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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 제자들의 동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 제자들의 동상이 위엄있게 서 있고 뒤편의 밀라노 시청의 한 건물에서는 티치아노의 <단장하는 여인의 초상>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 제자들의 동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 제자들의 동상이 위엄있게 서 있고 뒤편의 밀라노 시청의 한 건물에서는 티치아노의 <단장하는 여인의 초상>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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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늘 '설렘 반 기대 반'이 있을 듯하다. 필자의 경우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더더욱 그러했다. 짧은 여행기간이지만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정도가 아니라 르네상스의 본 고장 이탈리아에서 그들의 문화유적과 미술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는 가슴 뛰는 기대 때문이었다.

20여 년 전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패키지 여행으로 유럽 5개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보고 들은 유럽의 수많은 문화유적들은 오랫동안 감동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한번 깊이 있게 둘러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탈리아의 밀라노, 베로나,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폼페이 등을 중심으로 일주일 정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갑자기 미학과 미술이론에 푹 빠져 공부하는 모습에 친구들마저 "그 나이에!"라며 이상한 듯 쳐다보고는 이내 "열정을 또 한 번 뿜을 수 있어 좋겠네"라며 격려해주곤 했다. '잠재된 재능 속에 그림 보는 눈이 있다'고 믿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보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보는 즐거움은 자연스레 발길을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끌어당기곤 한다.

특히 현대미술 작품과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이 재미있어 2010년 여름엔 현대미술의 메카라 부르는 베이징의 '따산쯔 798'엘 그리고 같은해 12월엔 세계문화의 지붕인 이탈리아에 다녀온 것이다. 이탈리아는 선사,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풍부한 문화유산이 있다. "엎어지면 유적이요 파내면 보물"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연간 300억 달러 이상의 관광수익을 올리는 이탈리아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에스파냐와 함께 세계 3~4위권의 관광 국가이다.

건축여행자의 천국 이탈리아, 성당마다 감탄 자아내

이탈리아의 예술은 라틴 정신인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두오모(duomo, 대성당)에는 그림과 조각상이 '발에 채이듯' 흔할 정도였다. 성당 안에 높게 걸린 대형 그림, 벽마다 세워진 조각상, 성당 특유의 스테인드글라스 성화(聖畵) 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건축여행자의 천국이라 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화파는 크게 3개로 분류된다.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한 로마와 중부 이탈리아 지방의 고귀하고 순수함을 과시하는 '피렌체파', 밀라노를 중심으로 하는 북서부 지방의 광장(廣壯)과 장식을 자유롭게 도입한 '롬바르디아파', 그리고 베네치아와 베로나를 포함하는 북동부 지방의 고대적 요소와 동방적 요소를 조화시켜 회화적 효과를 나타낸 '베네치아파' 등이 그것이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 이탈리아에서 보티첼리, 리피, 시뇨렐리 등에 의한 피렌체파는 실사적이며 정열적인 경향을 통해 이상주의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여기에선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3대 화가를 배출하였다. 아~! 이름만 들어도 온 몸에서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들이 살았던 도시를 찾아왔다는 자체가 기쁨이기도 했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베네치아파의 거장인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이 나와 조형적인 경향을 보인 피렌체파와는 달리 색채에 중점을 두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다른 특징을 발휘하였다. 다행히 밀라노에서 티치아노를 우연찮게 만날 수 있었다. 밀라노 시청 1층에서 티치아노의 작품 <단장하는 여인의 초상> 전시가 있었다. 두 달 정도 전시가 진행되는 데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빌려와 단 1점만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단 1점의 작품'으로 대형 전시회 여는 밀라노 시청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온다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찾아온다는 소문 때문에 오른쪽 젖가슴은 관광객들이 성별을 불문하곤 너무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온다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찾아온다는 소문 때문에 오른쪽 젖가슴은 관광객들이 성별을 불문하곤 너무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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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는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 색채주의 화파의 거장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의 모델은 머리를 손질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이고 그녀의 뒷모습은 한 남자가 들고 있는 볼록거울에 비친다. 차분하면서도 육감적인 분위기가 있는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가장 최고 절정기의 작품으로 베니스 고전주의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데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15명의 관람객 그룹을 순서대로 들여보내 아이패드를 이용한 복원 과정에 대한 사전 설명, 진품 앞에서의 추가 설명 등 20분 이상을 2명의 담당자가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관람객들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에 놀라움뿐이었다. 정말 좋은 작품 한 점이면 훌륭한 전시회를 만들 수 있는 사례를 이곳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이어 찾아간 베로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이다. 카펠로 거리 '줄리엣의 집'에는 연극에 나오는 발코니로 여겨지는 곳 아래 좁은 공간에 무표정한 얼굴로 우수에 젖어 있는 얼굴을 한 줄리엣의 청동 동상이 있다. 그런데 오른쪽 젖가슴은 남자, 여자를 불문한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찾아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줄리엣의 집은 사실 13세기에 지어진 이름 없는 2층짜리 건물을 1930년대 후반에 고딕풍의 문, 창문, 발코니를 덧붙여 실감나게 복원(?)하여 만든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이 관광상품으로 등장하면서 이 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150만 명이 몰려와 갖가지 사랑의 낙서를 남기고 간다. 사람들은 줄리엣의 발코니가 '가짜'라는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찾는다고나 할까.

베로나의 상징인 아레나 원형극장에 대해 괴테는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오래토록 보존해온 점에 있어서 베로나 사람들은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2000년 동안 일부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됐어도 그 모습을 그대로 놔두면서 올해로 88회 째 한여름밤에 2만여 명의 관객이 운집한 가운데 마이크 없는 환상의 야외오페라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훌륭한 문화적 환경 바탕, 세계문화·패션 선도국가 역할

그리고 피렌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청동 조각 작품 전시가 있었다. 바르젤로 국립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에서 9월10일부터 2011년 1월 10일까지 4개월 동안 열리는 이 전시회는 오후 3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피렌체의 생 죠바니세례당의 루스티치의 브론즈상들을 전시하는 데 루스티치의 스승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500년 만에 <세례자 요한>이 루브르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다는 광고가 있었다.

로마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고흐 작품전이 진행되고 있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든 미술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들의 문화적 환경 덕분에 이탈리아는 세계문화와 패션의 선도국가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세계문화의 지붕'이라는 칭호가 좋을 듯하다. 문화유적이 많고 수많은 예술작품의 발원지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노력을 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현대예술로 거듭나게 하면서 문화유적과 현대예술의 조화를 이루어나간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가 본받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탈리아 미술여행은 2010년 12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격월간 대동문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밀라노#레오나르도 다 빈치#줄리엣#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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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등일보에서 경제부장,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시민의소리에서 편집국장도 했다. 늘 글쓰기를 좋아해서 글을 안쓰면 손가락이 떨 정도다. 지금은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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