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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댓글 '제로'다. 작년 '더불어 졸업여행' 기사를 썼을 때도 그러했다. '더불어 졸업여행'은 <오마이뉴스>가 또래 급우가 없는 전국의 '나홀로 6학년' 학생들을 초청해, 동갑내기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행사 취재를 2년 째 맡았는데, 여전히 댓글 '제로'다.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아니라 애써 위안하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회사 행사라고 흐뭇하고 즐거운 모습만 보였던 것인가. 그래서 자화자찬으로 비칠 여지가 그만큼 많았던 건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봤다. 회사의, 아니 <오마이뉴스>의 행사 취지는 무엇인가. 농어촌에서 외롭게 지내던 학생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경제논리에 밀려 설 곳을 점차 잃어 가는 '더불어'의 가치를 재확인하기 위함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어린 친구들이다. 더구나 '지금' 그들은 즐겁기만도 바빠야 할 행사의 '주인공'들이다. '조연'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농어촌 공동체의 파괴를 그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을 '어른들', 그렇게 선생님들에게 인터뷰 의사를 타전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하철 올 때마다 "대박"을 외치는 민혁이 옆에서

 

김동겸(35·남) 선생님이었다. 그는 "자신은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좋지만, 이 이야기만은 꼭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다녔던 모교 또한 폐교됐다고 했다.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인터뷰를 꼭 해야 할 선생님이었다. 여행 첫날이었던 24일, 선생님을 졸졸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충남 보령군 청파초등학교 호도분교에서 학생 '두 명'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한 친구는 4학년 그리고 6학년 친구가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가한 김민혁 학생이다. 우선 '더불어 졸업여행'에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솔직했다.

 

"분교장 선생님이 다녀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어떤 행사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오는 길에 민혁이가 지하철 들어 올 때마다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더라고요. 배가 하루에 몇 번 다니던 섬에 있다가, 2∼3분마다 지하철이 오는 곳에 왔으니, 얼마나 새로운 경험이었겠어요. 학생들에게는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 아까 모교가 폐교됐다고 하셨는데요.

"기분이 참… 1998년 임용됐어요. 한 학기만 근무하고 군대를 다녀왔죠. 그리고 2001년 복직했는데, 참 공교롭게도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인 거예요. 아버지가 당부하시더군요. 물론 열심히 하겠지만, 더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최선을 다 해라. 그런데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들었어요. 그러다 제가 다른 곳으로 전근한 지 3년 만에 폐교되더군요."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다 모교에서 맺어진 사랑

 

선생님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특별한 인연이 또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내도 그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다 모교에서 맺어진 사랑, 그 추억이 얼마나 애틋하게 느껴질까. 선생님은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끼리 아직도 모인다"며 "너무 아깝지만, 아쉽지만, 힘이 없으니 어쩌겠냐"고 했다.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니까, 폐교 후에도, 동네 갈 때마다 학교를 보러 갔었어요. 아이들 데리고 아빠가 다니던 학교라고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그조차 어렵더라고요. 관리 차원에서 교문을 잠가 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밖에서만 둘러보고 그러다 이제는 잘 안 가게 되더군요."

 

- 폐교로 마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그나마 학교가 있었을 때는 뭐 운동회 같은 행사를 통해 서로 만나 술 한 잔 하고,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차피 아기 아빠들도 다 동네 출신이니까요. 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결됐었는데, 학교가 없어지니 그런 고리가 딱 끊기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 동네 주민과의 왕래도 확연히 줄어들더군요."

 

선생님은 초등학교 폐교와 중·고등학교의 그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중학생 정도면 원거리 통학이 가능하지만, 초등학생은 그렇게 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했다. 사실상 젊은 부부가 유입될 만한 통로가 원천 봉쇄되는 셈이다. 마을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기 마련이다.

 

- 학교가 없어지면 동네가 죽는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쇠락이 낫지 않을까요?"

 

"한 순간에 멀쩡한 학교를 폐교시키기보다는..."

 

실수였다. 그 누가 자신이 성장한 마을을 죽었다고 표현하고 싶을까.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래일 게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선생님이 제자들을 바라보는 마음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교류학습 때 느끼는 안타까움은 크다.

 

"아이들이 선생님만 따라다녀요.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자리에만 앉아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 걱정이 들죠. 혹시 상급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실제 학부모 한 분도, 자신도 중학교에 가서 처음 도시락을 꺼내놓지 못했다고. 닷새동안이나 그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말 걸어주는 이도 없고, 같이 먹자는 친구도 없고… 교류학습 같은 것도 없었을 때였으니까요."

 

- 올해 호도분교에 부임하셨다고 했잖아요. 혹시 분교 학생들 졸업식 보신 적 있어요?

"예, 본교(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몇 차례 봤어요. 지원 단체가 여러 곳인 경우, 혼자 상을 많이 받게 되죠. 학부모님들 입장에서는 궁금하죠. 쟤는 누구냐, 누구인데 저렇게 상을 많이 받나. 무조건 좋다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풍경 아니겠어요. 남과 다르다는 시선,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이죠."

 

- 아무래도 도시민들의 관심이 부족합니다. 이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어렸을 때, 캐나다 이야기로 기억하는데요. 눈 덮인 허허 벌판, 외딴 곳에 사는 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비행기를 타고 오갔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지금도 종종 떠올라요. 제 모교는 폐교 당시 학생 숫자가 스무 명은 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럼 최소한 과도기는 있었어야 하지 않나, 한 순간에 멀쩡한 학교를 폐교시키기보다는 분교 과정을 거쳤으면 좋지 않았을까."

 

"농어촌 문제를 풀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둬야"

 

 

- 과도기를 거쳐 분교를 없애야 한다는 뜻인가요?

"아뇨. 유지해야죠. 학생만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평생 교육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요. 그럼 충분히 지역 주민 교육 센터로서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한 곳 정도는 남겨 두는 편이 낫지 않나. 그게 바로 교육복지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일 아니냐. 몇몇 학생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일반적인 개념의 복지도 설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그것부터 안 된다고 하면, 농어촌 공동체 문제는 어디서 해소할 것인가요. 결국은 학교에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니, 최소한 풀 여지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선생님은 지금, 그 여지를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나홀로 졸업식'을 치르고 자신의 곁을 떠날 민혁이. 끝으로 제자에게 뭔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잠시 망설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혁아,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지? 여러 과정을 잘 밟아서 그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 그리고 민혁아, 선생님이 다니던 학교는 폐교됐단다. 만에 하나 호도분교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네가 호도분교를 다시 활기찬 학교로 만들어주면 좋겠어."


태그:#초등학교, #폐교, #교사, #복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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