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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내 젊은 날의 숲〉
책겉그림 〈내 젊은 날의 숲〉 ⓒ 문학동네
내 군 생활. 그건 내 젊은 날의 울창한 숲이다. 전방 철책부대의 '보안69호' 안에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은 까닭에. 물론 '보안69호'란 차는 따로 없다. 내가 배차받은 인분차 번호판이 69호일 뿐. 연대 경비병들조차 냄새나는 차라며 붙잡지 않는 탓에 '보안69호'가 된 거다. 나는 그 차로 3372연대를 중심으로 4개 대대는 물론 멀리 한탄강 헌병초소까지 똥을 푸러 다녔다. 

'보안69호'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아니 모든 걸 구비해 놓고 다녔다.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이고, 라면 끓여 먹는 냄비와 두꺼운 담요. 거기에 이외수의 <벽오금학도>와 <칼>, 경요의 <노을>과 <은잔화>그리고 성경은 필수 항목. 몇 달이 지나면 그때마다 새로운 책들로 갈아넣었지만 내 머릿속엔 그 책들이 그 안에 오래도록 들어 있는 책들이다.

연애편지. 젊은 시절 그 편지 한 통 안 써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 CA반에서 처음 그걸 썼다. 이름하여 펜팔. 미국에 있는 케어리 호그리프라는 여학생에게 썼다. 지금은 영어로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조차 까마득하다. 기억나는 건 그것뿐. 두 세 차례 펜팔을 쓸 무렵 그녀가 내게 사진을 보내왔고, 나도 그녀에게 사진을 보냈다는 것. 물론 그 뒤로 펜팔은 끊기고 말았다. 씁쓸하고 웃긴 그 추억.

군입대 초창기도 편지를 곧잘 썼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형님들에게. 그리고 또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후배에게. 고향 부모님과 형제들이야 대충대충 얼버무렸지만 그 후배에겐 달랐다. 힘든 사연들을 멋진 문장으로 꾸며내야 했기에. 당연히 '보안69'는 그것을 만들어 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비록 똥냄새 나는 공간이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차 속이기에 그런 문장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지금이야 어긋난 사이가 됐지만.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에도 전방 GP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건 내가 연대수송부에 파견되기 전의 GOP 안의 GP와 같다. 북한과 제일 붙어 있는 곳이 그곳 GP였으니까. 나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GOP에서 밤낮없이 근무에 근무를 일삼았다. 적어도 연대운전병에 파견되기 3개월 전까지. 그곳에서의 낙은 잠자는 것, 그것 뿐이다. 아니면 1시간 걸어서 교회에 나가는 것. 그래야 고참들의 눈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상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림을 전공한 젊은 처녀가 민통선 안의 수목원 임시계약직으로 식물들의 세밀화를 그리면서 겪는 군부대 이야기다. 그렇다고 군대 이야기만 난무하는 건 아니다. 군대와 세상을 오가며 느끼는 여러 풍경들, 공무원 비리로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와 그 상부 조직들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도 담아낸다. 더욱이 만주벌판을 누볐다던 그녀의 할아버지와 그의 '좆내논' 말 이야기는 정말로 코믹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중소건설업체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몇 차례 손을 댔다. 수목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몇 자 그적이다 손을 떼고 만다. 세상의 불의와 등을 진 아버지에게 세상의 끈을 다시금 연결시켜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짠하게 와 닿는 부분이다.

헌데 GOP와 GP의 상황은 다른 걸까. 읽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GOP에 근무할 때도 그렇고 연대수송부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모두들 장교들이 차를 직접 모는 건 아니라는 것. 운전병이 차를 몰고 그 옆에 선탑자들이 타는 게 일반적이다. 헌데 이 책에선 김민수 중위가 직접 차를 몰고 그녀를 안내하지 않던가. 과연 김훈은 군생활을 했을까? 의문의 꼬리가 이어진 건 그 때문이다. 그래도 내 젊은 날의 울창한 숲과 같은 '보안69호'를 떠올려준 책이니,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문학동네(2010)


#김훈#내 젊은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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