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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국가범죄〉
책겉그림 〈국가범죄〉 ⓒ 앨피

우리나라 과거사청산 목록은 뭐가 있을까? 동학농민전쟁, 친일반민족행위,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강제이주,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중 집단희생, 정치적 박해사건, 광주학살, 삼청교육대, 군의문사, 고문조작사건 등이 있다. 그야말로 100년의 현대사를 망라한다. 광주학살 같은 것은 그나마 원만하게 된 것 같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은 발걸음 단계에 있다.

 

무엇이 과거사 청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법리적인 논쟁 때문일까? 복거일이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제출했다는 항변과 같은 것 말이다. 강제합병 이후에 이뤄진 친일반민족행위는 합법이라는 논지 말이다. 헌데 그게 가당키나 한 논의인가?

 

뭐가 또 있을까? 정치적인 세력 싸움도 큰 걸림돌이지 않을까. 사실 과거사 청산은 해방 이후에 끊임없이 논의해 온 사안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좌파의 정치적 기획이라고 싸잡아 매도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문제다. 이미 그것은 지구적 차원의 실천 사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민의식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경제문제와 남북문제 이외에 어떤 것들도 생각치 않으려는 경향 말이다. 요즘만 봐도 남북한 전쟁 발발 가능성과 그에 따른 주가동향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정의로운 사회는 원해도 과거사청산에는 무신경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이재승의 <국가범죄>는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국가범죄와 그 법적 청산의 기록을 담고 있다. 지난 10년간 과거사청산에 몸을 담으면서 활동한 그 내역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과거사 청산에 대한 법리논쟁과 정파다툼, 그리고 시민의식의 부재 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독일과 프랑스 등 세계적으로 행하고 있는 과거사청산에서 배울 점들도 살펴주고 있다.

 

사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매우 중한 사안이다. 어떤 자가 주범이고 적극 가담자인지, 어떤 자가 소극 가담자요 단순 가담자인지, 그걸 밝히는 것도 신중한 문제였다. 물론 그것을 분류하는 것도 우리가 착안한 게 아니었다. 독일의 <나치숙정법>에 의한 '통제위원회지시'에서 5가지 단계로 분류한 사안이다.

 

그와 관련하여 이 책이 이색적인 게 있다. 친일파를 각각 3세대로 분류한 것이다. 이른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능약에 관여한 매국대신과 친일 관련자들과 의병활동을 방해한 매국형 친일파(∼1910)가 제 1세대, 일제의 식민지배 안정화에 기여한 조선총독부 관리나 지식인과 언론 및 종교인 등의 직업형 친일파(1910∼)가 제 2세대, 그리고 제 3세대는 전쟁협력형 친일파(1937∼)로 일제가 벌인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전쟁범죄와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협력한 자들을 뜻한다.

 

이런 사안에 대해 그런 항변도 할 것 같다. 상부에서 명령한 일을 자신은 다만 수행만 했을 뿐이라고. 그러니 죄가 없고, 있다면 그 당시 그 직무를 감당한 것뿐이라고.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히틀러와 함께 끝까지 나치 활동에 몸을 담은 부하들과 5·18 때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함께 총칼을 겨누고 다니던 그들이 똑같이 항변한다면 어떨까?

 

이재승 교수는 그런 사안에 대해 뉘른베르크 재판이 남긴 유산을 새기도록 한다. 상관의 명령이 상위법과 국제인권법, 그리고 실질적인 정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면 결코 적법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불법적인 명령을 낸 상관도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 명령을 수행한 부하도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청산되지 않은 국가범죄와 인권침해를 앞에 두고 누그러뜨릴 수 없는 분노와 어쩔 수 없는 용서 사이에 서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사면'은 '망각'에서 나오고, 망각은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됐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는 궁극적인 해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인간적 비참을 지상에서 제거할 것이다. 그것은 균질한 삶을 보장하는 경제와 분산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공유되는 권력에 기초한 정치사회일 것이다." (619쪽)

 

우리의 과거사청산은 중대한 기로에 있다. 그 대상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건마다 대립과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그에 따른 억울한 희생자도 많다. 더욱이 배상해 줄 재원도 많지 않아 개별배상보다 집단배상으로 가닥을 잡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공원조성과 기념사업과 같은 망각해법을 남발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지극히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과거청산에 그칠 것이다. 그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시민 역량은 중요한 일일 것이다.


국가범죄 - State Crimes

이재승 지음, 앨피(2010)


#국가범죄#시민역랑#과거사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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