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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새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주연배우들. 왼쪽부터 송승헌(박혜영 역), 박예진(오윤주 역), 김태희(이설 역), 류수영(남정우 역).
MBC 새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주연배우들. 왼쪽부터 송승헌(박혜영 역), 박예진(오윤주 역), 김태희(이설 역), 류수영(남정우 역). ⓒ MBC

"김태희도 똥을 싸나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할 분들이 있으실 거다. 근데 이거, 절대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해괴한 말이 아니다. 당장 네이버에 들어가서 '김태희'와 '똥'으로 지식인 검색을 해보시라. 저렇게 묻는 사람들, 꽤 있다.

"김태희는 이슬만 먹고 살아서 똥 같은 건 안 쌀 것 같다"는 이들에게, 나는 MBC 새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오후 10시 방송)를 한 번 보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 보면, 김태희는 이슬 같은 건 절대 먹지 않고(비슷한 이름의 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고기는 항상 옳다"며 스테이크를 칼로 썰지도 않고 입으로 베어 문다.

정말 압권은 스테이크를 먹은 그 다음 장면이다. 마려운 똥을 참는 김태희의 혼신의 연기는 요즘 인터넷 표현으로 하자면 '레알' 자연스럽다. 만약 올해 MBC <연기대상>에서 김태희가 상을 받는다면 이 똥 참는 연기로 탄 게 틀림없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대단했다. 그러니, 김태희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다는 둥, 그녀의 똥은 우리와 성분이 다를 것 같다는 둥 하는 분들은, 꼭 한 번 보시라.

<궁>에서 본 '황실 로맨스'...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마이 프린세스>는 황실재건을 다룬 이야기다. 대충 감이 좀 오지 않는가? 그렇다. 김태희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증손녀고, 송승헌은 그런 그녀를 옆에서 지켜주는 재벌 3세로 나온다. 황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궁>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궁>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황실이 이어져온 것을 전제로 했다면 <마이 프린세스>는 아예 사라진 황실을 국가와 재벌이 나서서 복원시키는 이야기다.

이미 <궁> 시리즈를 통해 황실 로맨스는 경험해봤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마마" 찾는 촌극을 딱히 더 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남녀 주인공에 김태희와 송승헌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알콩달콩 로맨틱 코미디물을 하기에 김태희와 송승헌은 솔직히 '연륜'이 묻어나지 않는가 말이다. 그건 딱 5년 전 윤은혜 정도 나이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요즘 거품키스로 그 어느 때보다 달달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시크릿가든>의 길라임 하지원은 김태희 보다 2살이 많고, 1년 전 이맘 때 파스타를 만들다 말고 사랑에 빠진 <파스타> 공효진은 김태희와 동갑이니, 김태희라고 안 될 게 뭔가 싶기도 했다. 결국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건 그녀의 나이가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라, 그녀의 연기력이 배역을 소화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아이리스> 이후로도 '연기력 논란' 떨치지 못한 김태희

 김태희는 <아이리스>에서 어느 정도 연기력 논란을 떨쳐냈지만 완전히 벗어내진 못했다.
김태희는 <아이리스>에서 어느 정도 연기력 논란을 떨쳐냈지만 완전히 벗어내진 못했다. ⓒ MBC

2009년 <아이리스> 이후 공식적으로 김태희에게 붙어 있던 연기력 논란 꼬리표는 어느정도 떼어졌다. 김태희는 극중 NSS 프로파일러인 최승희를 무난하게 소화해냈다는 평을 들었고,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 논란에 대한 그간의 설움을 달랬다. 그러나 대외적인 언론의 평가와는 달리 대중들 사이에서 김태희 연기력 논란은 <아이리스>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역인 이병헌과 대등하게 연기를 펼쳐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물론 국내에서 이병헌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과연 몇 명이나 그와 대등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주연이면서도 주조연급인 김소연보다 존재감이 흐릿했다는 평가 등등… 이병헌과 정준호, 김승우와 김소연과 같은 소위 '미친 존재감'들이 즐비했던 <아이리스>에서 김태희의 연기는 '묻어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작품의 흥행에 있어서도 김태희는 <아이리스>를 제외하면 최근 몇 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소위 '스타파워'라는 게 이제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주연배우에 누가 캐스팅이 되었느냐에 따라 투자가 되고 안 되고, 편성이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출연작들이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일은 김태희의 명성에 흠을 내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야심차게 연기변신을 시도했던 영화 <그랑프리>마저 전국관객 20만 명을 넘지 못하면서 흥행에 참패하자, 김태희에 대한 평가는 더욱 곤두박질쳤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마이 프린세스>였기에, 과연 그녀가 지금까지 연기해온 캐릭터들과는 정반대인, 속물에 짠순이, 덜렁대며 푼수끼 가득한 공주 '이설'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대표작 부족한 송승헌, '자뻑 완벽남' 소화할 수 있을까

 <에덴의 동쪽> 이후 뚜렷한 흥행작이 없는 송승헌에게 <마이 프린세스>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에덴의 동쪽> 이후 뚜렷한 흥행작이 없는 송승헌에게 <마이 프린세스>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 MBC

그리고 그런 우려는 남자주인공 송승헌에게도 있었다. 송승헌은 2000년 <가을동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류스타로 우뚝 섰던 배우. 그러나 <가을동화> 이후 뚜렷한 대표작이 없다는 게 송승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물론 2008년 <에덴의 동쪽>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김명민과의 공동수상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게다가 2010년은 그에겐 유달리 뼈아픈 한 해였다.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영화 <무적자>는 전국관객 150만 명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흥행참패는 면했지만 송승헌의 이름값과 원작의 명성에 비하면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게다가 <가을동화>에서 함께 열연했던 원빈은 <아저씨>로 2010년을 최고의 한 해로 보냈고, 그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장혁은 <추노>로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절친한 친구 사이인 권상우는 <대물>을 통해 그동안의 여러 악재와 부정적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재기에 성공했으니, 또래의 톱스타들 가운데 유독 송승헌 혼자만 부진한 한 해를 보냈던 것이다.

흥행 부진뿐만이 아니라 연기 내적인 면에서 있어서도 송승헌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박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양미간 찌푸리는 표정 연기는 이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졌고, 더구나 김명민과의 연기대상 공동수상은 김명민과 연기력이 비교되면서 오히려 연기 내적인 면에서 그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극중 그가 맡은 박혜영은 재벌 3세이자 외교관으로,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못하는 게 없어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는, 그야말로 '완벽남'에 능글맞은 '자뻑남'이다. 그러나 그런 면과 동시에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할아버지에게 원망을, 일찍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복잡한 인물. 이런 캐릭터를 송승헌이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우려와 달리 돋보인 둘의 연기... 올 겨울 우리를 달달하게 할 로맨스 기대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마이 프린세스> 1, 2회에서 김태희와 송승헌의 연기는 돋보였다. 무엇보다 김태희는 왜 진작 이설을 연기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전작들에 비해 한결 힘이 빠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고, 송승헌 역시 진지함과 능글맞음이 공존하는 박혜영을 그럴듯하게 소화해내 큰 웃음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연출하는 감독이 <파스타>를 연출했던 권석장 감독이라는 사실과, 극본을 담당하는 작가가 로맨틱 코미디물의 달인인 김은숙과 함께 <프라하의 연인> <온에어> 등을 함께 집필한 장영실 작가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결코 식은 파스타같이 늘쩍지근한 맛을 내진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준다.

드라마 방영 전 박신양, 전광렬이 버티고 있는 <싸인>에 큰 차이로 밀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0.1%P 차이(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싸인 17.7%, 마이프린세스 시청률은 17.6%)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 또한 주연배우들의 열연과 노련한 감독, 작가의 힘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한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는 이 겨울, <시크릿가든>이 끝나도 우리의 달달함을 메워줄 '기똥찬' 작품이 하나 나왔으니, 본방사수들 하시라.


#마이프린세스#김태희#송승헌#박예진#류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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