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집니다."

외국어교사 3년의 노하우로 이젠 누구보다 학생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려국씨.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 못할 고민도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피부색의 차별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깨나 했다는 려국씨는 거칠고 반항적인 학생들일수록 더 따뜻하게 안아줬다. 려국씨의 한결같은 진심이 전해진 걸까.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인정받고, 계속해서 가르쳐 주길 원하는 인기교사가 됐다.

"저는 한국사회의 관심과 배려, 지원으로 지금은 외롭지 않고 자신감 있는 직장인이 됐습니다. 항상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삶이 역경이든 순경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웃으면서 맞이하려 합니다. 내일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테니까요."

려국씨의 삶의 욕심은 소소하다. 집 사면서 받은 약간의 융자금을 하루 빨리 갚고, 매번 마음고생 시키는 중고차를 바꾸는 것. 또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고 싶단다. 때론 단조롭고, 팍팍한 일상이지만 바라고 원하는 걸 하나씩 이뤄가면서 그 안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려국씨. 이제 그녀는 이주여성이라는 꼬리표에 주눅 들지 않는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주여성#임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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