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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모 신문사에서 연재중인 도종환 시인의 "나의 삶, 나의 시"라는 글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은 청주가 아니지만, 청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 까닭에 청주는 제게 이미 제 2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도종환 시인이 청주 출생이라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눈여겨 시인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한때 문학가를 꿈꾸며 문학이 주는 감흥에 푹 빠져 살았던 이력이 있었기에 시인의 글은 더 큰 저의 관심사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흘려 읽으려 집어들었던 글에서 시인의 삶과 생각들을 발견하면서 버려놓으려고 치우던 놓지 못한 채 신문을 모아놓게 되었습니다. 모아논 신문들이 귀찮기도 하고, 또 언제 다시 내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번엔 그냥 읽고 버려야하지 하는 다짐으로 기획면을 또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글은 나를 붙잡고서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쓰레기로 한데모아 처부되어 버릴 만한 그런 글들이 아니였습니다.

나는 다시 또 주섬주섬 가위를 찾아들고서는 시인의 글을 잘라서 모아놓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기막히게도 사람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글들을 쓰는 것인지, 신문의 호수가 더해가며 새롭게 창조되어지는 글들을 볼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글 속에서 도종환 시인님의 삶과 생각을 발견하게 되고는 꼭 한번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서는 차마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시인의 말로서 전해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계시는 곳도 그리 먼 곳이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찰나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기대했었던 이전의 만남들이 떠올랐고 그 기대가 수포로 돌아갔던 예전의 실망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였을까요? 강단 위에서 참 대단해 보이던 이들을 만날 때 강단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진정성이 결여된 모습이나, 오만한 눈빛들을 자주 접해봐서였을까요? 시인을 본다는 나의 생각이 무척이나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서는, 시인을 볼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 기회를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나는 고귀한 글로서만 시인의 이름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글이나 말만 보아도 그 사람의 대부분을 알 수 있듯이, 내가 생각하는 시인의 삶은 글과 피차 일반이라 여겨지긴 하나, 마음 한 켠엔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 대한 제 안의 트라우마가 존재했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몇 년 전 한 유명한 기자가 하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사적인 회식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몇몇의 문인들의 이름이 기자의 입에 거론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문인들의 모습과, 그의 글과 그들의 삶은 영 딴판이었습니다. 그런 삶에도 그런 글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나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글들이 지니는 가치도 그들의 사적인 삶의 내막을 알게되고서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본디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 기대와 현실이 다른 것을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지나친 이상과  기대를 탓할 수 밖엔 없겠지요.

그래서 나 또한 편지를 부치지 못했습니다. 대학시절 백일장을 통해, 저의 졸작이 한 잡지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글 한켠에는 저의 이름과 대학, 그리고 과만 적혀올라가 있을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과사 앞으로 저에게 이름모를 누군가로부터 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도착한 그 편지는 잡지에 실린 저의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서신으로나마 더 깊은 위로의 글과 말을 듣고싶다는 내용의 긴 편지였습니다. 한 사람의 운명을 달리한 그에게 있어서 제 글이 퍽 큰 위로로 다가왔었나 봅니다.

생전 처음 받은 그러한 편지에 무척이나 설레며 답장을 쓰려했습니다. 하지만 글은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머리를 쪼아려가며 글을 쓰려 했지만, 아무리 다시 읽어보아도 제 글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차마 부치지 못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을 그도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글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내야 하는데 화려한 말들로 내 마음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기대와 내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에 내가 쓴 글의 가치마저 훼손 될 수 있을 것이라 염려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 편지는 부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지나친 두려움이었을까요? 나는 답장을 보냈어야 했을까요? 아직 저도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그의 기억속에 하나의 고귀한 글로서 남고 싶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주옥같은 글로만 남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삶과 나의 글은 한결같지 못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만큼이나 나의 삶은 그렇게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부치지 못했습니다. 나는 사람과 말이나 글이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글과 말의 가치가 온전함을 입증해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어떠한 편견도 없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안목도 더욱 좋아지기를 또한, 바랍니다.


태그:#도종환, #시인, #글, #사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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