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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사는 곳에서 몇 년 전부터 시민들에게 책 만들기를 적극 권장하는 책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민이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책 만드는 교실을 각 문화센터나 복지관 평생교육센터, 야학교 등에 광범위하게 개설해서 글짓기, 제목과 목차짓는 법 등을 1년간 강사를 파견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몇 년간 나는 관심은 있지만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그냥 바라만 보았다. 틈틈이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7년 간 써놓은 글들이 수백 개였지만 이것을 책으로 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리골절사고를 당하고 해마다 열던 개인전을 올해는 개최하지 못하면서 나도 한 번 책만들기를 신청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첫 꿈이 책을 내는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사범대를 나오고도 교사임용이 되지 못하고 자살한 여성장애인기사를 읽고 첫 꿈은 그냥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두 번쨰 꿈을 다시 꾸고 붓을 잡아 지금 자리를 잡은 작가가 되긴 했지만 첫 꿈에 대한 그리움의 씨앗은 가슴에 오래 오래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생각은 점점 현실로 꽃피우고 싶다는 갈망으로 변해갔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은 글을 못 쓴다는 그런 잘못된 사회인식을 깨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언어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수화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사회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교육제도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 개선되어 청각장애아이들도 글짓기 공부를 학교에서 많이 하기 시작하지만...

성인이나 중년이상의 청각장애인들은 문자메시지도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노력을 한다면 청각장애인이나 일반인이나 별 다름없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

그래서 책 만들기 교실에 등록을 했지만 직장에 다니기에 평일 수업을 한 번도 출석을 못해서 개인자격으로 내려고 마음먹고  틈틈이 원고를 정리했다. 그러나 7년간 써놓은 수백 개의 원고를 파일형태로 새로 다듬고 거기서 다시 일정 분량을 추려내는 작업과 책 사이 사이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팔린 작품을 수소문해 파일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무척 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자체에서 책 만들기 원고를 선정해서 지원해 주는 돈이 20만 원이라는 것이다. 20만 원 가지고 책을 만들라는 것이 아닌 자비로 출판하되 그 중에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온갖 출판사를 수소문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출판사나 지역사회안의 출판사나 대략 100부의 책을 200페이지 기준으로 출력해도 150만 원에서 350만 원사이로 그렇게 시세가 있었다. 그러나 내 책은 350페이지에 올칼라가 25페이지가 들어가니 출판사는 350만 원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어떤 출판사는 전국의 300개 도서점에 책을 깔아주고 월 관리비 15만 원만 내면 인세관리도 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팔리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니깐 회수경비를 주면 자기들이 친절하게 회수해준다고 했다.

내 책이 서점에 깔린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인세는 고사하고 가난한 예술작가의 생활비를 야금야금 잠식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서점일은 잊기로 했다.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원고를 제출한 것은 9월말이었고 그 원고가 지원대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은 10월이었는데 10월 26일까지 완성한 책을 내라는 연락이었다. 아직 원고를 추려서 교정도 안 마친 상태라 허술한 내용을 출판사에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퇴근 후에 직접 매달렸다. 딸과 자원봉사자에게 알바 형식으로 함께 편집해나갔다. 표지는 내가 직접 제목을 쓰고 자원봉사대학생이 소박하게 만들어주었다.

 생애 첫 책 '선물'의 표지, 선물의 앞 뒤 캘리그라피를 직접 만들었다.
생애 첫 책 '선물'의 표지, 선물의 앞 뒤 캘리그라피를 직접 만들었다. ⓒ 이영미

그리고 제목을 '선물'이라고 지었다. 선물이라고 제목을 짓는 것은 딸들과 대화를 하면서 절로 정해졌다. 내가 나에게, 또는 세상에게, 힘들었던 순간과 고마웠던 순간,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의 모든 주고 받는 정이 삶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마감이 촉박해서 조퇴를 하고 책을 내러 갔는데....고급장정본의 책과 표지가 다채로운 출판사에서 전문 책디자이너들이 표지를 만든 책들로 인해, 동네 제본에서 찍어낸  내 책은 너무나 소박했다.

그래도 꿋꿋이 내고 온 그 날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아 포대기에 싸서 놓고 온 그런 가난한 엄마의 마음처럼 가슴이 젖어 들었다. '선물' 에 담긴 이야기들은 7년의 삶의 흔적들이 담긴 이야기였고, 대부분 오마이뉴스에 나온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내 삶의 생생한
기쁨과 고통과 따스한 정들의 범벅인 내 피와 살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바쁜 일상에 묻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1,200권이 출품된 책 중에서 1등인 최우수상이니 인터뷰하러 오라는 것이다.  무척 기뻤다. 그리고 너무 운이 좋은 느낌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삶은 가끔 이렇게 예기치 않은 선물을 준다. 선물을 받으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들어오는 선물이 있는가 하면 선물을 받고자 갖은 애를 썼는데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아쉬운 점은 선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따스한 정을 표현하고 그렇게 함께 그 따스함을 나누자는 뜻에서 이웃들의 따스한 이야기도 많이 실었는데 언론에  보도된 것은 내 뜻과 전혀 상반된 내용이 나온 것이다. 책 구성이 쉴 수 있는 쉼터의 여백이 돋보이고 문장력이 간결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 세상의 냉대와 차별을 이기고 ....'  이런 표현이 좀 아쉬웠다.

과연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내 책 '선물'을 읽어 본 것일까? 내가 바라는 것은 청각장애인들도 이렇게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고, 물질이 판을 치는 요즘에도 이렇게 꿋꿋하고 따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도해주기를 바랐는데....책 '선물'의 그 어디에도 차별받은 이야기와 냉대하는 사회 이야기는 없었는데 말이다. 하긴 이렇게 의도와 다르게 표현되고 보도되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일부이겠지만 ......

이 땅의 모든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배우면서 책읽기 구화연습과 글짓기를 배우고, 이 땅의 모든 비장애인들은 글짓기를 배우면서 일일에 십 분이라도 수화를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청각장애인들은 글을 못 쓴다는 사회통념도 생기지 않을텐데. 꿈 같은 일이긴 하겠지만....


#책 출판#1인 1책 만들기#청각여성장애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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