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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것에서 무언가 삶의 신비로움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존재가 하나하나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존재들이 나와 깊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불교의 세계관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차경진(48) 작가는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을 두고 "치열한 작가주의적 욕망을 벗어난 하나의 해탈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표현했던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로부터, 비로소 순수한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회복의 과정과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차경진 작가의 5회 개인전 '인드라망_관계의 연금술'이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문명·발굴, 묵시·신들의 시간(1996)'▲실존의 그림자(2006) ▲숲의 욕망(2007) ▲두 얼굴(2007)에 이은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1년여 동안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작업하며 느껴왔던 자연과의 교감을 모티프로 표현했다.

 

실존의 그림자를 통해 자아를 찾아 나서다

 

차경진 작가는 96년 첫 개인전 이후 '가벼움의 미학'이라는 철학으로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린다. 즉, 가벼운 존재로서 인간 군상이 가진 외적 상처로부터 실존적 자아를 발견하고 치유해내기 위한 그만의 부단한 열정과 노력이 끊임없이 반복돼가는 시기를 겪는다.

 

차 작가는 그간의 작품을 통해 신을 상실한 감각의 시대에 거대 두상을 조각하며 감추어진 내면적 신을 되불러오고, 익명성을 가진 두 개의 가면을 통해 자기소외를 극복해가는 치유의 과정을 담아냈다. 또 쓰다버린 폐목더미로 본질적인 생명력을 분출해내고, 입체적인 두 얼굴의 표피를 통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관계의 연결망을 회복하려고 했다.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고 나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적 상실감에 시달리곤 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에 기인한 나머지 고집스럽게 얼굴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됐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쳐야할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과도 일치되는 것이었다. 이제 그 고통과 아픔의 표상들을 벗어던지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 치유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이는 곧 고충환 미술평론가가 그의 작품을 보고 언급했던 "사람의 향기를 닮은 자연의 오묘한 질서에 매료됐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1년여 간의 시골 작업 생활은 이전의 작품과정과는 확연히 다른, 자연 속에서 빚어내는 또 다른 여유와 안정 그리고 편안함을 안겨다주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차 작가의 이번 작품을 논하며 '관계의 망 속에서 실존을 묻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런 뒤 "작가는 최근 작품을 통해 인드라 망과 관계의 연금술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풀어낸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인드라 망이란 불교용어로, 제석천의 궁전을 장엄하는 구슬그물을 말한다"면서 "그물코마다 구슬들이 꿰어져있어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투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차 작가가 자연 속에서 발견했던 작은 사물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미학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조개 하나를 찬찬히 바라보면 그 무수한 선들이 이어진 단단한 겉껍질의 형태와 질감에 감탄하게 되고, 나아가 속에 들어있는 고 보드랍고 흐물거리는 알맹이의 향과 맛에 경이를 느끼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조약돌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있다고. 난 조개를 보면서 존재의 신비함을 실감한다."

 

차경진 작가는 그저 일상의 소품에 불과했던 볼품없는 물체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해의 단계에 오르면 그것과 나 사이에 관계가 생긴다고 전한다. 즉,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가 서로를 무수히 비추면서 서로 뗄 수 없는 총체적인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나뭇잎'이라고 주저 않고 말했다. 나뭇잎은 우렁이가 갉아먹고 남긴 잎맥을 보면서 이러한 관계적 그물망의 비유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차 작가는 "실핏줄처럼 촘촘하게 연이어진 잎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만 갈래의 길이 나있다. 하지만 그 길들 모두가 하나의 길로 연이어지고, 하나의 이파리라는 전체에 아우러진다. 푸른 잎으로 싱싱할 땐 그 그물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마치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밝은 햇살을 투영하는 듯한 차 작가의 여유로운 이야기 속에서 자연을 닮아 있다는 느낌이 교차한다. 차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를 통해 앞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의 테마를 넌지시 전했다. 아울러 길가에 피어난 여린 꽃잎들도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 속에서 이미 그 꽃 자체가 되어버린 차 작가의 부드러운 마음을 읽는다.

 

"조각조각 엮어 만든 옛 그릇 옹기는 불·물·공기·흙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일종의 연금술이다. 전혀 다른 존재들이 만나 황금비율로 조화를 이루면 황금처럼 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차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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