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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출간 이전부터 <허수아비춤>은 대박 예감이었다. 인터파크에서 인터넷 연재를 할 때 누적 조회 수가 220만 건에 달했기 때문이다. 조정래 작가의 이번 신작은 발간 즉시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석권했다.

물론 판매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허수아비춤>에서 작가는 국민들을 "노예"로 비판하고 있는데도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다.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 (허수아비춤, 325쪽)

TV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돈 많은 부인이 점집에 갔다가 무당에게 호되게 욕을 먹는데, 복부인은 화가 나기는커녕 속이 시원하다고 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우리는 이제껏 우리의 잘못을 호되게 꾸짖어줄 어른을 애타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문학은 사회의 아픔을 다루지만 그간의 한국문학이 본질적인 질문을 회피해 왔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마치 프로야구 선수처럼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허수아비춤>을 통해 세상의 문제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작가를 만난 기분이 든다.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 보인다. 그래서 거칠고 문학적인 감흥이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우리들의 현실을 직시한 문학을 만났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분 좋은 장면이 단 1번 나오는 소설

<허수아비춤>에 등장하는 태봉그룹과 일광그룹은 마치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법정 구속된 일광그룹 회장의 절치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문학으로 번역해놓은 것 같다. 전관예우, 삼성장학생, 회전문 인사 모두 직접적으로 다뤄지며, 시민단체만이 희망이라는 결론까지도 동일하다.

<허수아비춤>에는 기분 좋은 장면이 단 1번 나올 뿐이다. 시민단체 일을 하는 허민 교수의 글이 인터넷 성지(중요한 글에 대해서 누리꾼들이 서로 권장해 조회수 폭증한 글)가 되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나머지는 모두 슬픈 자화상뿐이다. 대기업, 국가기관은 모두 영혼이 없고, 시민단체는 영혼이 있으나 미약하고, 국민은 노예근성에 가득 차 있다. 오죽했으면 조정래 작가도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10월 19일 <미디어오늘> 인터뷰)고 밝힐 정도였을까?

대기업의 허수아비춤에 저항하는 몸짓은 소설의 막바지에 가서야 등장한다. 분량으로 따지면 1/4 정도 된다. 그것도 이리 저리 휘둘리다가 궁지에 처하고 간신히 비빌 언덕을 찾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대목은 대기업의 사슬이 이미 우리들의 턱밑까지 위협해 들어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작가의 의도로 풀이된다.

상식이 있는 누리꾼, 시민들은 개별적인 차원의 불복종이나 저항에 머무를 뿐 큰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까지 작가가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작가는 뜻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경고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고통스러웠지만, 이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며, 현실 이해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작품 속에 숨겨진 뜻을 새기며 조정래 작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시민을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2010 인천북구도서관 시민독서운동 독후감 공모 우수작입니다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해냄(2015)


태그:#허수아비춤,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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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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