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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에서 작성한 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 연봉 등 비교표. 이 자료에 따르면 4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은 3800만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에서 작성한 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 연봉 등 비교표. 이 자료에 따르면 4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은 3800만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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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의 평균 근속 연한은 4.1년이고, 이들의 연봉이 초과근로수당을 포함해 3800만 원 정도다. 정규직 원청업체 근로자들 연봉 평균 5200만 원보다는 1400만 원 적지만 행정고시에 합격한 4년차 사무관보다는 많다."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 11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여야 할 정도로 열악한 저임금 상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점거농성을 빨리 풀라고 촉구하면서 한 발언이다.

박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철저히 현대차 쪽의 자료에만 의존한 데다 실상과도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노동시간의 차이 등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무리한 연봉 비교를 시도했다.

376시간 일하고 250여만 원 받아... '4년차 3800만 원'과 거리 멀어

현대차 쪽의 '직용/사내하청/1, 2차 부품사 인건비 비교' 자료를 보면, 근속 4년차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352만253원이었다. 여기에 성과금 등을 합치면 연평균 월할 임금은 431만8152원이고,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5181만7820원이었다.

4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258만6183원이고, 연평균 월할 임금은 316만1194원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연봉은 3793만4332원에 이른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 연봉의 7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박 장관은 이를 근거로 '3800만 원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쪽의 자료는 월 223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작성한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300시간을 훌쩍 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받고 있는 연봉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금속노조쪽에서는 "현대차의 자료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울산 3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A(54)씨. 그는 1995년 현대차의 한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14년간 근무했다. 물론 그 사이에 업체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현재의 D업체에서 일한 지는 4년 됐다. 그래서 근속연수도 4년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동울산세무서에서 발행한 A씨의 '근로소득 연말정산'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D업체로 변경되기 전 근무했던 H업체에서 받은 연봉은 2439만2916원(2006년)이었다. 그리고 D업체에서 받은 연봉은 2007년 2963만8915원, 2008년 3496만6745원, 2009년 2714만9285원이었다.

최근에 발행된 A씨의 급여명세서를 살펴보자. 지난 7월 A씨가 받은 급여는 175만6844원이었다. 여기에는 여름휴가비 20만 원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순수한 급여는 155만6844원이다. 155만6844원에는 기본급 80만2332원과 연장·특근수당 83만1762원이 포함돼 있다. 연장·특근수당이 53.4%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차 울산 3공장에서 일하는 J(30)씨의 경우를 보자. 그에게도 역시 한 번의 업체변경이 있었고, 현재의 K업체에서 근무한 지는 4년 됐다. 그의 연봉은 2007년 2569만8026원, 2008년 3112만3585원, 2009년 3417만5352원이었다.

J씨의 6월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그는 252만1039원을 받았다. 여기에는 기본급 87만7488원과 연장·특근수당 76만4660원이 포함돼 있다. 이달에는 상여금 105만7440원이 나와 그나마 250여만 원의 급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A씨와 J씨의 경우에서 보듯, 사내하청업체가 자주 바뀌어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 하다. 또한 4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수준은 연장·특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정규직처럼 '소득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현대차 쪽의 연봉 비교는 223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A씨와 J씨의 노동시간은 각각 333.9시간과 376시간이었다. 연봉 3000만 원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장근로'와 '특근'을 밥먹듯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5급 사무관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사내하청 '고용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올 6월분 급여 명세서. 376시간 일하고 받은 급여는 252만여원.
 현대차 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올 6월분 급여 명세서. 376시간 일하고 받은 급여는 252만여원.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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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차쪽 "사내하청 연봉 4000만원"... 금속노조쪽 "심각한 부풀리기"

그런데도 정부와 현대차 쪽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 부풀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규직에서 파업투쟁을 벌이면 그들을 '귀족노동자'라고 몰아붙이던 고전적 수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박재완 장관이 '연봉 3800만원' 발언을 하기 전에 강호돈 현대차 부사장은 지난 11월 20일 직원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근 몇 년간 우리 현대차 노사는 사내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결과 당사 사내하청 근로자의 4~5년차 평균 연봉은 4천만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 부사장은 "이는 고동노동부 발표 올해 전국 근로자 임금 평균의 1.4배나 되는 금액으로 인근 웬만한 부품업체 직원의 연봉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며 "이처럼 사실이 아님에도 그들은 '열악한 처우'를 운운하며 사회 저변의 비정규직에 대한 동정심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정규직 노조 쪽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1월 30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현대차의 자료는 현대차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심각하게 부풀리고 있다"며 "금속노조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법정소송을 위해 수집한 임금표에 의하면 현대차 사용자의 왜곡과 오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앞서 언급했던 A씨의 사례를 두고 "월 300시간이라는 초장시간노동을 하고도 휴가비를 제외하면 고작 175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며 "이는 회사 측이 주장하는 월 평균임금 258만6183원과 무려 80만 원이나 차이 나는 액수"라고 지적했다.

2일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 연구위원은 "4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3000만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회사측 기준인 213시간 노동으로는 3800만 원의 연봉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옛날에는 비정규직 연봉이 정규직의 40~45%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65~68% 수준으로 올랐다"며 "그나마 비정규직 노조가 있어 임금협상도 하니까 이런 수준으로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박 장관은 학자출신인데도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회사쪽 자료만 참고해 문제의 발언을 했다"며 "5급 사무관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을 무리하게 비교하면서 정규직에 이어 비정규직조차도 '귀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사내하청#박재완#금속노조#강호돈#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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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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