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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노모는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 김치냉장고를 샀다. 자식들에게 나눠 먹일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 냉장고에 여섯 살 손자가 읽을 알파벳 포스터를 붙였다. 그 냉장고 뒤에, 이들의 일상을 차압할 빨간 딱지가 붙었다. 자신의 집이 이런 상황임에도 오수영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노조(이하 재능지부) 사무국장은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재능지부 사무실의 컴퓨터와 집기에도 차압 딱지가 붙은 탓이다.

 오수영 사무국장의 집. 냉장고, 컴퓨터, TV 뒤편에 빨간 차압 딱지가 붙어 있다.
 오수영 사무국장의 집. 냉장고, 컴퓨터, TV 뒤편에 빨간 차압 딱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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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고소·고발에 압류까지... 우리가 특수고용노동자라서"

발단은 지난 2008년 재능교육 측이 재능지부를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이었다. 이를 통해 재능교육 측은 조합원 8인에 대해 총 5000여만 원의 급여와 통장을 가압류했다. 단체협약 원상 회복과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위해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007년 말부터 진행된 농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가압류 상태에서도 1000일이 넘도록 농성이 계속되자 사측은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위반에 대한 강제 압류'를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지난 10월 10일과 14일, 오씨의 시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 법원 집행관과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몰려와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노조 활동에 대한 사측의 가처분신청은 흔한 일이나, 실제 강제압류를 진행한 것은 초유의 사태다.

11월 3일 오전 10시엔 오 사무국장 자택에서 살림살이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불분명한 이유로 연기되었다. 오씨의 배우자인 김진찬씨는 출근도 못 하고 아이를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고 어머니를 다른 곳에 피신시키며 초조하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또 언제 올지는 몰라요. 그럼 또 회사 못 나가고, 가족 모두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죠. 또 이런 일을 몇 번씩 벌이려고 포석을 깐 것으로밖에 안 보여요. 이 압류가 정당한지 따지는 소송을 피채권자가 걸 수는 있지만 몇 개월이나 걸려요. 시간이 없어요. 답답한 거죠." 

그는 모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공정사회니 뭐니 참 좋은 말들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누구는 남의 돈 한 푼 빌리지 않았는데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했다고, 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는 이유로 집안이 압류되어 경매에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4일 오후 3시엔 사무실 경매가 공고되어 있었다. 법원 집행관들이 들이닥치고 조합원들과 실랑이가 붙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채권자도 안 데려오고서 어떻게 경매를 진행하느냐", "정확히 신분증을 보여주고 업무를 하라"는 조합원들의 항의에 집행관 측이 "악쓰는 것만 배웠냐. 계속 소란을 피우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맞섰다. 긴 실랑이 끝에 이들은 결국 돌아갔다.

그중 중앙지법 이인균 계장은 "오늘 일은 경매 방해로 처리하고 다음엔 날짜 공고 없이 직권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이들이 돌아간 후 실제 집행관 측의 전화 신고를 받은 순찰차가 영문도 모른 채 찾아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중앙법원 집행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붙었고, 4일 경매는 연기되었다.
 중앙법원 집행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붙었고, 4일 경매는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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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자 대리'라는 남성도 집행관들과 함께 왔다. 조합원들은 "노조 차량을 압류 당할 때도 용역들과 함께 온 사람인데 신분은 모른다"고 했다.
 '채권자 대리'라는 남성도 집행관들과 함께 왔다. 조합원들은 "노조 차량을 압류 당할 때도 용역들과 함께 온 사람인데 신분은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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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돌아온 유명자 지부장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묻는 질문에 말문보다 눈물이 먼저 터졌다.

"민사법은 일단 채권자 중심이라… 피채권자는 대응할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실제 민사소송으로 압류하는 건 노조에서 첫 사례이기도 해서 다른 노조에서도 도와줄 분도 없고. 우린 안 당한 게 없어요. 정말. 얻어맞고 물건 부서지고 가처분, 가압류, 고소·고발…. 이젠 압류까지. 왜 사측이 그렇게까지 하냐고요? 우리가 특수고용노동자니까요. 단협을 해도 단협으로 인정 못 받고, 노동자로 인정을 못 받으니까요. 부담이 없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당하냐고요? 우리가 특수고용노동자라서. 만만해서..." 눈물을 흘리는 유명자 지부장.
 "왜 이렇게까지 당하냐고요? 우리가 특수고용노동자라서. 만만해서..." 눈물을 흘리는 유명자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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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고용이 아닌 위탁계약으로 채용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고, 이로 인해 임금, 퇴직금, 재해보상 등 모든 노동권을 박탈당해 왔다. 이들은 그 외에도 부정영업, 밀린 회비 대납 등을 강요당해 왔으며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노조를 사측이 계속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리자들이 조합원들과 특별면담을 하면서 조합 탈퇴를 안 하면 계약해지(해고)를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어요. 이번에 한 선생님이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16년이나 일한 분이에요. 그분이 늘린 회원만 500명이 넘어요. 그분이 '이렇게 열심히 일한 나를 단지 노조 활동 때문에 자르겠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사람이 아니었다 싶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우시는데…. 그냥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 그렇게만 얘기했어요."

오 사무국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실제 피해를 봐서가 아니라 노조 피를 말리려는 행위"

 학습지노조 사무실에 앉은 유명자 지부장, 오수영 사무국장, 유득규 학습지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봉급 가압류와 해고 등을 당한 상태다.
 학습지노조 사무실에 앉은 유명자 지부장, 오수영 사무국장, 유득규 학습지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봉급 가압류와 해고 등을 당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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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컴퓨터 외에도 지난 10월 27일과 28일엔 학습지 노조 강종숙 위원장의 개인 자동차와 노조 방송차가 강제압류를 당했다. 노조의 10년 역사를 담고 업무를 진행해 왔던 컴퓨터였고, 3년여의 노숙농성 동안 조합원들의 바람막이가 돼주던 자동차였다. 낡아서 누가 가져가지도 않을, 조합원들 외에는 가치를 못 가질 물품들이다.

실제 사무실 집기의 금액은 72만 원, 자동차는 100만 원 정도다. 이렇듯 큰돈이 안 되는 물건이라 벌금 집행을 위해서는 한 번에 몽땅 처분해야 함에도 하나씩 집행하는 데 대해, 조합원들은 "돈은 핑계고, 노조 업무를 마비시키고 정신적 고통을 주면서 일부러 노조의 피를 말리려는 행동"으로 보고 있다.

재능지부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한 노동자 역시 "재능 사측은 노조로 인한 영업손실을 주장하지만 실제 증명은 못하잖아요. 그런데도 살림집까지 찾아가면서까지 몰아붙이다니….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며 분개했다.

유씨는 본사 앞 집회를 마친 직후 사측 용역들에게 팔다리를 붙들려 법원 집행관에게 끌려가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사측이 이번에는 '집회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어요. 사측 관리자 몇 명을 지정해서 그 사람들에게 접근하면 안 되고, 사측 본사를 포함해 모든 사무실 앞에서 소리도 못 지르고, 햇빛 가릴 우산도, 피켓도 다 금지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때껏 해온 1인시위나 농성 행위 모든 걸 다 금지시키겠단 거죠. 용역들이 절 끌고 가서 집행관 앞에서 제 사지를 붙들고 '이 사람이 유명자다' 하더라고요. 그 기일이 오는 12일인데, 최대한 빨리 신청 접수하려고 쇼를 벌인 거죠."

네 번째의 찬 겨울, 또 내버려둘 것인가

무거운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늘 그랬듯 어떤 일이 있어도 오후 7시 매일 집회를 지켜가야 한다. 자꾸만 눈가를 훔치는 유 지부장을 향해 오 사무국장이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부장님 그만 울어. 내가 문화공연 많이 섭외해 놨어."

얼마 전 한 '촛불시민'이 "집회하는 데 자주 못 와 미안하다. 압류된 거 되찾는 데 보태 쓰라"며 127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가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그렇게 눈물을 닦아 왔다.
그러나 두려움만은 완전히 닦이지 않는다.

1000일이 넘은 그들의 농성이 일상이 되었듯, 이러한 압류, 노조 파괴가 일상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유난히 차가울 네 번째의 겨울이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세상> 홈페이지(www.laborworld.co.kr)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재능교육#노조#특수고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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