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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국가인권위의 퇴행적 행보가 1일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의 사퇴를 계기로 곪아 터진 양상이다. 정치권과 인권단체, 인권위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인권위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독립기구에서 대통령 직속기구 전환 시도, 인권위 조직 축소 등을 거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고, 지난해 7월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독선' 인권위의 퇴행적 행보가 본격화됐다.

 

인권위는 현병철 위원장 체계에서 ▲ 피디수첩 수사 사건 ▲ 용산참사 사건 ▲ 야간시위 건 ▲ 박원순 변호사 소송 건 ▲ 4대강 반대 농성 건 등에서 의견표명 등이 부결되는 등 인권위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독선적 조직 운영으로 각계의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면서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한 인터넷 검열, 한국방송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장 퇴출 문제, 심지어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미행 사건 등 인권 상황 전반이 퇴보했다는 평가다.

 

지난 9월 퇴임한 최경숙 상임위원은 퇴임에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인권공동체는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안에 들어와 있다"며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는 결코 가서는 안되는 길을 걸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권위 내부 "인권상황 악화...인권위 고사 직전에 놓여"

 

1일 사퇴한 유남영 상임위원은 3일 아침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인권위가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 운영으로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고 한 사퇴의 변과 관련해 "국가권력 감시라는 핵심적인 활동에 제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했고, 내부적인 운영에 있어서 위원회답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용산 참사와 관련, 법원에 의견을 낼지 판단하기 위해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독재라도 할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의사봉을 두드려 일방적으로 폐회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남 두 상임위원 사퇴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 '상임위 안건을 위원장이 단독으로 전원위에 상정'을 핵심으로 한 인권위 운영규칙안과 관련해 유 위원은 "상임위원회 권한 자체가 없게 된다"며 "상임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파괴돼 위원장 독주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비상임위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날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이전과는 다르게 인권위원회가 정부의 인권침해, 또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계속 꺼리거나 지연시켜 왔다"며 "인권위 바깥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인권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느냐, 이거 식물인권위가 아니냐 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국 교수는 이어 "안경환 위원장 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전원위가 꼬박꼬박 열렸었다"며 "최근 두 달 동안 전원위원회가 개점휴업을 했다. 아예 회의가 열리지 않거나 열린다 하더라도 현 정부에 부담되는 결정 같은 경우는 다 부결되어 왔다"고 털어놨다.

 

향후 인권위 전망과 관련해 조국 교수는 두 명의 사퇴 상임위원 추천 몫이 대통령과 여당임을, 그리고 현 위원장의 임기가 2012년 7월인 점을 들며 "보수 대 진보의 비율이 전원위원회 차원에서 9:2가 된다"며 "정부에 부담되는 결정은 계속 안 나올 것 같다. 인권위가 조직자체는 존재하고 있지만 식물인권위원회처럼 그냥 존재만하고 있는 위원회가 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앞서 2일 인권위 사내 게시판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사랑하는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이 올라와 파장을 키웠다.

 

이들은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의 사임을 접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현 위원장 취임 이후 결코 민주적이라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돼 온 위원회 운영이 두 상임위원의 중도 사퇴를 몰고 왔다"며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 기관에서 위원장은 마치 독임제 기관의 장처럼 의사봉을 두드리고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입에 담기 어려운 발언을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지난 1년여간 힘 있는 기관을 상대로 독립적 국가기관답지 못하게 처신했다"며 "위원장은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인권위 내부의 비판과 함께 정치권과 인권단체의 비판은 한결 강도를 더하고 있어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가인권위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준 참으로 존경받는, UN에서도 인정받던 기구였는데 현 정부 들어서 급추락했다. 특히 현병철 위원장이 부임한 후 대한민국 인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며 "현병철 위원장, 함께 사퇴해서 대한민국의 인권을 향상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황 희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선진국가, 공정사회 외치기 이전에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부터 가져보는 것이 좋을 거"이라며 "정부는 현병철 위원장을 즉각 사퇴시키고, 야당과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선임할 것"을 촉구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인권 단체, "현병철 위원장 사퇴하고 이명박 대통령 사과해야"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1일 논평을 내어 "이명박 정권 이후 임명된 현병철 위원장은 친정권을 넘어 아예 굴종적 행태로 일관해 왔다"며 "현병철 체제가 결국 국가인권위를 국민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닌 정권을 위한 정략적 행보로 일관하는, 정권옹호위원회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사상초유의 인권위 파행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인권위를 지극히 정략적으로 운영, 고사시킨 현병철 위원장에 있다"며 "정권 장단 맞추기에 급급, 인권위원회를 '정권옹호위원회'로 전락시킨 책임을 지고 거취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참여당도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이 추천한 문경란 위원까지 현 위원장이 '권력의 눈치만 신경을 쓸 뿐 인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며 현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8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인권단체연석회의도 2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현 위원장 사퇴와 국가인권위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현병철 위원장의 '권력 눈치 보기', '비민주적 운영'이 가능했던 근본적 원인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며 지속적으로 흔들어왔던 이명박 정부의 인권후퇴정책이며, 어떠한 자격기준이나 절차도 없이 무자격자를 임명한 잘못된 인선, 임명권 행사에 있다"며 "투명하고 민주적인, 시민사회와의 소통으로 인권위원을 임명하고 구성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이날 각각 성명과 논평을 발표해 현병철 위원장 사퇴와 이명박 대통령 사과, 인권위 독립성 보장 등을 촉구했다.

 

유남영·문경란 두 상임위원의 중도 사퇴를 계기로 그동안 보였던 현병철 위원장 체계의 비민주적, 비인권적 행보에 대한 인권위 안팎의 비판과 불만이 어떻게 수습될지, 특히 인권에 '문외한'이라는 비판과 함께 이번 사태의 직접적 책임자로 거론되는 현병철 위원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사람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인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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