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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산촌에는 가을을 무사히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절기상으로는 입동이 겨울의 시작이지만 가을의 연속으로 보지 겨울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오늘(23일) 부산에 갔다가 언양 쪽으로 한 바퀴 돌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가는 길마다 낙엽이 붉게 물들었더니만 어느새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뭇잎도 아름다운 단풍이 아니라 쓸쓸한 낙엽으로 탈바꿈해 버렸습니다.

 

우리 집에도 3월에 첫 꽃을 피우던 생강나무를 시작으로 진달래, 살구, 벚꽃, 장미로 이어 지면서 온갖 꽃들이 피어댔습니다. 참 대단한 자연의 변화요, 식물들의 살림살이였습니다. 이제는 국화와 장미 몇 송이, 구절초 꽃이 보일 뿐 거의 지고, 멈추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에 놀라고 그 섭리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있습니다. 새로 지은 집 축복을 해 주시려고 오신 신부님께서, 작더라도 연못을 하나 파라고 하셨습니다. 연못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찌나 강권하시던지 아내와 단둘이 삽과 곡괭이로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땅을 파고 돌을 주어다 쌓고, 시멘트와 모래를 이겨서 발랐습니다. 물이 새는 게 제일 문제인데, 방수액도 바르고 실리콘도 발라가면서 물을 잡았습니다. 두 평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어엿한 연못이 완성되었습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인척이 물고기 다섯 마리를 주었습니다. 하얗고 빨간 금붕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연못을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이웃 사람이 왔다가, 물고기가 새끼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연못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물고기 새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돋보기를 들고 와서 보니 물고기 새끼들이 보였습니다.

 

이런, 그 작은 연못 안에서 물고기들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40여 마리나 되는 물고기 가족으로 늘어났습니다. 물고기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 뒤주에 끼워진 자물쇠를 보면 간혹 물고기 모양이 있었는데, 밤에 잠자지 말고 도둑을 잘 지키라고 물고기 디자인으로 자물통을 만들었답니다.

 

물고기들은 여름이나 겨울을 잘 견딥니다. 여름에는 30도 이상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지난 겨울에 20cm 두께로 얼음이 얼었기에 도끼로 깨고 보니 물고기는 얼어 죽지 않고 잘 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름에는 먹이를 열심히 먹고 활동을 왕성하게 합니다. 그러나 날씨가 차고 추워지면 적게 먹고, 활동도 축소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개구리가 봄이면 나오고 겨울에는 잠을 자듯이!

 

다시 나무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이웃 동네에 있는 단감나무 과수원에는, 자잘한 단감이 많이 열려 있었습니다. 도시 사람이 과수원 땅을 구입해 놓고, 관리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감나무 과수원을 잘하려면 퇴비를 사다가 넣고, 잡풀을 베어 주며 꼭 필요한 만큼의 농약을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퇴비도 안 넣고 농약도 뿌리지 않았으며, 감꽃이나 작은 열매를 솎아주지 않았으니 감이 잘고 못 생긴 것이지요.

 

누구든지 따가라고 플래카드를 걸어놨지만 아무도 따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리를 맞고 말았습니다. 다 익은 단감도 서리를 몇 번 맞고 나면,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두면 감나무가 얼어 상하기 때문에 감을 다 따 주어야 한답니다. 그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잘 익은 감은 따는 재미가 있는데, 먹지도 못할 서리 맞은 감을 따 내는 작업은 아무 재미도 없고 힘만 들지요.

 

봄에 싹을 틔우고 자라서 잎이 되고,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가을이 돼 탐스러운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을 보면 큰일을 해낸 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지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때를 잘 맞춰서 일을 해 내는 모습도 대단합니다. 호박을 관찰해 보셨습니까? 호박은 여름에 하루 40cm를 뻗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뻗어 나가다가 나뭇가지라도 만나면, 어김없이 용수철처럼 감으면서 앞으로 나가고 위로 올라갑니다. 눈으로 보고 작업을 하는 것처럼 견고하고 완벽한 작업을 합니다.

 

늦가을이 되면 호박이 열리기가 무섭게 잘 자라고, 금방 열매를 맺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 개라도 더 많이 열리고 더 키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내고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멍청해 보이는 호박도 자신을 살리고 번식시키기 위해서 제 구실을 열심히 합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벽오동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금년에만 150cm 정도 자랐습니다. 초록색 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랐지요. 그 큰 잎도 씩씩해 보였습니다. 몇 년 만 더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면 봉황이 날아와 놀다 갈까요?

 

바로 그 벽오동나무가 잎줄기를 다 털어내고 있습니다. 품위 있고 기품 좋아 보이던 벽오동나무가 잎줄기를 다 떼 내버린 것입니다. 그 무성한 잎줄기를 그대로 달고 있으면 겨울을 보내면서 나무는 얼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안 나무가 잎줄기를 떼 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헐벗은 나무가 되어 초라해 보일 정도고, 마치 장대 하나를 땅에 박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살고 싶으면 옷을 모두 벗어라!"

 

그렇습니다. 기품 좋게 잎줄기를 달고 겨울을 나고 싶겠지요. 그러나 그랬다간 몸체가 얼어 죽을 것입니다. 나무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것입니다. 사람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나무나 식물들이 잘 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몸통이 기품 좋게 살아가려면, 작은 욕심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살고 싶으면 옷을 다 벗던지, 다 벗을 수가 없으면 몇 개라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명예도 얻고, 권력도 누리고, 돈도 쥐려고 하다 보니 패가망신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겨울 산에 가서 헐벗은 나무를 보거든,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십시오. 존경스럽지 않습니까? 나무는 여름내 탐욕스럽게 누리던 재산을, 이웃 나무의 거름으로 벗어 던지는 것입니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그렇게 이겨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www.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단풍은 아름답다#낙엽도 아름답다#잎을 쳐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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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시민 사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2007년 봄에 밀양의 종남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귀촌하였습니다. 지금은 신앙생활, 글쓰기, 강연, 학습활동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 있는 1948년생입니다. www.happ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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